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단상 기독교

'익숙함'을 버리니 '문학'과 '문맥'이 보이더라 - 성서(번역)의 역사

서음인 2017. 1. 21. 09:05

서구 기독교를 1500년 이상 지배했을 정도로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이 컸던 성경 번역인 불가타 역을 만든 히에로니무스도 당대에는 고풍스러운 고대 라틴어로 된 기존의 텍스트를 감히 읽기 쉬운 당대의 일상 라틴어로 바꾸려고 했다는 이유로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었군요. 1000년도 넘은 세월이 지난 후 그 불가타 역의 문제들을 고치려 했던 에라스무스 역시 일개 문법학자가 사소한 실수나 오탈자를 빌미로 삼아 거룩한 성경(불가타)의 텍스트를 공격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고요. 심지어 그 후 "쟁기를 모는 모든 소년이 성직자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게 할 것"이라며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을 금지하는 당대의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통속적인 잉글랜드 방언'으로 성경을 번역했던 윌리엄 틴데일은 교살당한 후 화형에 처해졌다고 합니다.

 책이 귀했고 귀족들을 포함한 인구의 절대 다수가 문맹이었으며 일반인들이 성경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죄악시했던 과거에는 그랬다 치더라도,  '오직 성경'을 강조하는 종교개혁의 후예들인 21세기의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왜 몇 번의 개정을 거치기는 했다지만 1938년의 번역을 근간으로 하는 고어투로 된 어렵고 딱딱한 개역(개정) 성경을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것일까요? 성경이 너무 '쉬워 보이는' 것보다 뭔가 범접하기 힘든 어려움이나 고풍스러움의 아우라를 풍겨야 '성경답다'고 느끼는 것일까요? 아니면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요? 그도 아니면 그냥 자신이 오랫동안 접해 왔던 익숙한 번역을 바꾸는 것이 불편한 것일까요? 혹시 나만 빼고 모든 성도들이 개역(개정) 성경을 아무 문제없이 쉽고 편안하게 읽고 있는지도 .....

 # 저는1998년 이후로 개인적인 통독과 공부와 묵상을 위해, 문체만으로는 이야기인지 시인지 편지인지 잘 구분되지 않을 뿐 아니라 편안하게 읽히지 않아 전체적인 문맥을 파악하기보다 자꾸 익숙한 구절들에만 눈길이 가게 되는 개역(개정)성경 대신, 이해하기 쉬운 현대어로 된 표준새번역 성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익숙함'을 버리니 '문학'과 '문맥'이 보이더라고 요약할 수 있겠네요.

세 권의 책

일상어였을때는 의심받다가 '고풍스러워진' 후에야 수용된 히에로니무스의 불가타 역.

감히 일개 문법학자가 성스러운 불가타 역에 손을 대려 하다니! 

쟁기를 모는 소년이 성직자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아는 그날이 오기를!

아가의 현대어 번역(표준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