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단상 기독교

<종교신학 강의>와 <오픈 시크릿>에 나오는 종교 간 대화

서음인 2017. 12. 9. 18:31

정재현 교수의 <종교신학 강의> 를 막 다 읽었습니다. 제목대로 종교신학(배타주의-포괄주의-다원주의)을 강의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는 '무서운' 책입니다만,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며' 우리가 가진 '신앙'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통찰력 넘치는 책이기도 하네요. 특별히 '자기동일성'에서 '구성적 상대성'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며 종교 간 대화를 강조하는 종교신학자 레이문도 파니카의 견해에 눈길이 갑니다.

파니카는 종교간 대화의 규칙을 제시하면서 "우리는 개종이라는 도전에도 직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개종 불가라는 틀에 묶인 채 기계적으로 자신이 소속된 종교에 투신하는 것을 참된 신앙으로 보기 어려우며 ....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우리는 새롭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믿어서 잘 간직하고 있는 신 관념을 고수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믿게" 된다는 것이지요. 파니카는 "개종 가능성을 전제할 때 우리는 매일 새롭게 자신의 신앙을 선택하고 결단해야 할 책임을 짊어지게 되며 .... 따라서 개종 가능성은 우리의 믿음을 참되고 살아있게 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파니카의 견해는 흥미롭게도 제가 인생책 중의 한 권으로 삼고 있는 <오픈 시크릿>에서 "그리스도인이 타종교인과 대화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깊이 헌신한 자로서 다른 종교에 헌신하는 이웃과 만나는 것이지만 ....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러 오시는 곳은 인간의 모든 종교적 윤리적 업적의 꼭대기가 아니고 밑바닥이기에 그리스도인들 역시 다른 종교를 믿는 신자를 만나기 위해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아야만 한다. 타종교와의 대화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은 그 결과 자신에게 심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위험을 인식해야 하며, 동시에 성령께서 대화를 이용해서 상대방이 예수님을 믿도록 회심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또 기대할 수 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나의 기독교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는 길이며, 이런 위험부담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에만 비로소 교회는 세상을 향한 증인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 라고 강조했던 레슬리 뉴비긴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아직도 위대한 선교의 세기였지만 서구 제국주의의 팽창기이기도 했던 19세기적 관점이라 할 수 있는 "전제주의"의 틀에 갇힌 공격적이고 일방적인 선교관이 다수를 점하는 한국 기독교의 상황에서, 파니카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원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복음이 전해질 수 있는지 깊이 숙고했던 지난 세기의 위대한 선교사요 선교신학자 레슬리 뉴비긴의 빛나는 통찰은 훨씬 더 많이 주목받을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