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단상 기독교

가난한 자들의 인식론적 특권

서음인 2016. 12. 14. 12:53

강호숙 박사님이 쓴 <여성이 만난 하나님>을 읽은 후 다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슬피 울며 따라가던 여인들을 향해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 (눅 23:28)고 말씀하신 부분을 "예수님께서 자기의 슬픈 감정에만 사로잡혀 있는 여인들을 교정해 주시는 것"이라는 일종의 질책으로 해석한 (남자가 썼음에 틀림없는) 공과가 있었나 봅니다. 또 모 신학대학 남자교수께는 <기독론>이라는 자신의 책에 "사복음서에는 부활의 첫 증인이 막달라 마리아로 되어 있지만, 기독교 전통으로 볼 때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부활의 첫 증인으로 간주한다"라고 썼다고 합니다.


바로 제가 30년 이상 다닌 교회가 속한 교단의 주일학교 공과에 나오는 이야기요, 그 교단에 속한 신학교 교수의 말입니다. 정상적인 상식과 성정을 지니고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생각들입니다만, 폐쇄적인 자신들만의 "이너 서클"안에서 “자기 생각의 순환 속에서 굳어지는 공부의 지옥”에 빠져 있는 분들에게는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겠지요. 제게는 그 자고한 "이너 서클"의 멤버들에게 핍박받고 내쳐진 저자의 해석이 훨씬 깊이 있고 자연스러우며 타당해 보입니다.


젊은 시절 접했던 해방신학의 여러 주장들에 100%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가난한 자들의 인식론적 특권"이라는 가르침만큼은 지금까지도 제 뇌리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망친 노예들과 나라 잃은 포로들과 식민지 백성들과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정치범들의 손을 빌어 쓰신 책인 성경은, 약자와 비주류와 소수자와 이주민과 어린이와 여성들의 눈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진실의 속살을 온전히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