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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단상 기고/책소개

2017년 올해의 책 - 평신도 · 망치 · 삶의 자리

by 서음인 2017. 12. 12.

# 선정기준을 요약한 키워드는 평신도, 망치, 삶의 자리입니다. 즉 (1) 평신도 - 지나치게 전문적이지 않아 평신도도 충분히 읽고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책 (2) 망치 - 한국의 평균적인 그리스도인이 지니는 고정관념을 망치로 내리치는 책 (3) 삶의 자리 - 2017년 한국교회의 삶의 자리에서 시의성과 적실성이 있는 책입니다. 

# 어쩌다보니 첫 번째 책이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이고 두 번째 책이 <성서, 역사와 만나다>네요! 저는 리뷰를 쓸때 성경/성서, 하나님/하느님과 같은 명칭들은 저자가 쓰는 용어를 그대로 옮기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5년 이상 들어온 '성경'과 '하나님'이 더 편안하지만, 성서/하느님으로 표기된 책들도 꽤 접해서인지 '성서'와 '하느님'도 별 거부감은 없어요. 한국교회에서 이 용어들은 여러 이유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일종의 정체성 표지(경계표지, boundary marker)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만, 저는 그냥 비본질적인 문제(아디아포라)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1.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김근주 지음, 성서유니온 펴냄)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구약을 가르치는 저자는 쉽게 풀어 쓴 성경해석 가이드라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성경을 읽을 때는 ‘문자’를 숭배하기보다 문자의 배후에 있는 ‘정신’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며,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성경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는 해석의 원리는 ‘사랑의 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경의 올바른 적용을 위해서는 개인윤리에만 집착한 나머지 구조악에 무감각해지거나 하나님 나라의 공의를 구하는 삶에 소홀해지지 않도록, 성경뿐 아니라 상황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이 책은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를 가르는 성경해석의 리트머스 시험지라 할 수 있다.


2. 성서, 역사와 만나다 (야로슬라브 펠리칸 지음, 비아 펴냄)

금세기를 대표하는 그리스도교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성서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고 번역되었으며 어떻게 제작되고 유통되어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읽히고 이해되어 왔으며 어떻게 당대의 문화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인류의 고전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서방교회(가톨릭과 개신교)뿐 아니라 동방교회와 유대교 그리고 비기독교 세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와 문화 및 그리스도교 교파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저자의 박식함이 인상깊다. 한 민족의 경전이었던 성서가 모든 인류의 고전으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낸 '성서의 문화사'다. 


3. 로마서 13장 다시 읽기 (권연경 지음, 뉴스앤조이 펴냄)

신약학자로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인 저자는 로마서 13장이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상의 정의와 질서를 수호하고 있는 정부 권력에 대한 복종을 말하는 것이지 불의한 정부에 대한 저항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으며, 그리스도인은 불의를 자행하는 악한 통치 권력과 그들을 옹호하는 종교 권력에 대해 요한계시록 13장을 비롯한 여러 성서 본문의 가르침에 따라 제대로 된 통치 행위에 복종하는 바로 그 양심으로 저항을 감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이었던 로마서 13장, 더 나아가 정치권력과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최적의 입문서라 할 만하다.


4. 기독교역사 속 술 (성기문 지음, 시컴뮤니케이션 펴냄)

저자는 ‘기독교와 술의 역사적 관계’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기독교는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종교였으며, 음주를 죄로 여기는 한국 교회의 전통은 증류주의 유행이나 깨끗한 물의 보급과 같은 역사적 변화와 함께 19세기에 불어닥친 세계적인 금주 운동과 맥을 함께 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는 오랫동안 절대선과 절대악이 아닌 비본질적인 문제(아디아포라)로 여겨졌던 음주 문제에 대한 한국교회의 진지한 신학적, 목회적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직도 금주를 경건과 신앙의 바로메타인 양 맹신하는 한국교회에 각성을 촉구하는 책이다.


5. 중동선교의 시작과 끝을 묻다 (김동문 지음, 대장간 펴냄)

목사와 선교사로 오랫동안 중동 지역에서 무슬림과 이웃해 살아왔던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교회를 휩쓸고 있는 '이슬람 포비아'의 광풍에 대해 우려하면서, ‘이슬람 지역’과 ‘무슬림의 삶’ 그리고 ‘이슬람 선교’에 대해 버려야 할 태도와 가져야 할 자세를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인지상정(人之常情)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혐오와 배제의 태도를 버리고, 포용과 환대 그리고 인격적 복음 나눔으로 우리 곁에 와 있는 무슬림들과 마주할 것을 요청한다. ‘이슬람’과 ‘선교’, 그리고 ‘중동선교’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의 필독서, 곧 우리 시대에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필독서다.


6. 창조론 연대기 (김민석 지음, 새물결플러스 펴냄),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우종학 지음, 새물결플러스 펴냄) 

한국교회를 지배하는 반지성주의의 장자인 ‘창조과학’에 대한 기독 지성계의 응답을 잘 담아낸 책. 둘 다 창조과학과 관련된 논쟁의 역사와 현재의 이슈들을 잘 요약하고, 창조과학의 과학적  신학적 문제점을 명쾌하게 지적하며,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바른 태도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저자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성경과 과학이라는 두 권의 책을 주셨으며, 그리스도인들은 그 중 한 권으로 다른 책을 함부로 재단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창조론 연대기가 친밀한 웹툰의 형식으로 이 주제를 탁월하게 요약하고 있다면,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은 해당 주제를 좀더 깊이있게 다루는 이 분야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7.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 (박흥식 지음, 21세기 북스 펴냄)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냉철한 역사가의 시선으로 종교개혁의 전 과정에 루터라는 인물이 끼친 영향과 그 공과를 차분히 살핀다. 저자에 따르면 초기 종교개혁의 성공은 ‘이신칭의’와 같은 새로운 신학적 통찰 때문이라기보다 이 운동이 변화를 갈망하던 16세기 독일과 유럽 기독교세계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했기 때문이었으나, 개혁이 진행되면서 당대의 정치권력과 밀착해 중세적 봉건질서에 안주하는 길을 택했던 루터는 더 철저한 개혁을 원하는 다른 개혁자 집단이나 민중들의 요구를 외면함으로서 결국 '미완의 개혁가’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가슴을 뜨겁게 달구기보다는 머리를 맑게 해주는 균형 잡힌 루터/종교개혁 입문서다.


8. 포스트휴먼 신학 (장윤재 지음, 신앙과지성사 펴냄)

이대 기독교학과 교수인 저자가 모든 자연과 생명이 고통당하는 인류세(Anthropocene)의 삶의 현장에서 발로 쓴 글들을 모은 책. 저자는 4대강 · 핵발전소 · 동물학대 · 켈트 영성 · 기후변화에 대해 살피면서, 교회가 지독한 인간중심주의와 차별주의에서 벗어나 '비인간 동물'을 포함한 모든 자연과 '동료 피조물'로 함께 공생하는, 여성적이고 생태적인 제 2의 종교개혁을 일으켜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인간신격화'를 낳은 근대 휴머니즘의 과오를 극복하고 중심주의로 돌아가기 위해, 켈트 영성과 포스트휴먼 신학으로의 '회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류의 횡포에 고통당하는 자연과 생명을 품는 생태 · 포스트휴먼 신학의 인식과 실천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9. 종교신학 강의 (정재현 지음, 비아 펴냄)

연세대에서 종교철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이 책에서 다종교 상황에서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관계를 다루는 종교신학의 핵심적인 주제인 배타주의와 포괄주의 그리고 다원주의를, 각 영역을 대표하는 중요한 신학자들을 소환해 찬찬히 살펴나간다. 그리고 우리의 태도를 '자기동일성'에서 '구성적 상대성'으로 전환함으로서, 우리 안의 다름을 통해 남들을 만나고 그름을 봄으로서 우리를 고쳐나가자고 호소한다. 복음주의권의 금기에 속하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위험한’ 책이지만, 다원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한번은 정직하게 대면해야 할 중요한 질문들을 던지는 ‘머리를 망치로 내리쳐 주는 책’이기도 하다.


10. 기독교 교리 핸드북 (브루스 밀른 지음, 안종희 옮김, IVP 펴냄)

목회자와 선교사, 그리고 학자로 활발하게 사역해온 저자가 복음주의 교의학의 정수를 명쾌하고 깔끔하게 요약해 낸 정평 있는 교리 교과서의 개정판. 전통적인 조직신학의 체계와 순서에 따라 중요한 교리적 주제들을 간략하지만 빠짐없이 다루고 있으며, 최근 복음주의권이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실천적 이슈와 관심사에 대해서도 관심 있게 살핀다. 유용성과 품격, 균형감각을 두루 갖추었으며, ‘보수적이지만 꼰대스럽지는 않은’ 영국제 복음주의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교리에 관심 있는 평신도들이 홀로 혹은 함께 공부하기에 최적의 책으로 강력히 추천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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