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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윤리이슈

급진적인 사랑 - 퀴어신학 개론 (패트릭 S. 챙 지음, 임유경/강주원 옮김, 무지개신학연구소 펴냄)

by 서음인 2019. 11. 14.

급진적인 사랑 - 퀴어신학 개론은 예일대와 하버드대, 유니온신학교에서 영문학과 법학, 신학을 공부한 성공회 사제인 패트릭 S. 챙이 쓴 퀴어신학 개론서다. 그는 20년전 남편(!)을 만났을 때 자신과 타인, 섹슈얼리티 및 젠더 정체성,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있는 장벽을 포함해 기존의 모든 경계선이 녹아내리는 급진적인 사랑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렇게 경계선을 녹이는 급진적인 사랑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삶, 죽음, 부활, 승천을 통해 죽음과 삶, 시간과 영원, 인간과 신의 경계선을 녹였다고 믿는그리스도교 신학, “섹슈얼리티와 젠더 정체성에 대한 기존의 경계선들은 본질적이거나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도전하는퀴어 이론 모두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그리스도교 신학과 퀴어 이론이 만나는 퀴어신학은 전적으로 '경계를 녹이는' 급진적인 사랑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퀴어함(queerness)와 신학이 무슨 상관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전부 다라고 대답하면서, 그리스도교 신학은 그 핵심에서 근본적으로 퀴어 활동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수많은 퀴어 신학자들의 신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기독교의 핵심 교리들을 급진적인 사랑의 관점에서 재해석함으로서 그리스도교 신학이 퀴어 활동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고 시도한다. 그동안 이 주제를 다룬 책들이 주로 방어적 입장에서 공포의 본문(text of terror)"들에 대한 성서신학적 주해에 치중했다면, 이 책은 "급진적 사랑"을 신학적 키워드로 삼아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서술된 본격적인 퀴어신학 입문서라 할 수 있다


혹시 이 문제에 대한 내 개인적 견해가 궁금한가? 보수적인 교회에 40년 가까이 출석하고 있는 한  안수집사가 현재 한국교회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이 '위험한' 책을 사서 읽고 요약해 블로그와 페이스북 담벼락에 게시했다는 사실까지를 토대로 한번 추측해보기 바란다. 진짜 궁금하다면 30년 후에 알려주겠다. 



퀴어신학이란 무엇인가?



퀴어란 무엇인가     


(1) 포괄적인 용어로서의 퀴어  퀴어레즈비언과 게이, 양성애자와 같이 특이한/주변화된 섹슈얼리티를 지닌 사람이나 트랜스젠더 같이 특이한 젠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나 간성과 같이 특이한 성기를 지닌 사람들을 포괄적이고 집합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다. 또한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섹슈얼리티와 전체 정체성의 관점에서 더욱 정의로운 세상을 추구하며 퀴어 자매나 형제들과 연대하는 지지자도 퀴어에 포함된다(2) 규범을 거스르는 행위로서의 퀴어  최근에 성소수자들은 퀴어라는 단어를 특히 섹슈얼리티와 젠더 정체성에 관한 사회적 규범에 거스르거나 반대하는 모든 것을 자긍심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끌어안는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사용한다(3) 경계선을 지우는 행위로서의 퀴어   퀴어의 세 번째 의미는 섹슈얼리티와 젠더의 본질주의적이거나 고정된 이분법적 범주에 관하여, 그 범주를 지우거나 해체하는 것이다. 섹슈얼리티나 젠더 정체성의 전통적 범주들은 본질적이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 수행적인 것이며 사회적 구성물이다.

 

퀴어신학이란 무엇인가    


(1) 성소수자가 하느님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성소수자에 의한 신학이나 성소수자를 위한 신학이다. (2)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대한 사회적 규범에 도전한다는 차원에서, 그것이 규범을 거스르는 방식을 의식하면서 하느님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자기만족에서 나오도록 충격을 주고 그들이 새로운 관점에서 신학을 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3) 섹슈얼리티 및 젠더 정체성의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분법적 범주들에 도전하고 그 범주들을 해체하는 하느님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교 신학의 담론이 섹슈얼리티나 젠더 정체성의 본질적인 범주 경계선은 물론 삶과 죽음, 신과 인간 같은 더 근본적인 경계선들도 지우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주로 세 번째 정의에 중점을 둔다.

 

퀴어신학의 네 가지 자료    


퀴어신학의 네 자료는 말씀, 전통, 이성, 경험이다. (1) 퀴어 성서  전통적으로 성서의 몇몇 공포의 본문들이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최근 퀴어 성서학자들은 퀴어의 관점에서 성서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함으로서 성서를 되찾고” “성서에 대한 권리를 다시 주장하고 있다. (2) 퀴어 전통  그리스도교 전통은 예외 없이 반퀴어적이라고 여겨져 왔지만 퀴어 신학자들은 이천 년 교회의 역사를 상세히 재검토하여 성소수자의 경험을 교회의 역사와 가르침으로 당당하게 위치시키고 있다. (3) 퀴어 이성  동성애 행위는 자연과 이성의 법칙에 어긋나는 부자연스럽고 악한 행위라고 여겨져 왔으나, 자연계의 수많은 동물들은 동성애 행위를 보이며 퀴어 신학자들을 후기구조주의의 이성, 즉 퀴어이론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신학을 전개한다. (4) 퀴어 경험  지금까지 성소수자들의 삶은 전통적인 신학 담론에서 배재되어 왔지만, 저자의 예에서처럼 퀴어의 경험은 퀴어의 관점에서 신학을 할 때 필수적인 자료다.

 

퀴어신학의 계보    


1950년대 중반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퀴어신학의 발전에서 등장하는 네 가지 갈래는 (1) 한 사람이 성소수자인 동시에 그리스도인임일 수 있으며 교회가 게이와 레즈비언을 교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방법을 보여주려는 변증신학 (2) 퀴어를 단순히 인정하는 것을 넘어 퀴어 해방, 즉 이성애주의와 동성애 혐오라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라는 해방신학 (3) “에로틱한 것”, 즉 타인과의 상호관계 속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인식을 중심으로 하는 관계신학 (4) 섹슈얼리티(동성애 대 이성애) 또는 젠더 정체성(남성 대 여성)에 대한 본질주의적 관념에 도전하여 이들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간주하는 퀴어신학이다. 현대의 퀴어신학은 탈식민주의 신학에서 나온 혼종성과 비판적 인종 이론에서 나온 교차성 개념에 토대를 두고 섹슈얼리티와 젠더 정체성 문제뿐 아니라 인종과 계급과 같은 다른 요인들에도 점점 더 주목하고 있다



하느님, 급진적인 사랑의 원천


 

하느님은 급진적인 사랑 그 자체일 뿐 아니라 이 급진적인 사랑을 타자들에게 끊임없이 내보내는 분이시다. 이 장들은 (1) 하느님이 급진적인 사랑으로 커밍아웃하는 계시 (2) 급진적인 사랑 그 자체인 하느님 (3) 급진적인 사랑의 내적 공동체로서의 삼위일체 (4) 하느님이 급진적인 사랑을 부어주시는 창조의 교리로 구성된다.

 

계시 : 급진적인 사랑으로 커밍아웃하신 하느님

 

계시의 교리는 하느님이 급진적인 사랑으로 커밍아웃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계시, 즉 커밍아웃은 성소수자가 커밍아웃하는 것처럼 기존의 경계선들을 녹이기 때문에 급진적인 사랑의 행위다. (1) 하느님은 신과 인간 사이의 구분을 허무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시기에 신과 인간의 경계를 녹인다. (2) 하느님이 성육신을 통해 아기 예수로 커밍아웃하신 사건은 하느님이 부자들 뿐 아니라 소외자나 약자들, 그리고 퀴어들과 연대하심을 드러낸 것이기에 강자와 약자 사이의 경계선을 녹인다. (3) 신의 계시와 트랜스젠더의 경험은 모두 완전함을 완성의 상태로 이해하기보다 불확실성과 계속되는 여정에 기초한 변형과 알지 못함의 상태로 보기에 앎과 알지 못함 사이의 경계를 녹인다.

 

하느님 : 급진적인 사랑 그 자체

 

하느님은 신과 인간 사이의 전통적인 분리를 포함한 기존의 경계선들을 녹이는 급진적인 사랑의 현현 그 자체다 (1) 하느님은 급진적인 사랑과 관련해 성소수가 섹슈얼리티와 젠더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듯 모든 종류의 경계선을 무너뜨리신다. (2) 퀴어신학자들은 하느님이 전능하시다는 전통적인 신의 속성, 즉 하느님의 절대적으로 강력한 본성을 하느님께 성적인 역할을 덧씌움으로서 패러디한다. (3) 하느님을 전능하신 분으로 여기는 피학적이고 가학적인 영성 대신, 여성. 할머니, 신성한 연인, 우리와 함께 고통당하시는 분 등으로 보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속성은 수행성의 문제이며, 하느님은 존재 없는 정체성이라는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퀴어다.

 

삼위일체 : 급진적인 사랑의 내적 공동체

 

삼위일체는 하느님 존재 자체 안에 있는 급진적인 사랑의 내적 공동체이며,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는 삼위일체 속에 초대되어 급진적인 사랑의 신성한 춤의 일부가 된다(1) 삼위일체의 열정적인 우정은 그리스도교적 관계의 규범인 한 쌍 중심의 재생산을 위한 섹슈얼리티를 대체하기 때문에 성적인 관계와 성적이지 않은 관계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2) 삼위일체란 우리로 하여금 남성들과 여성들이 한 쌍의혹은 고정된성적 정체성에 제한되어 있지 않고 다종의 정체성에 열려 있음을 일깨워 주기에 결혼과 가정 동반자 관계라는 한 쌍 중심의 관계를 무너뜨린다. (3) 삼위일체 하느님의 세 위격 사이에 벌어지는 성스러운 상호침투(perichoresis)는 자주 파편화되는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하나로 엮어준다.

 

창조 : 하느님이 부어주시는 급진적인 사랑

 

창조란 하느님이 피조물들에게 급진적인 사랑을 부어주시는 것으로 은혜가 그 본질이며, 물질과 영, 인간과 인간 외의 피조물, 결혼과 퀴어 섹스 사이의 이분법을 녹인다. (1) 우리 몸과 섹슈얼리티를 포함한 모든 물질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며 근본적으로 선하기에 창조의 교리는 영과 육의 이분법적 관점을 해체한다. (2) 하느님은 단 한종류의 피조물이 아닌 놀랍도록 다면적인 우주를 만드신 퀴어하신 분이기에 창조는 인류와 피조물 사이의 위계적 이분법을 녹인다. (3) 삼위 안에서 스스로 유지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계신 하느님에게 창조의 의무가 없다면, 인간 역시 하느님의 형상을 충족하기 위해 재생산을 해야 할 의무는 없다. 따라서 창조 교리는 결혼과 (재생산과 무관한) 퀴어 섹스 사이의 이분법을 해체한다



예수 그리스도, 급진적인 사랑의 회복

 


퀴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란 우리를 위하여 급진적인 사랑을 회복시키는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장은 (1) 급진적인 사랑을 거부하는 행위로서의 죄 (2) 급진적인 사랑의 화신인 예수 그리스도 (3) 급진적인 사랑을 잉태한 분으로서의 성모 마리아 (4) 급진적인 사랑을 통해 희생양 만들기를 끝내는 속죄의 교리로 구성된다.

 

죄 : 급진적인 사랑의 거부

 

삼위일체 하느님이 모든 경계선들을 녹이는 급진적인 사랑이라면, 죄란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이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 즉 경계선들과 분리를 해체하는 일에 저항하는 것이다. 우리가 섹슈얼리티나 젠더 정체성, 기타 요인들과 관계된 기존의 분리들을 강화시킬 때, 우리는 죄를 짓는다. (1) 전통적인 원죄 교리에서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경계선이 무의미하며, 성소수자가 특별히 더 비난받아야 할 죄인이라고 볼 수 없다. (2) 퀴어신학에서 죄란 섹슈얼리티와 젠더라는 범주의 구성주의적 성격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 경계선들을 녹이기를 거부하는 본질주의 태도로 정의할 수 있다. (3) 성소수자에게 죄는 벽장의 형태를 띠며, 오직 커밍아웃이라는 형태의 은혜만이 그들을 자유롭게 한다. (4) 죄의 또 다른 형태는 다양한 사회적 억압들이 상호 연관되어 있음을 보지 않으려는 형태를 취한다 .

 

예수 그리스도 : 급진적 사랑의 화신

 

성소수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급진적인 사랑의 화신’, 즉 육신을 입은 급진적인 사랑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적 경계이든, 사회적 경계이든, 섹슈얼리티의 경계이든, 젠더의 경계이든 매우 이례적으로 경계선을 넘나드는 존재다. (1)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인해 더 이상 인류는 상호배타적인 범주가 아니라 온전한 신성과 온전한 인성을 지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 기간동안 급진적인 사랑으로 정결함과 더러움, 거룩과 세속, 성인과 죄인이라는 사회적 경계선들을 넘나들었다. (3) 예수는 영광스러운 모호성을 품음으로서 섹슈얼리티의 경계선을 넘었다. (4) 동정녀 탄생은 예수가 남성적 표현형에도 불구하고 염색체상으로는 여성인 간성(intersex)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예수는 승천한 후 교회의 구성원들과 한 몸을 이룸으로서 퀴어한 몸이 되어 젠더의 경계선을 뛰어넘는다.

 

마리아 : 급진적인 사랑을 잉태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급진적인 사랑이라고 본다면 마리아는 급진적인 사랑을 잉태한 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마리아가 젠더는 물론 부모 배우자 자식의 전통적인 가족 범주들 사이의 경계선을 지웠다는 점에서도 급진적 사랑을 잉태한 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1) 미혼으로 임신한 마리아의 존재는 그 자체로 당대의 전통적인 가족 관계의 경계선들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하느님을 잉태한 자(theotokos) 마리아는 어머니와 딸, 배우자 사이의 관계를 급진적으로 흐릿하게 만들었다. (2)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는 가족에 관한 모든 경계선을 뛰어넘는 퀴어한 관계로 묘사되어 왔다. 마리아에게 예수는 아들이자, 형제이자, 신랑이자, 주인이다. (3) 마리아는 젠더의 경계선에 도전한다. 동정인 어머니로서 마리아는 남녀 상보성의 이성애주의 신학을 해체하며, 동정녀 사제인 마리아는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길을 열었다.

 

속죄 : 급진적인 사랑을 통해 희생양 만들기를 끝내기

 

속죄 교리는 급진적인 사랑을 통해 희생양 만들기에 종지부를 찍기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사이더가 무고한 아웃사이더를 표적으로 삼아 제거하는 희생양 만들기를 종결시킨다. (1) 오늘날 퀴어들은 성적 수치심과 소외감으로 고민하는 비성소수자 교인들의 희생양 역할을 한다. 사회는 정종 성소주자들에게 사회 내에서 억압된 폭력을 쏟는다. (2) 하느님은 단절된 관계를 치유하고 희생양들에 대해 반복되는 폭력의 순환을 멈추고자 하셨기 때문에 십자가 사건에 현존하신다. (3) 예수 그리스도는 대속물을 대신해 인류의 자리에 들어감으로서 희생양 체제의 잔혹성을 폭로하며, 대속을 통하여 여러 성별과 여러 젠더를 가진 몸이 된다. 속죄 교리는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사이의 경계선들을 지울 뿐 아니라, 섹슈얼리티와 젠더의 경계선들도 녹인다



성령, 급진적인 사랑으로 돌아가는 길

 



성령은 우리를 우리 모두가 비롯된 급진적인 사랑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과(그리고 모든 피조물과) 궁극적으로 재결합을 이루어 우리를 하느님에게서(그리고 모든 피조물에게서) 분리시켰던 장벽들이 녹게 되는 성화의 과정이다. 여기에는 (1) 우리를 급진적인 사랑으로 향하게 하는 성령 (2) 급진적인 사랑의 외적 공동체로서의 교회 (3) 급진적인 사랑으로 돌파한 성인 (4) 급진적인 사랑의 맛보기로서의 성사 (5) 급진적인 사랑의 지평으로서의 종말이라는 교리가 포함된다.

 

성령 : 우리를 급진적인 사랑으로 향하게 하시는 분

 

성령은 언제나 마지막 목적지(telos)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도움이며, 이는 급진적인 사랑으로 되돌아감, 즉 하느님과 이웃에게서 우리를 분리시킨 모든 경계선들을 녹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 성령은 퀴어들이 서로를 향해 보내는 신호인 게이다(gaydar)”처럼 하느님을 향해서든 인간을 행해서든 우리가 급진적인 사랑으로 향하도록 돕는다. (2) 성령은 우리가 보통 고정되어 있거나 견고하다고 생각하는 다양한 경계선들을 녹여서 우리를 급진적인 사랑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이런 경계선들에는 섹슈얼리티 대 교회’, 한 사람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개인적 담론 대 공적인 담론’, ‘단일성 대 다양성’, ‘법 대 무법등이 있다. 성령은 삼위일체 중 가장 퀴어한 존재로 본래 하느님이 보내 주셨으나 인류가 잃어버렸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회복된 급진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돌아가게 만든다.

 

교회 : 급진적인 사랑의 외적 공동체

 

(1) 교회로 모이는 것은 생물학적인 관계나 정해진 사회적 질서를 뛰어넘어, 급진적인 사랑의 외적 공동체를 창조하는 것이다. 동성애나 다양한 젠더의 결혼, 동거 관계, 다양한 친구 관계 등 퀴어들이 만든 다양한 공동체들은 우리를 분리시키는 전통적인 경계선들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가족이자 몸이다. (2) 교회의 네 가지 특징 중 하나됨은 결혼과 독신만이 아닌 그 구성원들의 다양한 관계를 인정하도록 만든다. 거룩함이란 하느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에 대한 반응으로 타인들을 전적인 관용과 환대로 맞이하게 한다. 보편성은 다양한 젠더 정체성과 성별, 섹슈얼리티를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게 한다. 사도성은 사이버 공간을 통해 섹슈얼리티나 젠더, 계급, 지리와 같은 경계선들을 녹이는 급진적인 사랑을 실천함으로서 구현된다. (3) 성소수자가 공동체 내에서 서로 보살피고, 영적, 감정적, 육체적인 치유를 찾는 것은 바로 급진적인 사랑의 외적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서다. 사목적 돌봄은 결국 급진적 사랑의 문제다.

 

성인들 :급진적 사랑으로 돌파하신 분들

 

퀴어신학의 관점에서 성인들은 급진적인 사랑으로 돌파하신 분들로 이해할 수 있다. 성인들은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 신화와 역사, 기적과 상식, 신과 인간 등 고정되어 보이는 모든 종류의 경계선들을 녹이기 때문에 매우 퀴어하다. 또한 성인숭배는 땅과 하늘, 신과 인간,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경계선들에 도전하는 것이었으며, 당대 전통적인 가족 역할과 친족 집단의 경계선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성인들은 몹시 급진적이기에 보통을 통과할 수 없는 시공간이라는 경계선을 통과하여 우리에게 닿을 수 있는 사랑의 증인들이다.


성사 :  급진적인 사랑 맛보기

 

성사는 우리가 하느님의 급진적인 사랑과 재결합할 시기에 펼쳐질 궁극적인 운명의 맛보기가 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성별이나 젠더로 구별되지 않는 새로운 영적 몸을 입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성사들은 퀴어하다. (1) 세례성사는 젠더나 섹슈얼리티 및 기타 정체성의 구분을 모두 지워 버린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퀴어하다. 세례를 받는 데 중요한 단 한 가지는 그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냐 하는 것이다. (2)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것은 보다 넓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정체성이 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종말론적 삶을 고대한다는 점에서 급진적인 사랑의 증표가 된다. (3) 견진성사는 교회 안에서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의 경계선을 녹이기 때문에 급진적인 사랑의 증표다. (4) 고해성사는 죄 있음과 죄 없음의 경계선을 녹이기에 급진적 사랑에 관한 것이다. (5) 결혼을 포함한 동성 간 결합은 이성간 결혼에서 발생하는 이성애주의적 권력 관계나 부부 내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이 존재하기에 급진적 사랑에 대한 것이다. (6) 성식서품성사는 목화자의 중재적 기능으로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선을 녹이기 때문에 급진적인 사랑의 증표다. (7) 조병성사는 질병과 건강 사이의 경계선을 녹이기 때문에 급진적인 사랑과 관계되는 것이다.

 

종말 : 급진적인 사랑의 지평

 

종말은 우리가 본래 비롯된 급진적인 사랑으로 궁극적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가장 퀴어한 교리다. 종말에는 여성과 남성, 삶과 죽음, 상과 벌 사이의 경계선들이 사라질 것이다. (1) 우리가 영적인 몸을 입는 종말에는 더 이상 섹슈얼리티와 젠더 정체성을 포함하여 우리의 인간적인 정체성들이 중요하지 않다. 그리스도 안에서 남성됨과 여성됨,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는 세례의 옷만 남는 은혜의 왕좌 앞에서 녹아내릴 범주다. 마지막에 우리 모두는 트랜스젠더다. (2) 대부분의 이성애자 커플들은 죽음을 초월하기 위한 욕구를 재생산을 통해 충족하지만, 부활에 대한 소망을 받아들이게 된다. 죽은 자가 부활한다는 희망은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선들을 녹인다. (3) 급진적인 사랑이 마지막에 승리한다면 상과 벌의 장벽들을 포함해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모든 장벽들은 녹아버릴 것이다.

 


결론

 


퀴어이론처럼 그리스도교의 고전적인 신학은 전통적으로 고정된 경계선들과 범주들을 해체하는 급진적인 사랑에 대한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하느님은 사랑이며, 하느님 자신이 사랑의 내적 공동체이며, 하느님의 사랑이 창조 행위에 부어졌으며, 하느님이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스스로 인간이 되셨으며, 하느님은 우리를 우리가 비롯된 사랑으로 인도하신다는 몹시 퀴어한 진리를 확인시켜 준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조금이라도 떼어 놓을 수 없다고 약속한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교 신학이 그 중심에서 퀴어한 작업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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