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저서/믿묻딸 - 서평

Jaeyoung Cho 목사님 서평 (2023년 4월 13일, 5월 4일)

서음인 2023. 7. 14. 00:20

2023년 4월 13일

 
1. 개인적인 관계는 없지만 훌륭하다고 평을 받는 학부 선배 목사님이 이 책을 보고 쓰신 우려 섞인 글을 읽었었다. 그래서 엥간해선 신간을 안 사는 내가 사서 보게 되었다.
2. 페북에 회자되는 이야기의 무게감을 볼 때 엄청 두꺼울 줄 알았는데 너무 얇아서 놀랐다. 같이 주문한 배트맨이 더 크고 두꺼웠다.
3. 1장을 읽은 지금, 아니 이렇게 보수적인 신앙을 베이스로 합리적 신앙을 추구해가는 분이 있나 싶다. 나머지 장들도 이런 스탠스로 써내려갈 것이 분명하다.
4. 책표지 색깔이 고추장 색깔이기도 하고 선배목사님의 반응때문에도 매운 맛을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상식적인 이야기여서 약간 김이 샜다.
5. 아마 책으로 내느라 좀 더 내용을 충실히 하셨겠지만, 딸의 질문에 이런 꽉 찬 설명을 기다렸다는 듯이 하신다면 질문을 자주 꺼내진 못할 것 같다. 이런 질문과 답변은 10년에 한번 정도면 괜찮을 성 싶다.
6. 아.. 그리고 목사로서 이런 류의 책을 보고 위험성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느끼거나 하지 않는다. 난 왠지 흐뭇했다. 목사는 신학전문가일 수는 있어도 신학을 독점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도 다 큰 딸의 아빠로서-우리 딸은 이런 질문을 할 것 같진 않지만- 또 다른 아빠가 성심성의껏 답변해준 이 책이 반가웠다.
7. 어차피 책의 내용을 다 동의하라는 교조적인 책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가볍게 신앙적인 질문에 대한 대화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한결 편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8. 지금의 사회는 어떤 권위있는 지식에 의지하기보다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지식의 속도가 엄청나다. 지식에 있어서도 세대차이가 나게 되어 있고, 지식에 대한 태도 또한 차이가 난다. 그래서 결국 이 시대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꼰대는 말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기준으로 남들을 가르치려드는 사람, 이 시대의 기준으로는 '태도가 나쁜 사람'을 말하는게 아닐까.

 

2023년 4월 27일 

 

1. 정한욱 선생님의 책에 대해 보수적 신학을 가진 목사님들이 홍보해주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지금은 브랜딩을 통해 가치가 매겨지는 시대다. 의도했든 안 했든 이 작은 책의 가치를 보수파의 목사님들이 크게 올려주고 있다. 나도 그런 글을 보고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하면서 사서 봤고, 정작 보고나서는 책의 내용보다 목사님들의 반응 때문에 놀라게 됐다.

 

2. 나는 이 책을 보고 저자의 박학다식이 들어오지 않았고, 계속해서 정직하게 질문을 던지는 구도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딸에게 응답하는 아빠의 마음이 들어왔다. 박학다식이 먼저 들어오는 것은 본인의 공부가 편향되었거나, 짧았거나, 컴플렉스로 공부를 했거나일 것이다. 다른 글에도 썼거니와 이 책의 종류는 논문이 아니다. 내용도 충분하게 늘이고 각주를 달아 치밀하게 논증하는 류의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3. 내 생각에 목회자들이 이런 류의 책에 대해 기분 나빠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저자가 보수적 신앙베이스로 시작하여 진보적인 내용으로 들어섰기 때문인 것 같다. 교회의 운영과 가르침을 책임 지는 목사로서는 신앙의 기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보수적 교회의 목사로서 이런 신앙은 일탈한 신앙이거나 시험 든 상태라 보여질 소지가 있는 것이다.

 

4. 나는 보수적신학을 공부하고 보수적신학과 신앙을 베이스로 삼는 목사이지만, 목사 혹은 역사적 신앙고백이 질문과 답을 독점하고 그 외의 것은 시험거리로 치부하는 모습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은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교회는 질문을 제한함으로 이 시대에 꺼져가는 권위를 세우려 안간힘을 쓴다.

 

5. 하지만, 교회에서 질문할 수 없는 자신의 자리를 발견한 순간 그는 교회에 더 이상 남을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된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교회에서 자신의 질문의 자리를 못 찾게 된 사람들일 것이다. 안 믿어서, 못 믿어서 떠나는게 아니라 너무 진지하고 성실하게 믿어서 교회를 떠나는 안타까운 일들이 생기는 것이다.

 

6.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나의 생각도 보수적인 목사님들께는 위협적인 생각이겠구나.. 어차피 무명의 아싸 DNA를 가진 나이지만 어쩌다 내가 드러나면 미쳤다는 얘기 듣겠구나 싶었다. 나보다 젊고 어린 목사님들도 개혁주의 신앙고백의 위대함 때문에 다른 이들의 생각이나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듯 했다.

 

7. 그래서인지 페북에서 나의 교제는 대개 타교단 목사님들과 이뤄지는 것 같다. 근데 다시 한번 나의 근본이 있는 보수파 형제목사님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이 책을 소화할 수 없는 목사, 소화시킬 수 없는 성도, 소화할 수 없는 신학이라면 그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오히려 이 책의 이야기에 응답하며 보수신학의 가르침을 더 분명하고 풍성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덮어놓고 아멘하는 사람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정직하게 공부하며 계속적으로 자신을 닦아가는 이의 생각이 훨씬 가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2023년 5월 4일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라는 책이야기를 쓰면 좋아요가 증가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냥 간단한 생각메모이니 좋아요 누르지 마시길.

아무래도 보수적인 목회자들에겐 어려운 지점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럼 나는? 이게 좀 불안한 대목인데, 나는 저자의 이야기에 꽤 동의하고 있다. 나는 보수적인 목회자가 아닌가보다.
일단 나는 처음부터 저자에게서 비슷한 고민의 향기를 느꼈었다. 같은 교단 교회의 집사님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럼 그렇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진보적이다, 소개된 책들이 다 그 쪽 책이다.. 불만을 제기하는데 나는 오히려 보수신앙에서 뻗어나간 질문으로 느껴졌었다.
저자의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대충 60년대 중후반생으로 간주한다면 저자와 내가 살아온 시간은 대충 겹친다(물론 내가 저자어르신보다 아주 젊다). 8,90년대의 교회의 흐름들, 복음주의 학생운동과 문서사역의 분위기를 공유한다는 말이다.
8,90년대는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전성기였다. 연합사역, 해외선교, 예배사역(이라 쓰지만 문화사역)이 비약적으로 일어났었다. 나는 그 시절 훈련된 대학생들이 어떤 삶을 살아갈지가 궁금했었다. 나야 신학을 하고 목회자가 될 터이지만, 신학생보다 더한 헌신과 성경공부 실력을 겸비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열어갈 미래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이 책을 보는 감정이 그렇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을 또 지나서 이제 머리가 희끗해진 선배들이 다시 써내려가는 신앙의 이야기다. 왜 이런 고민들을 했느냐를 따지지 말고,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된 한국사회와 교회의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의 고민들엔 절절한 상황들이 묻어있다.
그래서 사실 나는 이 책이 반갑다. 모든 의견에 동의한다기보다 이 책으로 비로소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옛날 나보다 똑똑하고 헌신적이었고, 성경지식도 많았던 선배들이 지금이라고 다르겠는가? 하지만 좀처럼 만날 수 없고 들을 수 없었던 그 이야기를 저자에게 들은 느낌을 받는다.
목사로서 살아온 시간들이 이제 선배들의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를 얹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건 절대적인 목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목사의 위치에서 보이는 것을 얘기하는 정도로 봐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이어질테니까.
여튼.. 나처럼 옛생각 하며 감상에 젖지 않더라도, 지상파 방송에서 할만한 교양예능 정도로 보면 딱 좋을 수준이다. 절대진리를 믿지 않는 세상에서 절대절대 하면 사람들이 절대로 말도 안 섞을 것이다. 나같으면 이 책을 제자훈련의 주요 참고도서로 쓸 것 같다.  

 

2023년 5월 15일

 

[ 믿,,1장 읽고서 ]

 

1. 옛날 목회자들은 그 동네에 유일한 지식인인 경우가 있었다. 근대적 지식은 백과사전적 지식을 지향했었고, 어두운 광야에 지식의 빛으로 비추는 계몽이 근대주의자들의 사명이고 꿈이었다.

 

2.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지금 수능 지문을 보면 이걸 과연 학생들이 알아보는 것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의 지문들이 많다. 그래서 학원이나 과외가 성행하는 것일테다. 이런 식의 고등교육을 전국민이 받고 웬만하면 대학가서 또 공부를 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경험과 공부를 통해 전문성을 함양한다. 그게 이 시대의 표준이다.

 

3. 그런 사람들이 교회가 맞닥뜨리는 성도들이다. 내가 생각할 때 사회에서 권위주의가 깨지게 된 시점인 2002년 어간에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86년생 정도) 아래로는 전세대와 완전히 다르다고 보면 맞을 것 같다. 목회자에 대해, 교회에 대해, 성경에 대해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거대서사의 강력한 영향력이 깨진 자리를 각자 의미를 부여하며 메꾸는 것이 일상화된 세대다.

 

4. 믿,,딸의 저자는 보수적인 교단의 성도이지만, 그가 부딪치는 세상은 보수신앙과 신학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들 투성이었을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지식인으로서 저자는 다양한 이 시대의 저작들을 보면서 계속해서 답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중간답변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한다.

 

5. 이 책의 독특한 지점을 알 것 같다. 보수적인 목회자일수록 세상학문의 강력한 자장아래 교육받고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교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그 시스템을 강화시키고 돌리는 위치에 있다보니 이런 류의 글들을 보면 자유주의나 진보사상으로 치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기독지식인으로서 한층 자유롭게 자신의 문제들을 정직하게 대면했던 것 같다.

 

6. 예컨대, 이 책의 첫장은 성경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공교롭게도 조직신학을 시작하는 서론이 성경관에 대한 가르침을 내용으로 하는 것과 같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 문제를 풀어가면서 저자는 로티, 칼포퍼, 가다머와 같은 사람들을 소환한다. 실제 글에서 이들이 엄청 비중있게 나오는 건 아니지만 저자의 결은 이들과 비슷해보인다.

 

7. 사실 그들을 소환한다는 것은 인식론과 존재론이라는 서양철학의 두 가지 기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지금의 진리 자리를 차지한 과학계의 철학적논쟁들, 과학적실재론이 말하는 스펙트럼도 알아야 함을 의미한다. 톰라이트가 현대학문의 자리에서 자신의 성경신학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비판적실재론을 사용한 것도 알면 좋을 것이고. 가다머와 리쾨르의 해석학도 대강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론들이 어떻게 비판을 받는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8. 그런 작업을 통해서 얻어지게 되는 것은 첫째, 세상과의 소통이다. 우리는 각자 거주하는 교황청에서 빠져나와 저잣거리로 나가야 한다. 둘째, 우리가 믿는 진리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다. 사람은 자기 서 있는 자리에서 보이는 것만 볼 수 있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서 있는 자리에서 이동할 때 진리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울 진리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셋째, 복음의 탁월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고민과 질문을 잘 모른다. 그냥 쉽게 판단한다. 우리가 세상의 고민과 질문을 안다면 우리가 막고 있던 천국문을 열고 복음이 그에 대해 답변하도록 길을 터줄 것이다.

 

9. 저자의 공부와 중간결론을 응원한다. 동의해서가 아니다. 세상학문과의 대화라 할 때, 어떤 부분은 너무 그대로 받아들인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 어떤 표현은 극복되지 못한 컴플렉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없는 사람이 없으니 딱히 비판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백과사전적 체계를 만드는 계몽주의적 지식인의 저작이 아니기 때문에, 조직신학자의 신학서적이 아니기 때문에 이 공부의 여정에 존경을 표하고 응원할 수 있다.

 

10. 개인적인 맘으로는 이 책을 갖고 목사님들이 같이 스터디 하면 어떨까 싶다. 책에서 말하는 논리나 참고서적들이 맘에 안 들면 한번 독파해보고 그에 대해 나는 어떻게 답할 수 있는지 나눠보는 것이다. 그런 대화가 결국 한국교회의 길을 만들어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