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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역사

거꾸로 읽는 교회사 - 요약 (최종원 지음, 복있는사람 펴냄)

by 서음인 2025. 6. 18.

들어가는 말

 
교회사는 기독교 교리와 신학이 형성되는 과정을 연구하는 분야로 여겨져 왔으나, 저자는 교회사가 “교회와 사회의 상호작용의 기록”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교회를 이해하려면 내재적 접근 뿐 아니라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접근이 필요하다. 교회의 역사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계속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한 걸음씩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작은 몸부림이 모여 이루어진다. 과거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오늘의 필요와 관심에 따라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발견되며, 저자 역시 이 책에 교회의 현재에 대한 자신과 고민과 비판을 응축해 재해석된 역사를 담았다.
 
 

1부 낮설게 보기

 
 
01. 성경, 너무나 정치적인 책
 
루터는 기독교인이 따라야 할 궁극적 권위의 원천은 성경이라고 주장했고, 이를 따르는 프로테스탄트 국가는 성경을 교회와 국가의 유일한 권위로 삼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성경은 고도로 정치적인 텍스트가 될 수 밖에 없다. 로마 가톨릭과 관계를 단절한 후 공인 성경을 통해 종교 정치적 통합을 이루려 한 헨리 8세의 주도로 번역된 ‘매튜 성경’과 ‘대성경’, 가톨릭교도인 메리 1세의 박해를 피해 제네바로 도피한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이 번역한 강력한 칼뱅주의 성향의 ‘제네바 성경’, 기존 번역 성경의 문구를 최대한 활용하고 논쟁적 주석을 최소화하여 여러 종파들을 화해시키려 한 제임스 1세에 의해 주도된 ‘흠정역’까지, 모든 번역 성경은 종교 사회적 갈등과 그 해결에 대한 정치적 고민을 담고 있다. 중용과 관용의 태도 없이 정통과 비정통으로 편가르기만 한다면 성경은 통합이 아닌 분열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02. 예배와 기독교인의 지표
 
중세시대의 교회법이 일반 대중에게 요구한 것은 1년에 최소 1차례 고해성사를 하고 특정 축일에 미사에 참여하는 정도였다. 스스로를 성공회의 수장으로 선포한 엘리자베스 1세는 국가주도의 교회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통일령’을 선포해 국교회 주일예배참여를 의무화했다. 제임스 1세는 ‘스포츠의 서’에서 주일예배 후 모든 오락을 금지해야 한다는 청교도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는 급진파 청교도들이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굼꾸며 메이플라워 호에 올라 신대륙으로 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며 일요일 예배는 개인의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고, 청교도 신학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계승한 한국의 주류 장로교회는 엄격한 주일성수를 정체성의 핵심 표지로 삼았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적 산물인 주일성수가 시공을 초월해 기독교인됨의 유일한 표지가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03. 『온전한 낚시꾼』과 온전한 기독교인
 
『온전한 낚시꾼』은 국교회를 지지했던 왕당파인 아이작 월튼이 크롬웰 집권시에 시골에 칩거하며 쓴 책이다. 아이작 월튼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온 마음으로 자기의 이웃을 미워하는” 청교도의 과격한 행동주의 via activa 와 과도한 엄숙주의 및 금욕주의에 맞서 낚시꾼의 미덕이자 산상 수훈의 정신인 침묵, 인내, 평화, 온유, 자족, 관조와 같은 가치를 목회적 종교적 이상으로 제시한다. 이 책은 성경과 신앙의 이름으로 극단적 폭력과 갈등이 자행되는 현실 속에서 기독교가 처해야 할 자리는 극단을 피하고 합리적 균형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중도의 길 via media 과 현실 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때를 기다리는 관조하는 삶 via contemplativa 임을 알려준다.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는 광장에서 세를 과시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욕망을 버리고 침묵과 성찰을 통해 새로운 종교성을 세워가는 월튼의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04. 혁명의 시대 속 교회
 
에드먼드 버크는 역사적으로 발전되어 온 국가, 종교, 사회체제는 신의 재가를 받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할 제도이며, 그중에서도 종교는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성과 질서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윌리엄 윌버포스를 포함해 사회적 영향력을 갖춘 복음주의자들이 추축이 된 클레팜섹트는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적 의무라는 신념에 따라 노예제 폐지를 포함한 사회 개혁에 전력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사회문제가 아닌 전도였고, 그 본질은 엘리트들의 가부장적 온정주의적 시혜였으며, 결과적으로 억압받는 노동계급을 기존 체제에 순응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영국이 혁명이나 폭력 같은 급진적 변화를 겪지 않고 사회변혁을 이룬 이유가 메소디즘 때문이라는 ‘알레뷔 테제’에 따른다면 메소디즘이나 클레팜섹트와 같은 영국 복음주의 운동은 근대사회에서 종교가 감당한 긍정적 역할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05. 메소디즘과 노동자 계급
 
영국 노동운동사의 세 뿌리는 프랑스혁명, 오웬파 사회주의, 존 웨슬리의 메소디즘 운동이다. 그중에서도 메소디즘은 근대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가 가난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진실한 애정을 드러낸 보기 드문 운동이었다. 메소디스트 교회들은 노동자 교육을 통해 저항의식을 고취했고 구조 및 운영모델과 지도자들을 제공함으로서 노동조합 형성에 기여했으며, 노동관련 법령 개혁이나 기독교 사회주의를 통해 영국 노동운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그러나 E.P. 톰슨은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메소디즘이 노동운동에 끼친 제도적 조직적 기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 종교성과 보수성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주체적 노동의식 형성을 방해하고 사회적 불만을 개인적 종교적 차원으로 환원함으로서 체제 순응적인 반혁명적 노동 기계가 되도록 만드는 ‘퇴행적 힘’으로 작용했다고 비판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자본가의 그리스도와 노동자의 그리스도 중 누구를 따르는가? 
 
 

2부 지성과 반지성

 

 

06. ‘신학’과 학문의 자유
 
근대적 의미의 신학은 이슬람 문명이 전파되기 시작한 12세기 중세 유럽에서 시작됐다. 스콜라 신학은 고전 사상가나 이슬람 학자들의 영향으로 수사학과 논리학 등의 세속적 방법론을 차용해 회의와 질문, 논쟁과 토론의 방식으로 기독교 세계의 신비를 체계적이고 이해 가능하게 풀어나가는 방식이었다. 중세의 신학은 상아탑이 아닌 대학이라는 ‘시장’에서 선택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으며, 이는 자유로운 사고와 질문 및 다양한 방법론 활용이 필수적이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신학은 대중과의 소통 및 세속 학문과의 소통, 사회적 소통을 통해 발전되어 왔으며, 대학은 가르치는 자유, 배우는 자유, 학문 기관의 자치권이라는 학문의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이는 1415년 얀 후스의 화형으로 종국을 맞이했다. 한국 제도권 신학은 사회 속에서 교회의 책임을 고민하기보다는 교회와 정통 신학을 지키는 몰두하는 듯 보인다. 한국에서 신학은 학문이 아니며 한국 신학계는 학문의 전당이 아니다.
 
07. 종교의 주술성과 탈주술성
 
화체설이 가톨릭교회의 공식 교리로 확립되면서 성찬은 신성하고 마법적인 힘을 갖게 되었고, 사제는 기적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주술사가 되었으며, 교회는 주술성을 미끼로 대중의 주머니를 노리게 되었다. 베버는 종교개혁이 시도한 일련의 변화가 세속화와 합리성을 핵심으로 하는 ‘탈주술화’(disenchantment) 과정을 촉진시켜 주술적인 가톨릭을 극복하고 합리적인 칼뱅주의 세계관을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칼뱅주의는 중세 교회에서 성직자 계층이 독점했던 주술적 믿음을 경건한 그리스도인 모두가 현실 속에서 추구한 변형된 주술 종교였다. 종교개혁은 중세적 형태의 주술성을 없애는 데는 성공했지만, 개인이 체험하는 신적 섭리에 대한 강조로 검증 불가능한 주술성을 만들었다. 한국교회는 성서에 대한 문자적 맹신에 근거해 창조론이나 성소수자 정죄를 옹호하는 변형된 주술성을 해체하고 새로운 종교성을 만들어가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08. 루터와 한나의 ‘읽는다는 것’
 
루터 종교개혁의 가장 큰 두 가치인 이신칭의와 만인사제주의는 개인이 교회나 사제의 중재 없이 직접 절대자와 관계를 형성하고 자신의 언어와 자의식으로 성서를 읽을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루터는 근대적 자아, 근대적 개인주의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에릭 에릭슨에 따르면 유년기의 억압으로 정체성 위기를 겪던 루터는 자신만의 성서읽기와 해석으로 불화하던 세상과 화해하고 정체성 위기를 극복했으며, 이를 통해 전체주의적이고 교조적인 가톨릭의 가르침에서 개인의 양심을 회복시키고 개인의 주체성을 높였다. 문맹과 비문맹을 가르는 판단 기준은 문자를 읽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능력이 있느냐와 자신의 말과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느냐의 여부다. (악의 평범성 설교자의 카리스마와 집단성 아래 개인이 묻히기 쉬운 구조인 교회에서 주체적 읽기의 필요는 더욱 절실하다.
 
09. 유사과학과 유사종교
 
20세기 초 프란시스 골턴에 의해 창시된 ‘우생학’(eugenics)은 인간의 유전형질을 개선하여 범죄 없고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목표를 내세운 유사과학으로, 부적격 유전형질을 가진 개체들의 번식을 막는 부정적 우생학과 건강한 유전형질을 지닌 개체들의 번식을 촉진하는 긍정적 우생학으로 나뉜다. 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이자 인종적 유전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반동적 사상이지만, 당시에는 사회의 진보를 추구하던 진보적 사상가들과 ‘사회 복음’을 포함한 자유주의 기독교의 적극적 지지를 얻었다. 오늘날 한국에서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개신교라 이름하는 인종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정죄 광풍은 21세기의 우생학이라 할 만 하다. 더 나아가 예방과 치유라는 ‘개선’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감수성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10. 기독교적 반지성주의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미국 반지성주의의 기원을 복음주의에서 찾는다. 그는 반지성이라고 부르는 태도와 사상은 “정신적 삶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의심, 생명의 가치를 끊임없이 최소화하려는 성향”을 공유한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메카시즘 열풍으로 가시화된 미국 반지성주의의 뿌리는 내적 체험을 강조한 대각성 운동으로부터 온화한 반지성주의의 특성을 보이는 빌리 그레이엄에 이르는 복음주의 종교운동에 있다고 비판한다. 지성주의의 적은 교육받지 못한 대중이 아니라 잘못된 교육을 받고 진지하게 대의에 헌신하는 주변 지식인이며, 이러한 반지성적 지식인의 대표가 종교적 경건에 집착하고 편견과 확신에 사로잡힌 복음주의 목회자 그룹이라는 것이다. 한국 복음주의는 모든 사회문제에 대해 성경과 교리적 해석을 앞세우면서 근본주의자들과 동일한 반지성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소외되고 핍박받는 대중과 함께하는 현장성 회복이야말로 복음주의 회복의 출발점이다.
 
 

3부 사회의 거울 속 교회의 자리

 
 
11. 공교회성과 섹트
 
교회에는 형성 초기부터 보편성과 특수성의 긴장이 존재해 왔다. 보편성은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라 교회를 알곡과 가라지가 섞인 구원받은 죄인들의 공동체로 규정하며, 이는 다수를 느슨하게 포괄하는 공교회 혹은 보편교회의 개념으로 발전했다. 반면 특수성은 기성교회의 타락에 대해 반발하고 종교적 완전성을 추구하는 순수한 신자들의 모임인 섹트의 형태로 나타나며. 이는 제도 내의 수도원 운동과 제도 바깥의 이단 운동으로 나뉜다. 도나투스나 재세례파, 카타리파같이 선명성을 추구했던 섹트들은 공교회 전통에 스며들지 못한 채 역사 속 유물이 되고 말았다. 기독교란 자기 완성을 지향하는 종교가 아니며, 교회란 선택된 자들에게만 허락된 공간이 아니다. 공교회는 확신으로 가득한 명쾌한 답을 제시하기보다 현실 세계와 상황에 따라 긴장과 협력의 관계를 맺으며 함께 걸어가는 사회적 감수성을 갖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부정과 불의에 직면해 목소리를 내는 사회적 책임을 지는 삶이 공교회성의 자세다.
 
12. 평화와 폭력
 
로마제국은 종교심을 제국의 확산과 일체심을 유지하는 유용한 도구로 활용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혈통과 문명을 기준으로 삼던 유대교와 제국의 경계를 넘어 보편 가치를 지향했다. 팍스 로마나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했다면 그리스도의 평화는 자기 비움과 희생을 통한 평화였다. 박해받던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었지만 그 댓가로 제국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전쟁을 인정하게 된다. 중세교회는 ‘신의 평화’를 통해 유럽 내에 평화의 가치를 구현하려고 시도했지만 이는 외부의 적을 향한 십자군 전쟁으로 전환되었다. 종교개혁은 세속 군주가 자신의 종교를 결정하고 교회의 수장이 되는 국가 종교로의 재편을 의미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 체제를 거부한 재세례파를 포함한 주변인들은 폭력과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평화의 왕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되었던 기독교가 역사 속에서 폭력을 정당화하는 퇴행을 보인 이유는 경계를 넘어 세계주의를 향하던 정체성을 잃고 국가주의와 제국주의의 이념에 갇혔기 때문이다.
 
13. 패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교회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은 가톨릭교회와 대항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도움을 받은 관 주도의 개혁이었다. 그러나 크리스텐덤 질서를 거부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했던 재세례파는 기독교국가의 시민 서약과 같던 유아세례를 거부했고 전쟁이나 폭력에의 참여를 거부하는 평화주의의 가치를 추구했으며 이는 그들을 종교적 국가적 박해로 밀어넣었다. 그들은 1527년 「슐라트하임 신앙고백」을 제정해 국가와 교회, 세속과 하나님 나라를 구분하는 이원론에 근거한 교회를 형성했다. 그러나 개인의 신앙 양심에 따라 원시교회로의 회복을 추구하던 재세례파의 이상은 공동체의 질서와 충돌했고 현실 속에서 실현되기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들은 점차 외부의 박해에 평화주의적으로 대응하고 내부적으로 완전한 제자도의 실천을 위해 규율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변화해 나갔다. 유사 크리스텐덤을 추구하던 한국 기독교가 힘을 잃은 현재 박해받던 소수인 재세례파의 가르침은 충분히 곱씹을 가치가 있다.
 
14. 국가와 교회
 
중세는 교회와 국가라는 두 왕국이 균형을 이룬, 혹은 가톨릭교회가 우위를 점한 시기였다. 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가 루터는 하나님이 이 땅을 교회라는 영적 권위와 국가라는 세속 권위를 통해 통치하신다는 두 왕국론을 제시했으며, 칼뱅은 시민정부가 세속 질서의 유지를 넘어 교리와 교회를 지키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는 핵심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터의 국가론은 근대적 국민국가의 등장과 자본주의의 발흥으로 강력한 국가권력이 교회를 장악하게 되자 그에 부합하는 통치 이론을 세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6세기 종교와 국가간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이 아닌 통치자가 그 지역의 종교를 결정하는 아우구스부르크 평화조약의 결정과, 국왕이 직접 종교를 바꾸어 국교를 만든 영국의 사례다. 이러한 국가절대주의는 정치의 신성화로 개념화할 수 있으며, 국가 및 국가를 구성하는 민족이나 인종까지 신성화하는 경향을 띤다. 이런 국가절대주의의 극단적 형태가 파시즘이다.
 
15. 세속화 테제 재고
 
‘세속화 테제’는 근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종교의 용도는 점점 줄어든다는 주장이다. 16-20세기에 이르는 긴 세속화 과정에서 제도 종교로서의 크리스텐덤이 지속적으로 쇠퇴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독교는 믿음과 전통, 교리를 지속적으로 혁신하면서 시대에 적응해 왔으며 이는 영적 부흥과 선교운동으로 이어졌다. 기독교는 근대성의 세 가지 핵심 특징인 과학(머튼 테제), 자본주의 (베버 테제), 민주주의(다원주의와 관용)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근대 역사에서 근대성 전파에 필수 도구로 작용해 왔다. 기독교의 가르침과 근대적 도덕규범 사이의 가장 첨예한 대립은 몇몇 사람들에게 진실한 세속화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1960년의 ‘성 혁명’에서 촉발되었다. 하버마스는 현대를 탈세속주의로 정의하면서, 세속화되고 다원화된 공적 담론장에서도 특히 윤리적 분야에서 종교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대 기독교는 세속화된 사회 속에 적응하고 수용될 수 있는 담론을 공적 영역에서 만들어가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4부 모색과 돌파구

 
 
16. 가톨릭과 개신교 공통의 유산
 
헤르트 흐로테에 의해 창시된 데보치오 모데르나(devotio mioderna, 근대적 경건/새로운 경건) 운동은 성인숭배나 성물숭배, 면죄부 등 가톨릭교회가 정한 외적 경건의 방식 대신 그리스도를 따라 겸손하고 단순한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데 집중했다. 그들은 수도 서약을 하지 않은 평신도들로 구성된 공동생활 형제단(자매단)을 구성해 노동을 통한 자급자족의 추구,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삶, 정기적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삶을 실천했으며, 이 공동체가 배출한 가장 대표적인 저작이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였다. 16세기 유럽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톨릭과 개신교의 이분법보다 국가라는 상수에 종교가 종속변수가 되는 상황이 더 중요했으며, 이에 따라 1960년대부터 종교개혁사 연구에서 개신교 뿐 아니라 가톨릭에서도 기존의 전통을 새롭게 세워가는 ‘재기독교화‘ 과정에 집중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도에 의해 강제되지 않은 개인의 신앙 양심을 강조하는 근대적 종교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데보치오 모데르나 운동을 종교개혁의 출발점으로 볼 수도 있다.
 
17. 본회퍼와 새로운 교회
 
나치는 ‘독일 기독교’를 통해 독일의 개신교를 나치 이념으로 재구성하고 유대인 탄압을 정당화했으며,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지지하거나 침묵함으로서 홀로코스트에 기여했다. 고백교회는 아리안 민족주의에 오염되어 이교로 변해버린 독일 제국교회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신수도회주의를 주창했다. 신수도회주의는 세상과 분리되어 청빈, 순결, 순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전통적 수도회와 달리,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대항문화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공동체다. 본회퍼는 핑켄발데 신학교를 통해 나치 정권에 반대하는 명확한 반제국적 반문화적 입장에 서면서 산상수훈이 요구하는 급진적 제자도를 세속 한가운데서 실천하려는 제자도를 실험했다. 신수도회주의는 버려진 장소 속 힘없는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진정한 기독교 공동체의 가치를 찾으려 했으며, 교회는 제국으로 상징되는 권력, 풍요 폭력의 편이 아니라 산상수훈에 묘사된 가난하고 애통하고 의에 목마른 자들의 편에 설 때 제국교회를 넘어설 수 있다.
 
18. 여성 참정권 운동과 기독교
 
출산이나 양육, 가정 내 돌봄같은 사적 영역에서의 역할만이 부여되었던 여성에게 남성과 동일한 참정권이 부여된 것은 20세기 이후였다. 이는 자유와 평등을 내건 근대 시민혁명은 여성 참정권에 기여하지 못했으며, 이 권리가 별도의 투쟁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는 의미다. 흔히 여성 참정권이 페미니즘과 연동된 진보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금주운동과 같이 전통적인 종교의 사회개혁 운동과 연결되는 접점도 존재했다. 여성 참정권을 옹호하는 기독교인들은 ‘행동주의’라 불리는 근대 복음주의 운동의 한 흐름으로, 자신들이 사회 개혁 운동에 참여한다는 신앙적 자의식을 갖추고 있었다. 한국교회는 교회 내에서의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교회를 허무는 페미니즘’이라는 간편하고도 폭력적인 시선을 통해 억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익숙한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고 교회사는 세속사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19. 소수자와 종교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교파를 막론하고 ‘반동성애’로 뭉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나다처럼 다양성을 수용하는 문화가 강한 경우에도 열성적인 기독교인들은 동성애에 대한 종교적 정서적 거부감을 보이지만,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 소수자의 평등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에 그 거부감이 혐오나 배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제도 교회를 떠날수록 동성애에 우호적이 된다는 서구의 조사결과는 제도 교회가 사회변화에 조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기독교가 변하지 않는 교리 체계 안에서 자신들이 정한 답변만을 내세운다면 그 경계 밖에 있는 사회와 유의미한 대화를 나누기란 불가능하다. 오늘날 한국의 대형교회나 보수교단 총회는 동성애를 자신들의 부패와 무능을 가리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아 악마화하는데 몰두하고 있지만, 사회와 동떨어진 인식을 종교적 신념으로 고집하는 스스로의 태도가 기독교 쇠퇴의 진짜 원인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20. 전통의 현대화
 
계몽주의의 도전에 직면했던 1869년에 소집된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 무염시태설’이나 ‘교황 무류설’ 교리의 채택에서 알 수 있듯 ‘초월과 신비’라는 종교 정체성 강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도전받는 교회 권위의 위기에 맞서 이 땅의 논리와 이성을 넘어서는 ‘신적 기관으로서의 가톨릭교회’를 선포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교회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인류의 공공선을 무너뜨리는 홀로코스트 같은 현실의 악 앞에서 철저하게 무력한 ‘인민의 아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1962년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교리로 타자를 배제하고 이단시하거나 천상의 신비 뒤로 도피하기보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소외된 여성, 소수자, 이주민과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고 사회 속에서 공동선을 추구하는 길을 선택했다.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는 근대 세계를 성찰하며 대중과 함께 공동성을 추구해 가는 가톨릭 교회의 ‘아조르멘토’ 정신을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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