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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과학

전염병의 문화사 (아노 키렌 지음, 사이언스 북스 펴냄)

by 서음인 2016. 5. 26.

20세기 후반 들어 선진국에서는 항생제의 발견과 의료 및 보건수준의 향상으로 전염병의 발생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제 전염병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의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세력이 아니며, 현대의학은 마침내 길고 긴 역병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그 결과 전염병의 부재란 당연한 것이며 거의 권리라고까지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AIDS, 조류독감, 광우병과 같이 그 동안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치명적인 전염병들이 연이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이러한 낙관론은 급격하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저자는 인간이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다는 낙관론은 오만하고 위험한 것으로, 기생과 감염이란 자연의 기본적인 현상이며, 전염병은 생명 자체만큼이나 오랜 기원을 가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는 역사가인 윌리엄 맥닐이 전염병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인 전염병의 세계사(이산 刊)에서, 인간의 삶이란 병원균에 의한 미시기생과 대형 포식동물에 대한 거시기생 사이의 불완전한 균형라고 이야기한 것과 동일한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대부분의 전염병 생물체는 몇 세대에 걸친 인간 숙주와의 상호작용으로 서로 적응되어 생태적 균형을 이룬 결과, 치명적이지 않은 지역적 풍토병, 혹은 소아전염병을 일으키는 형태로 인간과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구의 증가나 인간 행동양식의 변화, 교역망의 확대와 그에 따른 인구의 이동, 경제의 발전과 이에 따른 생태계의 무분별한 훼손 등으로 생태적 균형이 깨어지고 그 결과 인간집단이 지금까지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는 병원체에 노출되면, 대량 절멸을 초래할 수 있는 치명적인 전염병의 대유행이 초래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전염병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통해 중세시대의 페스트나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천연두, 그리고 근대의 결핵이나 콜레라를 거쳐 현대의 AIDS 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희생자를 냈던 참혹한 역병들은 예외 없이 이러한 ‘생태학적 붕괴’의 시대에 그 결과로 일어났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새롭고 잔혹한 전염병의 대유행을 묵시록에 나오는 네 번째 기사의 현현으로, 임박한 종말의 징조로 보는 견해에 익숙하다. 그러나 이러한 재앙들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과 자연파괴로 인해 ‘생태학적 균형’이 파괴된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 결국 인간 자신의 죄와 탐욕이 인간 스스로에게 심판을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의 청지기로서 그것을 잘 관리하고 창조의 의도에 걸맞게 가꾸어야 할 권한과 책임을 지고 있다. 그 권한을 남용하여 자신의 탐욕을 위해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 인류는 마크 제롬 월터스가 그의 책 새로운 전염병이 몰려온다(북갤럽 刊 ) 에서 에코데믹이라고 명명한, 새로운 전염병의 역습에 계속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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