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 갚기 - 필리핀에서 오신 어머니 수술!
어제 시력감소를 호소하는 외국인 환자 한분이 우리 병원에 찾아오셨습니다. 한국남편과 결혼한 딸을 방문해 잠시 머물고 계시는 필리핀 국적의 여성이었습니다. 검사해보니 오른쪽 눈은 심한 백내장으로 시력이 0.1도 채 되지 않았고, 왼쪽 눈 역시 백내장이 많이 진행되어 수정체 전체가 하얗게 변하고 일부는 녹아서 액화되어버린 성숙백내장(mature cataract) 상태로 시력도 앞에서 손이 흔들리는 것만 겨우 느낄 수 있는 수준(안전수지 hand motion+)이었습니다. 이 정도로 심한 백내장은 요즘 한국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고, 비전케어 사역을 위해 외국에 나갔을 때나 가끔 볼 수 있지요. 외국인이라 의료보험이 없어 수술비가 꽤 나올 상황이었습니다만, 잠시 생각 끝에 최소한의 실비만 받고 수술해드리기로 하고 어제와 오늘 양안 모두 수술을 잘 마쳤습니다. 수술 전 실명상태(안전수지)였던 왼쪽 눈 시력은 수술 후 첫날인 오늘 0.5까지 회복되었네요! 장모님을 초청해 수술까지 해드리려고 노력하는 사위와, 남편과 깔맞춤 옷을 입고 밝게 웃는 딸이 너무나 예뻐(?) 보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10년 전 비전케어라는 좋은 단체를 만나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봉사할 기회를 얻었고, 가는 곳마다 현지 분들에게 분에 넘치는 환대를 받았습니다. 불교도이기도, 무슬림이기도, 기독교인이기도, 사회주의자이기도 했던 그분들은 국적과 인종과 종교와 삶의 방식이 전혀 다른 우리가 그 나라에서 진료와 수술을 진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고, 자신들의 병원을 아무 연고도 없는 외국인인 우리에게 기꺼이 개방해 주었으며, 누군지 알 수도 없는 이방인 의사에 불과한 저에게 자신들의 소중한 눈을 믿고 맡겨 주었습니다. 시력을 찾게 된 분들이 전해 준 엄청난 감사와 축복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요.
제가 지금까지 여러 나라에서 받아 왔던 놀라운 환대를 갚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게 찾아오는 나그네와 이방인과 소수자들에게 베푸는 작은 환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여성신학자인 레티 러셀이 그의 유작인 <공정한 환대>에서 밝힌 바와 같이 '본문으로 괴롭히기(textual harassment)' 를 통해 지속적으로 타자에 대한 배제와 억압을 자행하는 ‘차이의 해석학’이 아닌, 하나님의 환대 속에서 사람들을 환영하면서 차이를 긍정하는 ‘환대의 해석학’이야말로, '요란하고 유쾌한 차이로 가득 찬' 21세기의 세계화되고 다원화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실천하는 가장 적실한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