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이야기

"아무도 원치 않았던 솔리스트"로 데뷔한 날

서음인 2020. 2. 20. 16:45

음과 음 사이의 공백은 연주를 쉬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연주하는 시간입니다. 듣는 분들은 잘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음정과 박자의 강박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 성가대들은 주로 어디서 어떻게 소리를 그쳐야 하는지와 같은 디테일한 부분들에 집중해 음악을 완성해갑니다. 따라서 어떤 성가대의 수준을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그 성가대가 어떻게 침묵을 연주하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가대원의 입장에서 가장 끔찍한 실수는 모든 사람이 침묵으로 연주할 때 홀로 멋지게 소리를 냄으로서 아무도 원치 않았던 솔리스트가 되는 일입니다. 바로 지난 주일날 제게 일어난 일입니다!

이날의 찬양곡은 성령의 열매라는 멋들어진 스윙 리듬의 곡. ‘성가대스럽게예쁜 발성과 절제된 소리 대신, 자유스러운 창법과 개성적인 소리가 허용되며 또 그렇게 불러야만 묘미가 살아나는 곡입니다. 주일 아침 즐겁게 연습을 마친 후 예배에 들어가기 전 제 앞줄 연습좌석에 앉으신 엘토 파트 권사님들께 스윙곡답게 꽤 복잡한 리듬을 가진 이 노래를 부를 때 누군가 틀림없이 솔로로 데뷔(?)할 수 있겠다고 농담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다른 대원들이 모두 아직 사랑과 희락과 화평에 머물러 있을 때, 남들보다 한 박자 반 빨리 악보에도 없는 날마다~~”를 찰진 스윙 리듬으로 시원하게 부르면서 제가 그 농담의 주인공이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한치 앞도 못보는 것이 인생사라더니!

일단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진땀이 뻘뻘 납니다. 찬양이 다 끝난 후에도 몇 주간은 자신 있게 소리를 내기 두렵고, 악몽을 통해 동일한 경험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옆 대원들도 이런 실수에 대해서는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대개 침묵합니다. 그런데 이날 예배가 끝난 후 제 앞자리에 앉은 아까 그 권사님께서 뒤를 돌아보시며 웃음과 함께 아니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가 틀리면 어떡하냐라는 한 마디를 던지셨습니다. 그 순간, 주위에 있던 동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꾹 참았던 웃음과 한 마디씩을 던지는 바람에, 엄청난 실수가 그나마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교회 홈피에 올라온 영상을 확인할 때마다 아직도 가슴이 서늘하지만, 한바탕 웃음으로 끝나는 바람에 꿈에는 안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도 더 집중해서 다시는 이런 일어 없어야겠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