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리영희 교수의 별세에 대한 斷想
1. 오늘 많은 사람들에게 '사상의 스승' 이었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의식화의 원흉' 이었던 리영희 前 한양대 교수가 별세했다고 합니다. 통칭 '전논'으로 불렸던 그 유명한 '전환시대의 논리' 를 비롯하여, '우상과 이성',' 반세기의 신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그의 마지막 저술이 된 임헌영 교수와의 대담집 '대화' 에 이르기까지 그는 이성과 진실을 무기로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수많은 거짓과 신화에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실천적 지식인이었습니다.
2. 제가 젊은 날 처음 접했던 그의 저서 "우상과 이성"의 머릿말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로. 자주 인용되는 명문입니다. 좀 길지만 다 인용해 보겠습니다.
" 잘 알려진 노신의 글 가운데, 빛도 공기도 들어오지 않는 단단한 방 속에 갇혀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벽에 구멍을 뚫어 밝은 빛과 맑은 공기를 넣어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궁리하면서 고민하는 상황의 이야기가 있다. 방 속의 사람은 감각과 의식이 마비되어 있는 까닭에 그 상태를 고통으로 느끼지 않을 뿐더러 자연스럽게까지 생각하면서 살아(죽어)가고 있다. 그런 상태의 사람에게 진실을 보는 시력과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되살려 줄 신선한 공기를 주는 것은 차라리 죄악스러운 일일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말이다.........
진실을 안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전환시대의 논리>의 독자 가운데 의식의 깊은 중독증 상태에서 깨어나는 괴로움을 경험한 이야기를 나는 적지 않게 들었다. 이것이 독자에게 송구스럽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주입되고, 키워지고, 굳어진 신념체계와 가치관이 자신의 내부에서 무너져가는 괴로움의 고백이었다. 절대적인 것, 신성불가침의 것으로 믿고 있던 그 많은 우상의 알맹이를 알게 된 사람들에게는 그 잠을 깨는 괴로움을 준 것을 사과해야 하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역할을 다소나마 할 수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현실에 가려진 허위를 벗기는 이성의 빛과 공기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
3. 평생 자본주의적 삶에 비판적이고 북구의 사민주의적 체제에 친근감을 표시해 왔던 그가, 말년에 현실공산주의의 몰락의 원인을 제도가 사람을 변화시킬수 있다고 본 사회주의의 긍정적 인간관에 있다고 고백한 것은 큰 반향과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제도가 사람을 규정하며 제도의 변화는 사람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고 보는 구조결정론 내지는 사회결정론의 입장의 근거인 긍적적 인간관이야말로 사회주의 사상이 서있는 근본 토대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공산주의의 몰락이라는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평생 지니고 있던 신념을 과감하게 버리고 인간이 지닌 욕망, 혹은 소유욕이란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내리고 있습니다. 성경의 용어로 말하면 인간의 죄성을 인정한 것이지요.( 물론 인간다운 사회와 삶에 대한 그의 신념까지 거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이러한 그의 지적 정직성과 용감성이야말로 그가 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인가를 나타내주는 상징적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4. 성경은 그 시작인 창세기 1장부터 그 당시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던 모든 존재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고백하는 철저한 비신화화와 우상파괴의 메시지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는 하루빨리 그의 책의 인세가 0 원이 되고 그가 더 이상 발언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맘몬숭배,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기복화된 종교와 같은 온갖 우상들이 기독교인들의 심령을 사로잡고 있는 오늘, 비록 괴로울지라도 우상을 깨뜨리고 진실에 대면할 것을 요구하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 믿는 자들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예언자의 목소리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그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20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