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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역사

거꾸로 읽는 교회사 - 요약중 (최종원 지음, 복있는사람 펴냄)

by 서음인 2025. 6. 18.

들어가는 말

 

교회사는 기독교 교리와 신학이 형성되는 과정을 연구하는 분야로 여겨져 왔으나, 저자는 교회사가 “교회와 사회의 상호작용의 기록”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교회를 이해하려면 내재적 접근 뿐 아니라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접근이 필요하다. 교회의 역사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계속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한 걸음씩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작은 몸부림이 모여 이루어진다. 과거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오늘의 필요와 관심에 따라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발견되며, 저자 역시 이 책에 교회의 현재에 대한 자신과 고민과 비판을 응축해 재해석된 역사를 담았다.

 

 

1부 낮설게 보기

 

 

01. 성경, 너무나 정치적인 책

 

루터는 기독교인이 따라야 할 궁극적 권위의 원천은 성경이라고 주장했고, 이를 따르는 프로테스탄트 국가는 성경을 교회와 국가의 유일한 권위로 삼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성경은 고도로 정치적인 텍스트가 될 수 밖에 없다. 로마 가톨릭과 관계를 단절한 후 공인 성경을 통해 종교 정치적 통합을 이루려 한 헨리 8세의 주도로 번역된 ‘매튜 성경’과 ‘대성경’, 가톨릭교도인 메리 1세의 박해를 피해 제네바로 도피한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이 번역한 강력한 칼뱅주의 성향의 ‘제네바 성경’, 기존 번역 성경의 문구를 최대한 활용하고 논쟁적 주석을 최소화하여 여러 종파들을 화해시키려 한 제임스 1세에 의해 주도된 ‘흠정역’까지, 모든 번역 성경은 종교 사회적 갈등과 그 해결에 대한 정치적 고민을 담고 있다. 중용과 관용의 태도 없이 정통과 비정통으로 편가르기만 한다면 성경은 통합이 아닌 분열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02. 예배와 기독교인의 지표

 

중세시대의 교회법이 일반 대중에게 요구한 것은 1년에 최소 1차례 고해성사를 하고 특정 축일에 미사에 참여하는 정도였다. 스스로를 성공회의 수장으로 선포한 엘리자베스 1세는 국가주도의 교회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통일령’을 선포해 국교회 주일예배참여를 의무화했다. 제임스 1세는 ‘스포츠의 서’에서 주일예배 후 모든 오락을 금지해야 한다는 청교도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는 급진파 청교도들이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굼꾸며 메이플라워 호에 올라 신대륙으로 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며 일요일 예배는 개인의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고, 청교도 신학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계승한 한국의 주류 장로교회는 엄격한 주일성수를 정체성의 핵심 표지로 삼았다. 역사적 산물인 주일성수가 시공을 초월해 기독교인임을 나타내는 유일한 지표가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03. 『온전한 낚시꾼』과 온전한 기독교인

 

『온전한 낚시꾼』은 국교회를 지지했던 왕당파인 아이작 월튼이 크롬웰 집권시에 시골에 칩거하며 쓴 책이다. 아이작 월튼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온 마음으로 자기의 이웃을 미워하는” 청교도의 과격한 행동주의 via activa 와 과도한 엄숙주의 및 금욕주의에 맞서 낚시꾼의 미덕이자 산상 수훈의 정신인 침묵, 인내, 평화, 온유, 자족, 관조와 같은 가치를 목회적 종교적 이상으로 제시한다. 이 책은 성경과 신앙의 이름으로 극단적 폭력과 갈등이 자행되는 현실 속에서 기독교가 처해야 할 자리는 극단을 피하고 합리적 균형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중도의 길 via media 과 현실 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때를 기다리는 관조하는 삶 via contemplativa 임을 알려준다.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는 광장에서 세를 과시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욕망을 버리고 침묵과 성찰을 통해 새로운 종교성을 세워가는 월튼의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04. 혁명의 시대 속 교회

 

에드먼드 버크는 역사적으로 발전되어 온 기존 국가, 종교, 사회 제도는 신적 재가를 받았기에 유지되어야 하며, 그중에서도 종교는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성과 질서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윌리엄 윌버포스를 포함해 사회적 영향력을 갖춘 복음주의자들이 추축이 된 클레팜섹트는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적 의무라는 신념에 따라 노예제 폐지를 포함한 사회 개혁에 전력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사회문제가 아닌 전도였고, 그 본질은 엘리트들의 가부장적 온정주의적 시혜였으며, 결과적으로 억압받는 노동계급을 기존 체제에 순응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영국이 혁명이나 폭력 같은 급진적 변화를 겪지 않고 사회변혁을 이룬 이유가 메소디즘 때문이라는 ‘알레뷔 테제’에 따른다면 메소디즘이나 클레팜섹트와 같은 영국 복음주의 운동은 근대사회에서 종교가 감당한 긍정적 역할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05. 메소디즘과 노동자 계급

 

영국 노동운동사의 세 뿌리는 프랑스혁명, 오웬파 사회주의, 존 웨슬리의 메소디즘 운동이다. 그중에서도 메소디즘은 근대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가 가난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진실한 애정을 드러낸 보기 드문 운동이었다. 메소디스트 교회들은 노동자 교육을 통해 저항의식을 고취했고 구조 및 운영모델과 지도자들을 제공함으로서 노동조합 형성에 기여했으며, 노동관련 법령 개혁이나 기독교 사회주의를 통해 영국 노동운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그러나 E.P. 톰슨은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메소디즘이 노동운동에 끼친 제도적 조직적 기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 종교성과 보수성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주체적 노동의식 형성을 방해하고 사회적 불만을 개인적 종교적 차원으로 환원함으로서 체제 순응적인 반혁명적 노동 기계가 되도록 만드는 ‘퇴행적 힘’으로 작용했다고 비판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자본가의 그리스도와 노동자의 그리스도 중 누구를 따르는가? 

 

 

2부 지성과 반지성

 

 

06. '신학'과 학문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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