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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철학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임마누엘 칸트 지음, 노진석 옮김, 도서출판b 펴냄)

by 서음인 2021. 5. 8.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는 임마누엘 칸트가 국가들 간의 영원한 평화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건을 몇 가지 항목으로 정리해 제시한 작은 책이다. 그는 도덕과 법의 제한을 무너뜨리고 인간의 악한 본성을 제한 없이 분출시키는 전쟁을 증오했으며, 이성의 이념에 근거해 영원한 평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의무라고 역설했다. 그리고 전쟁을 종식시키고 영원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주권을 간섭받지 않는 국가들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국제연맹을 창설하고, 그 모든 구성원들에게 개별 국가의 시민권을 넘어서는 '세계시민권'이라는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칸트는 이를 위해서 국내적으로는 시민이 스스로 정책을 결정하는 공화주의적 정치체제가 필요하고, 국제적으로는 ‘환대’의 정신에 입각한 국가 간의 자유로운 교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칸트의 생각은 ‘평화’나 ‘환대’와 관련된 현대적 담론들의 기초가 되었을 뿐 아니라, 국제연맹, 국제연합, 유럽연합과 같은 국제기구의 이념적 근거가 되었다고 한다.

 

칸트의 글을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그 첫 번째인 ‘국가들 사이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예비 조항’은 영구 평화의 실현을 방해하는 일들을 금지하는 조항들이다. 주로 국가 간의 신뢰를 해치는 일들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1) 미래의 전쟁에 대한 은밀한 소지를 남겨 놓은 어떠한 평화 조약도 타당한 것으로 인정되어서는 안된다. (2) 어떤 국가도 다른 나라에 의해 상속, 교환, 구매, 증여, 등을 통해 획득되어서는 안된다. (3) 상비군은 점진적으로 완전히 폐지되어야 한다. (4) 대외적인 국가분쟁과 관련하여 어떠한 국가채무도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5) 어떠한 국가도 다른 국가의 헌정체제와 통치에 폭력적으로 간섭해서는 안된다. (6) 어떠한 국가도 전쟁에서 상호간의 신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암살, 항복조약의 파기, 반역 모의 등과 같은 적대행위를 행해서는 안된다.

 

두 번째 부분인 ‘국가들 사이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확정조항’은 영구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건에 대해 다룬다. (1) 모든 국가는 공화주의적 정치체제를 가져야 한다. 자유 · 상호의존 · 평등의 원리에 따라 수립된 공화정 아래에서는 소수의 지배자가 아닌 시민이 직접 전쟁을 결정하게 된다. 시민들은 전쟁의 모든 책임과 폐해를 스스로 감당해야 때문에 전쟁에 신중하게 될 수밖에 없다. (2) 국제법은 자유로운 국가들의 연방주의에 기초해야 한다. 국가들간의 평화는 모든 전쟁의 종식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 간의 국제연맹 또는 평화연맹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영향력 있고 계몽된 시민들이 공화국을 형성하게 되면, 국제연맹은 이 국가를 중심으로 생성되고 확장될 수 있다. (3) 세계시민법은 보편적인 환대라는 조건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 영구 평화는 모든 인간이 개별 국가의 경계를 넘어 보편적 권리와 존엄성을 지닌 세계의 시민이라는 인식이 확장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러한 인식은 ‘환대’의 정신에 입각해 사람들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 교류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우호를 보장하는 법인 세계 시민법을 통해 구체화될 수 있다.

 

‘영원한 평화’에 대한 칸트의 이해는 자아란 확고한 자기동일성을 지닌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주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둔 지극히 근대적인 기획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20세기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자아란 ‘지향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관심’이나 ‘욕망’에 의해 오염되어 있으며, 무의식 또는 사회경제적 토대에 의해 규정되거나 구조의 효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류가 20세기 전반기에 경험한 참혹한 세계대전과 전대미문의 홀로코스트는 인간의 합리성에 전제로 하는 근대적 낙관론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그리고 이는 칸트의 근대적 인간관에 근거한 평화의 전망이 현실 속에서 제대로 실현되기 힘든 관념적 이상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과연 영원한 평화(혹은 그 근사치에라도)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가? 약육강식의 냉엄한 국제 질서 속에서 절대적이고 영원한 평화의 비전을 포기한 채 오직 총칼의 힘에만 의지해야 하는가? 칸트의 이상을 ‘불가능의 가능성’으로 남겨 놓은 채 끊임없이 이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유동적이고 수행적인 새로운 시대의 자아이념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평화의 비전을 세워야 하는가? 아니면 계시의 가치를 옹호하는 종교의 자리에서 평화의 비전을 찾아야 할 것인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어떤 종류든 실현 가능성이 크던 적던 우리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가진 ‘영원한 평화에 대한 염원과 비전’의 총합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가지는 ‘인간다움’의 현주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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