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경 대표님 서평 (2023년 3월 21일)
출간되기도 전에 좋을 것이라 예감하게 되는 책이 있다. 그리고 대체로 그 예감은 맞을 확률이 높다. 정한욱선생님의 책이 곧 나온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도 그런 예감을 했다. 청어람 프로그램에 함께 한 게 직접적인 인연의 전부일 뿐이지만, 페이스북에서 그간 만나온 정한욱 선생님은 성실하고, 진지하고, 열려있는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넘사벽 다독가다. ‘좋은’ 필자가 될 조건을 다 갖춘 분의 책이 별로일 가능성은 없고... 이토록 진지한, 심지어 보수적인 그리스도인의 책을 내는 일반 출판사에서 이 책을 허투루 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예감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이 어서 내 손에 들어오길 기다렸다.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 이 책에 관한 호평이 줄을 서겠지만, 나도 말을 보태자면, 일단 세 가지 면에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딸’이 질문한 내용에 깊이 공감되었다. 이 책의 성패는 아빠의 대답보다는 딸의 질문에 달려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책을 받자마자 질문부터 살펴봤다. 대부분의 질문이 나의 질문이기도 했고, 아마 많은 그리스도인이 품고 있을 질문들이기도 했다. 이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대답을 기대하며 페이지를 넘길 수 있기에 탁월한 질문 구성이었던 것 같다.
이 질문이 공감되었던 이유는 매우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종종(아니 매우 자주) 목회자들에게 반발감이 생길 때가 있는데 그들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천상의 이야기를 할 때다. 우리의 질문은 이토록 실존적인데 대답이 지극히 관념적이라면 “아... 예... 좋은 말씀이긴 한데요. 제가 원하는 답은 아니네요”라고 다음 질문을 삼키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의 질문은 ‘그 다음’이 성립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대답 또한 공감력과 현실성이라는 두 가지 면을 모두 충족했다.
질문은 좋은데 대답이 별로라면 결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빠’의 성실한 대답이 이 책의 또 다른 포인트다. ‘아빠’를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는 성실한 전문인이자 보수적인 그리스도인이며 다독가이다. 이 조합은 한 끗 차이로 위험하다. 자칫하면 ‘딸’을 가르치며 질문이 필요없는 지당한 길로 인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머리만 크고 꽉 막힌' 그리스도인을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숱하게 만나왔던가!
그러나 정한욱 선생님은 그 함정에 빠지지 않고 ‘딸’의 고민에 공감하며 자신의 한계를 독서로 넓혀간 과정을 사려 깊게 나눴다. 지식이 너무 앞섰다면 살짝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었는데 ‘아빠’이기 전에 ‘딸’과 함께 고민하는 동시대인이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진지한 고민과 불편한 질문도 진지하게 여길 인품도 겸비되어서 그 거리감이 최소화되었다. 그리고 이 대답에 쓰인 레퍼런스는 그 자체로 좋은 추천 도서 목록이 되는 면도 장점이다.
마지막 세 번째 장점은 이 책이 정은문고라는 일반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익숙한 기독 출판사에서 나왔다면 저자에게 조금 더 유리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출판사에서 나왔기에 더 큰 가능성을 품게 되었다. 이 책의 1차 독자는 아마 그리스도인일 테지만, 나는 이 책이야말로 비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종교(정확하게는 개신교)가 사랑을 실천하고 사회에 기여하기보다는 분열과 차별과 혐오의 온상이 되는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진지하게 신앙적 성찰을 하고 사회와 공명하려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걸 알리고, 종교의 가치는 무엇이며 어떤 면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 레퍼런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비그리스도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정은문고가 처음 출간한 기독교 책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용기를 내주셔서 감사하고, 잘 팔리면 좋겠다.
이 책에 쓰인대로 ‘도발적’이며 ‘발칙한’이라는 느낌은 잘 못 받았는데 누군가는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면도 생각해볼 만하다. 이 책의 질문과 대답이 어떻게 여겨질지는 개인 차가 있겠으나 질문의 기회와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고 대답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길에 이 책 놓이면 좋겠다.
서문 제목이 “기독교에 회의적인 교양인들에게”여서 난가? 싶었는데 일단 교양인이 아니라… ㅋㅋㅋ 아무튼, ‘예감’이 적중한 책을 만나니 반가워서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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