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 기독교/윤리이슈

기독교 역사 속 술(성기문 지음, 시커뮤니케이션 펴냄)과 세 권의 책

by 서음인 2017. 12. 25.

기독교 역사 속 술기독교와 술(음주)의 문제, 즉 기독교 역사 속에 나오는 거룩한 음주와 세속적 음주문화를 다루는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는 방종하지 않게 하며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는 술 마시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게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음주 문제는 항상 비본질적인 문제(아디아포라)로 여겨졌으며, (음주를 죄로 여겨 왔던 한국교회의 태도는) 신학적으로나 목회적으로 심각하게 재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과연 저자의 염려대로 이 책이 한국교회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열쇠, 혹은 거룩한 한국교회 놀이터 한가운데 떨어진 폭탄'이 될까?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마지막에 개인적인 견해를 덧붙이기로 한다.

술의 기원은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기원전 7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기원전 4000년 전에 만든 용기에서 포도주의 발효 흔적이 발견되었다. 인류 최초의 문명도시였던 수메르에서는 맥주의 여신 닌카시(Ninkasi)를 숭배하고 그에게 맥주를 바쳤으며, 여신을 찬양하는 노래가 담긴 토판에서 기원전 1800년 전의 맥주 레시피가 발견되기도 했다. 또한 고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에는 국민 음료였던 맥주를 신에게 바치고 나눠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함무라비 법전을 보면 이미 맥주의 질과 맛을 보존하는 순수법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빵과 술의 제작과 섭취는 고대 근동에서 문명의 척도로 이해되었으며, 인류가 지은 가장 오래된 이야기인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주인공인 엔키두는 빵과 맥주를 먹음으로서 비로소 인간(문명인)이 된다. 술의 역사는 곧 문명의 역사였으며, 유사 이래 인간은 곧 술 마시는 인간(Homo Imbibens)이었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음주는 식사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술이 급료로 지급되었으며, 중세시대에는 식수 대용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온 가족이 약한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중세시대까지의 맥주는 동일한 양의 빵보다 칼로리가 높았고 영양이 풍부했으며, 수분을 공급하고 극심한 노동의 고통을 경감해주는 역할을 했다. 근대 이전까지 빵과 맥주는 한 음식의 두 갈래로 여겨졌으며, 걸쭉해 빨대로 빨아 마셔야 했던 당대의 맥주는 흐르는 빵에 가까왔다. 또한 물이 오염되어 있었던 대부분의 시대에 술은 선택 가능한 가장 안전한 음료였으며, 물은 술을 구할 수 없을 때 할 수 없이 마셔야 하는 위험한음료였다. 적이 식수를 오염시켰을 가능성이 있는 전장이나 물이 쉽게 오염될 수 있었던 장거리 항해에서도 술은 가장 안전한 음료였기에, 20세기 초까지 군대나 선원들에게는 필수적인 보급품 중 하나였다.

술과 성경   술은 기독교의 역사 및 신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구약에 의하면 포도주 자체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선물)이자 축복의 땅의 주요 소산이며, 일상적인 식탁을 구성하는 음식이자 종교적인 축제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직무 중인 제사장이나 나실인들에게는 술이 금지되어 있었으며, 노아나 롯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술취함에 대해서는 경계의 태도를 보인다. 신약시대의 그리스-로마인들은 포도주를 마시며 대화와 여흥을 즐기는 심포지움과 같은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유대인들 또한 결혼이나 유월절 만찬 같은 때 모여 포도주와 함께 향연을 즐겼다. 예수는 비판자들에게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고 비난을 받았으며, 술취함을 경계했지만 신자가 피해야 할 악덕의 목록에 넣지는 않았다. 그에 비해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헬레니즘 문화에 익숙했던 바울은 여러 본문에서 술취함을 신자가 피해야 할 악덕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술과 교회   십자가의 고난을 포함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성만찬 예식은 포도주를 기독교 예배와 신학의 중심에 위치시켰으며, 중세 서방의 수도원들은 절제를 강조했으나 포도주와 맥주의 적절한 섭취 자체를 금하지는 않았다. 맥주는 더위 가운데 노동하는 수도사들에게 수분 섭취의 가장 안전한 수단이었으며, 중세 수도원이 만들어내는 질 좋은 맥주나 포도주는 수도원을 유지하는 주요 수입원이 되기도 했다. 개혁자 루터는 맥주를 잘 마셨고 즐기기도 했으나 절제했고, 칼뱅 역시 술 마시는 것 자체를 금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다스리던 제네바에서 여러 법적 수단을 통해 절제를 유도했다. 통념과 달리 청교도들 역시 술을 완전히 금하지는 않았으며 금주가 아닌 절제가 그들의 입장이었다. 중세 시대까지의 유럽에서는 폭음이나 만취가 흔했지만 음주 자체는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하는 사회적 행위이자 교제의 수단이었기에 알코올 중독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스피릿의 유행   16세기 들어 포도주와 맥주를 대체하거나 경쟁할 값이 싸면서도 알코올 농도가 높은 주류인 증류주(스피릿)가 등장했고, 산업화의 진행으로 도시에 몰려든 사람들은 점차 술집에서 홀로 마실 수 있으며 저렴한 비용으로 빨리 취하게 해주는 증류주를 선호하게 되었다. 이렇게 공동체성을 상실하고 개인화된 음주를 조장하며 교제보다는 취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증류주의 유행은 중독이나 폭력과 같이 과거에 없던 여러 사회문제를 유발했고, 이는 능률을 중시하고 개인의 자기통제와 멀쩡한 정신을 요구하는 산업 사회의 특성과 맞물려 술취함을 모든 사회악의 근원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증가시켰다.

금주운동의 탄생    그뿐 아니라 ① 공중보건의 발달로 안전한 식수의 공급이 가능해지고  차와 커피 같은 비알콜성 대체 음료가 점차 보편화되면서, 술의 문화적인 의미가 수분과 영양을 섭취하기 위한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음식에서 오락을 위해 개인이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음료로 영원히 바뀌게 되었고, 이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이었던 절대 금주가 역사상 최초로 완전히 실행 가능한 선택대안이 되었다그 결과 19세기부터는 절주(temperance) 혹은 금주(prohibition)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미국에서 이러한 운동은 모든 종류의 알코올 음료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금주령(prohibition, 1919~1933)으로 열매 맺게 된다. 여기에는 많은 기독교 단체들이 관여했으며, 일부 교단은 두 와인 이론(two-wine theory)’에 따라 포도주가 아닌 포도즙으로 성찬을 시행하기도 하였다. 한국 기독교의 금주전통은 바로 이렇게 술에 대한 19세기 서구의 변화된 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금연과 금주를 경건이나 믿음의 척도로 삼아왔다. 자신들의 모든 죄를 술담배에 전가하는 독특한 희생양 신학(?)을 발전시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저자는 이렇게 '경건한한국교회의 놀이터 한복판에 이라는 폭탄을 떨어뜨렸지만, 이 책이 적지 않은 화제를 불러일으켰음에도 내가 알기로 그 폭발력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에 대한 소위 교계와 일반 성도들 간의 인식의 괴리가 그만큼 커져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세상이 바뀌면서 음주문화도 많이 바뀌었고, 이제 많은 성도들이 을 더 이상 이전처럼 경건의 척도로 여길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심각한 중독성이 술을 금지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주장한다면,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먼저 금지되어야 할 것은 종교일 것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일갈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예배당 입구만 통과하면 집단적으로 머리 속에서 생각을 삭제한 채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던 고개만 끄떡이다가 우루루 몰려나오는 익숙한 광경을 표현할 수 있는 말로 중독보다 더 나은 단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종교개혁시대 이후 가장 타락했다는 한국 기독교는 안에 있는 티를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 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돌아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알코올의 역사와 문화사에 대해 다룬 세 권의 책도 함께 펴들었다내용만 500페이지가 넘어 세권 중 가장 두터운 『알코올의 역사』가 9천년에 이르는 술과 음주의 역사와 문화사, 그리고 영향사를 유럽과 북미뿐 아니라 이슬람권과 남아메리카 아프리카까지 확장해 광범위하고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교과서적인 책이라면, 『맥주, 세상을 들이키다』는 역사의 모든 장면에서 인간과 함께 했던 맥주를 둘러싼 다양하고 이야기들과 맥주가 당대의 세상에 끼친 영향을 재미 있게 서술한 ‘맥주의 문화사’라 할 수 있으며,『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는 위 책의 내용 중 맥주에 관한 핵심적인 내용이 멋진 그림에 담겨 있는 낸 흥미진진한 만화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