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경 묻고 답하기’ 줌모임에서는 차준희 교수님을 모시고 신작 <아모스의 영성>에 대해 질문과 대답을 나눴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여러 가지로 분주해 책을 읽지 못하는 바람에 주로 듣는 데 집중했습니다. 오늘도 멤버들의 질문은 날카로왔고 교수님의 대답 역시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찔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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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아모스를 포함한 예언자 영성의 핵심은 공공선의 추구인 정의(미쉬파트와 체데카)이며, 이는 약자를 돌보는 것뿐 아니라 약자와 연대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미쉬파트를 잃는 것은 곧 영성을 잃는 것이며, 그런 공동체는 쓸모를 잃고 버림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에도 깊이 공감되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시간이었네요!
[아모스 질문]
[개관]
1. 아모스서에 대해 오랜 기간동안 다루셨던 것으로 아는데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제야 나오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이 책이 나오게 된 계기가 무엇이고, 많은 예언서 중에서도 아모스서를 다룬 이유가 있으신지요?
2.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핵심은 무엇이고, 이 책에서 주의깊게 봐야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3. 이번 책은 젊은 시절 교수님의 책을 보는 듯 신선했는데요! 물론 기존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은 주로 학문적인 접근 중심의 글이였는데 이번에는 작정하시고 경제권력, 국가권력, 문화권력 등의 현실 비판과 교회에 대한 비판까지 직접적으로 언급하셔서 매우 놀랍고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예언자적인 발언을 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즉 이전과 달리 보다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하게 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4. 아모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떻게 해도 북왕국은 심판을 피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나마 5장의 회개 촉구와 7장의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부분이 약간의 숨통을 트여줍니다. 99%의 텍스트가 고발과 심판으로 채워져 있는 아모스서가 의도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1%의 회개촉구와 중보 분량의 텍스트를 가지고 아모스의 목적이 북이스라엘의 회개와 갱생(회복)이라고 보기엔 어려워 보입니다. 아모스는 회개를 기대하고 예언을 한 것일까요? 아님 불가변한 미래를 통고해주기 위해 예언한 것일까요? 만약 회개가 아니라 통보가 목적이라면, 무슨 연유로 말해줬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7장 메뚜기와 불 환상 속에서 주권적 자유를 제한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또 회개를 촉구하는 의도로 보이기도 합니다. '아모스의 영성'책 8장에 견해를 써놓으시긴 했지만, 교수님의 견해는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아모스 텍스트]
1.아모스와 아마샤가 함께 만나는 내러티브(7:10~17)의 위치가 세번째 다림줄 환상 다음에 언급되는데요.아모스의 다섯 개의 환상 내러티브 언급 이후에, 아니면 아예 그 이전에 언급되면 좋을 듯한데요.. 세 번째 환상인 다림줄 환상과 네 번째 여름과일 바구니 환상 사이에 위치한 이유를 무엇으로 보시는지요? (환상의 내러티브 가운데 역사적 실재성 언급 이유는?)
개인적으로 이 본문을 보면서 창세기 37장부터 50장을 통해 요셉 내러티브가 언급되는 본문에서 갑자기 38장 유다와 다말 내러티브가 떠오르는데요. (즉,창세기 37장 요셉 내러티브 중에 갑자기 38장 유다와 다말 언급 그리고 다시 39장 요셉 내러티브가요.) 이런 아모스의 배열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런지요?
2.아모스는 아마샤 앞에 섰을 때 자신을 선지자 그룹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7:14)그렇다면 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는 말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요? 또한 아모스가 최초의 문서 예언자라면 그의 글이 다른 선지자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3. 아모스의 '케츠'를 종말론적 예언사상의 시초, 초기모델로 볼 수 있을까요? 또한 9:12를 문자적으로 보면 종말 후에는 이방 나라들을 가나안 영토정복 때처럼 다시 기업으로 얻어 옛 영광을 재현할거란 내용이 종말 심판 후 '그 날' 회복하는 종말론적 사상처럼 보입니다.
아니면 아모스 이전(북왕국 멸망 이전)부터 종말론적 사상이 이미 존재했었을까요? 혹시 신명기의 불순종 하면 엄청난 심판을 받을거란 가르침이 전해져 내려오고 그것이 결국 종말론으로까지 형성되어 있었을 수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4.아모스는 9:11 이후 급작스런 회복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책 안에서는 심판도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앞의 심판을 뒤집는 회복의 이야기를 하는 불연속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5.아모스서를 읽을수록 단 한번에 쓴 글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거쳐 형성된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성경의 전문가분들은 “아모스는 최초의 문서예언자(글로 남겨진 예언자)로 불리지만, 실제 책은 그가 직접 저술한 완성본이 아니라 여러 과정을 거쳐 형성된 문서”로 보는 듯한데요. 아모스서를 읽는 독자로서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하고 읽으면 좋을런지요?또한 신학자분들은 6단계설,3단계설 등을 주장하는데요. 교수님은 아모스서의 형성 과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요?
[콘텍스트]
1. 아모스는 형식적 예배를 거부하며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의 일부는 대형 집회와 헌금을 신앙의 척도로 삼으면서도 권력과 결탁하거나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는 침묵합니다. 강단에서는 정의와 사랑을 외치면서 실제 삶과 구조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이중성과 위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아모스의 영성으로 본다면, 이러한 교회의 행태는 단순한 개인적 위선이 아니라 ‘예배 자체의 무효화’이자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는 아닌지요? 그렇다면 참된 예배와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신앙인 개개인은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런지요?그리고 교회공동체는 무엇을 내려놓고 어떤 구체적 실천을 다시 세워야 할런지요?
2.(최근 정치와 교회 모습에 대한 질문)
아모스 시대의 제사장 아마샤는 권력과 결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 아모스를 배척했습니다. 오늘날 일부 교단 지도자들 역시 권력과 밀착하며 비판적 설교자를 침묵시키거나 총회 차원에서 문제적 인물의 행보를 옹호하거나 침묵합니다. 이는 교회의 공적 신뢰와 영적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는 일로 보이는데요. 아모스의 영성에 비추어 볼 때, 교단 지도자들의 이런 결탁과 침묵은 단순한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영적 반역’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교인들과 사회는 어떤 예언자적 목소리와 행동으로 교회의 권력 왜곡을 견제하고 바로잡아야 하는지요? 요즘 고신총회가 손현보 목사의 구속을 “정치적 탄압”으로 규정하며 내부 징계 요구를 오히려 공격하는 태도는, 성경이 요구하는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려는 모습 아닌 자기 식구 감싸기로 보입니다. 이러한 때 바른 신앙인의 행동은 무엇인가요?
[개인적 질문]
1, 지금까지 출간하신 책이 엄청나신데요. 그 중에서(번역서 포함) 가장 애착이 가는 책 3권은 어떤 책이신지요?
2.향후 기대해 볼 교수님의 새로운 책과 최근의 관심사는 무엇이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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