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 민음사 펴냄)
1. 이 책은 프랑스 혁명기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유럽의 장기 19세기를 다룬 3부작인 <자본의 시대>, <혁명의 시대>, <제국의 시대> 와 1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소련의 해체까지 단기 20세기의 역사를 담은 <극단의 시대>를 포함한 몇 권의 명저를 통해 20세기 최고의 역사가의 반열에 오른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Eric Hobsbawm 1917-2012) 의 자서전이다. 저자 스스로는 이 책이 “인간이 살아왔던 세기 중 가장 별스럽고 끔찍한 세기를 세 대륙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좀 특이하게 살았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홉스봄” 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2012년 95세의 나이로 그가 사망했을 때 영국의 <가디언>紙 는 “그가 만약 25년 전에 죽었다면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후 좌우를 막론하고 가장 존경받는 역사가가 되었다.” 라고 썼다. 그것은 홉스봄이 영국 공산당이 해체될 때까지 끝끝내 당적을 유지했을 정도로 자신의 원칙과 소신에 충실한 사람이었지만, 경직된 관념이나 교조적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변화된 현실을 유연하고 날카롭게 직시할 수 있는 지성과 용기를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2.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중립국이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영국계 유대인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빈과 베를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홉스봄은 자신이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팽배했던 대공황의 시절 당대의 분위기에 따라 선택의 여지없이 ‘당연히’ 공산주의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 후 영국으로 이주하여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니면서 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했던 젊은 시절에서부터 냉전하의 영국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전위대 혹은 투사의 길을 포기하고 학자나 지식인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지자 내지는 동조자로 ‘다시 태어난’ 50년대, 쿠바나 베트남과 같은 제 3세계의 혁명운동에 고무되었고 학문적으로도 많은 업적을 쌓으면서 존경받는 학자로 살아갔지만 ‘정통’ 마르크스주의 신념을 고수했기에 당대를 휩쓸던 68운동의 혁명적 물결에 대해서는 끝까지 국외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60-70 년대를 거쳐,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거부하는 전통 좌파에 대응하여 영국 정치계를 뜨겁게 달군 논쟁에 참여했던 80년대와 소련 사회주의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 90년대, 그리고 “소련이 무너지고 나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나라가 단기적으로 자신의 힘은 무한하며 그 힘을 무제한 써먹기로 마음먹은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2001년의 911사태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老 역사가는 개인적 삶의 여정과 그 가운데 경험했던 파란만장한 한 세기를 담담하지만 냉철하게 회고하고 평가한다.
3, 당대의 가장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라는 그의 책이 정작 사회주의의 종주국 소련에서는 단 한권도 번역되지 않았고, 1990년대 동유럽권 몰락과 함께 해체되기까지 고집스럽게 당적을 유지했던 영국 공산당에서도 끝까지 정통이 아닌 비주류로 남았으며, “공산주의는 죽었으며 소련의 10월 혁명을 전범으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체제와 사회는 우리에게 꿈을 심어주었지만 이제는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폐허만을 남기고 깡그리 허물어져서 공산주의라는 구상 자체에 처음부터 허물이 있었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떨쳐내기 어렵다.” 라고 고백할 정도로 일찌기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기대를 철저히 접었음에도 불구하고 홉스봄은 왜 끝까지 공산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을까?
홉스봄은 이에 대해 그가 가진 신념이 “억압자에 대한 연민,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완벽하고 총체적인 지적 체계가 주는 미학적 매력, 새로운 예루살렘을 염원하던 시인 블레이크와 비슷한 약간의 소망, 속물근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감, 그리고 특정 집단이 아닌 온 인류를 위하는 혁명이라는 보편주의적 대의” 와 같이 소중한 가치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며, 소비에트 혁명과 그 체제를 삶과 역사의 전범으로 삼았던 1세대 공산주의자에 속한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는 혁명이란 현실적으로는 오래 전에 포기했고 심지어 거부했을지언정 결코 지울 수는 없는 꿈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냉전의 한복판이라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공산주의자로서 성공함으로서 자신에게 스스로를 증명하고자 했던 개인적 자존심도 한 몫을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자유와 정의라는 이상 없이, 자유와 정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들 없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느냐고, 20세기에 그렇게 살다 간 사람들을 기억조차 해주지 않고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우리에게 반문한다.
4.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자’ 홉스봄의 삶과 증언을 동시대를 살다 간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비교해 보는 것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일일 뿐 아니라 20세기라는 <극단의 시대>에 대한 총체적이고 균형잡힌 이해를 위해서도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1) 홉스봄이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던 1차 세계대전 이전의 평화롭고 안정된 유럽의 부르주아 시대 (La belle epoque)를 끊임없이 그리워했던 자유주의자요 평화주의자로 2차 세계대전 발발의 소식에 충격을 받고 망명지인 브라질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유명한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1881-1942)와 그의 자서전 <어제의 세계>
(2) 홉스봄과 비슷한 연배이자 그의 비슷하게 대공황 시기에 ‘자연스럽게’ 좌파적 사고를 갖게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관용적인 영국 사회에서 약간의 불이익 외에는 경력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홉스봄과 달리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메카시즘의 열풍 가운데서 자신의 좌파적 신념을 모두 부인하는 치욕적인 진술서에 서명한 후에야 겨우 경력을 이어갈 수 있었던 미국 지휘계의 아이콘 레너드 번스타인 (1918-1990)과 그의 전기 <레너드 번스타인>
(3) 빈에서 태어나 홉스봄처럼 젊은 시절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였으나 곧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고 자유주의의 강력한 대변자가 되어 평생 모든 종류의 전체주의적 억압에 맞선, 유명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저자인 우파의 스승 칼 포퍼 (1902-1994) 와 그의 대담집 <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4) 홉스봄이 자신의 정신적 고향이요 삶의 전범으로 여겼던 바로 그 혁명의 국가 소련의 스탈린 치하에서 끊임없이 가해지는 핍박 가운데 자신의 예술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평생 목숨을 건 위태로운 줄타기를 벌여야 했던 소련의 위대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1906-1975) 와 그의 자서전 <증언>
(5) 독일의 무신론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전쟁의 참화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한 후 홉스봄처럼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폭력과 억압에 맞서며 소망과 십자가의 신학자로 일생을 살아간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1926- ) 과 그의 자서전인 <몰트만 자서전>
(6) 아일랜드 출신으로 철저한 무신론자였다가 젋은 시절 회심을 경험한 후 20세기를 대표하는 기독교 변증가와 판타지 작가로 명성을 날렸지만 홉스봄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당대의 주류 기독교에 대해서는 끝끝내 이방인으로 남았던 영국의 작가 C.S 루이스 (1898-1964) 와 그의 전기 <C.S. LEWIS>. 그들의 시대, 그들의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5. 마지막으로 이 책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홉스봄의 말을 인용하기로 한다. 여기서 공산주의를 교회 내지는 하나님 나라로, 홉스봄 자신을 가리키는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바꾸어 읽는다면, 아니 그의 인생 전체를 하나님 나라의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번역해서 읽어 본다면 과연 어떨까? 나는 그러한 삶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나그네의 삶, 한마디로 “제자도” 라는 말로 가장 잘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는 혹시 숨겨진 하나님의 제자였을까? “.....중유럽 사람들 속에서 나는 잉글랜드 사람이었고, 영국에서는 유럽에서 온 이민자였으며, 어디를 가도 유대인이었고 특히 이스라엘에서도 다른 곳에서 유대인이 받았을 법한 왕따를 당했다. 전문가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거기에 반대하는 길을 걸었고, 여러 언어에 능한 코스모폴리탄이었고, 못 배운 사람에게 정치적 관심과 학문적 관심을 쏟아 부은 지식인이었다. 심지어 나는 내가 접해본 나라들 안에서 정치적으로 소수파에 머물러 있던 공산주의자들 안에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별종 취급을 받았다. 개인으로서는 이것 때문에 살아가기가 고달팠지만 역사가에게 그것은 각별한 자산이었다....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