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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단상 기고/단상 일반

환대는 가능한가? -『공정한 환대』와 『환대에 대하여』, 그리고『사람, 장소, 환대』

by 서음인 2021. 4. 13.

신학자 레티 러셀은 『공정한 환대』라는 책에서 ‘본문으로 괴롭히기 (textual harassment)’를 통해 지속적으로 타자에 대한 배제와 억압을 자행하는 ‘차이의 해석학’ 대신, 성서의 또 다른 전통 중 하나인 하나님의 환대 속에서 사람들을 환영하면서 차이를 긍정하는 ‘환대의 해석학’으로 성서 텍스트에 접근하자고 말합니다. 이 책을 만난 후 ‘환대의 해석학’은 제 성서읽기의 주요 화두가 되었고, ‘환대’는 제가 관심을 가지고 살피는 주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관심은 관련 주제를 다루는 몇 권의 책과의 만남을 통해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자크 데리다는 『환대에 대하여』에서 절대적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환대는 ‘절대적’ 혹은 ‘무조건적 환대’뿐이며, 이는 타자가 이름이나 신분을 밝히기 전에, 타자가 법적 주체이기 전에, 그리고 가족이나 민족, 국가의 이름으로 불려질 수 없는 경우에라도, 그들을 물음이나 조건 없이 맞이하고 내 집을 개방하며 우리 안에 머물 장소를 허락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절대적 환대는 도래한 절대 타자에게 “마치 구원자나 해방자라도 되듯 나를 점령하고 내 안에 자리를 잡도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데리다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듯 이러한 절대적 환대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우리에게 허용된 유일한 길은 그 불가능성의 지평을 향해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오늘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를 읽다 보니 “필요하나 불가능하다는”는 데리다의 절대적 환대가 가지는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 같네요. 그의 해결책은 ‘사적 공간’과 ‘공동체의 자리’를 분리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환대란 절대적 타자에게 “무조건적이고 무차별적으로 사회 안에 빼앗길 수 없는 자리/장소를 마련해 주는 일”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사적 공간의 무조건적이고 완전한 개방”까지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사회 정의를 위한 공적 실천에 투신하는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창조적 자율성을 가지고 사적 진리를 추구하는 ‘아이러니스트’일 수 있다고 강조한 리처드 로티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 공부를 위한 기초로 삼기 위해 앞으로의 저자의 말을 직접 인용합니다!

 

“ ..... 절대 공동체에 대한 환상은 ‘개인이냐 공동체냐’라는 잘못된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이 나와 다른 사람의 벽을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면, 공동체에 대한 옹호는 사생활 침해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쉽게 전락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과 공동체는 결코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며, 공동체 정신을 추구하는 것과 사생활의 자유를 갖는 것 사이에는 본디 아무런 모순도 없다. 개인에게 자리/장소를 마련해주고 그의 영토에 울타리를 둘러주는 것이 바로 공동체의 역할인 까닭이다. 뒤르켐이 지적했듯이, 공공성이 강화될수록 사생활의 자유는 오히려 커진다 ..... ”

 

“ ..... 개인과 공동체,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관계를 이렇게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절대적 환대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절충주의적 답변(절대적 환대는 불가능하지만 그 불가능성의 지평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가능하다 등등) 이상의 것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절대적 환대가 사적 공간의 무조건적이고 완전한 개방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데리다가 그랬듯이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며 그러한 환대가 과연 가능한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 환대가 타자의 영토에 유폐되어 자신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일, 그들을 인정하고 인지하는 일,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자리를 주는 일, 즉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사회 안에 빼앗길 수 없는 자리/장소를 마련해주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환대가 필요하며 또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

 

“ ..... 그러므로 환대에 대한 질문은 필연적으로 공공성에 대한 논의로 나아간다. 환대는 공공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라는 현대적 이상은, 생산력이든 자본주의의 모순이든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떤 자동적인 힘에 의해 앞으로 굴러감에 따라서가 아니라, 이러한 공공의 노력을 통해 실현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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