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의사!

"말이 되는" 기도 - 원장의 손과 환자의 눈 VS 원장의 눈과 환자의 손

서음인 2018. 12. 28. 17:43

백내장 수술을 주종목으로 삼고 있는 시골의사인 저는 수술 시작 전에 수술 현미경 앞에 앉아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환자의 이름을 빼면 거의 대동소이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ooo 님의 백내장을 수술해 드리게 되었습니다. 수술의 모든 과정이 아무 문제 없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진행되어서, ooo 님이 밝은 시력을 회복하실 수 있도록 "원장의 손과 환자의 눈"을 잘 지켜 주시옵소서. 아멘.”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술 전 열심히 기도하고 눈을 떠보니 뭔가 좀 이상했습니다. 잘 생각해보니 아뿔사 ~~ 오늘은 원장의 눈과 환자의 손을 잘 지켜달라고 기도했군요. 수술할 환자분이 거의 귀가 들리지 않는 분이라, 수술 전에 환자분, 수술실에서 손 절대 올리지 마세요를 목이 터져라 외쳤더니 무의식중에 환자의 손을 지켜달라는 기도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원장의 눈과 환자의 손을 지켜달라는 기도도 말이 되는기도였습니다.

 

숙련된 백내장 수술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의 차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사실 의 차이 역시 손의 차이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자신의 수술시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 문제를 발견할 을 가지지 못한 수술자는, 결국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만큼 큰 사고를 만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원장의 눈을 지켜달라는 기도가 말이 되는 이유입니다.

 

또 환자가 수술 중에 소독된 수술자나 수술기구를 손으로 오염시키면, 그 수술자나 기구는 즉시 거룩을 상실해 더 이상 누군가의 눈을 뜨게 해주는 성스러운 제의(수술)에 참여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특히 귀가 잘 안들리거나 협조가 잘 안되는 환자를 수술할 때 환자의 손을 잘 지켜달라는 기도는 매우 중요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오늘 하나님은 원장의 손과 환자의 눈뿐 아니라 원장의 눈과 환자의 손까지도 잘 지켜 주셨고, 지난 번 방문했던 병원에서 수술실까지 들어갔다가 귀가 안들려 수술을 못한다는 통보를 받고 실망한 채 돌아섰던 환자는 오늘 수술을 잘 받으시고 행복한 표정으로 귀가하셨습니다. 이번에 효험을 좀 봤으니 앞으로도 가끔 원장의 눈과 환자의 손을 잘 지켜달라고 기도해봐야겠습니다 ㅋㅋ

 

 

# 사진은 2015년 비전케어 캠프때 키르기즈의 수술실에서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