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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역사

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 -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사건들 (김형태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by 서음인 2016. 6. 2.

이 책은 민변 창립을 주도했고 사형제 폐지와 인권보호에 앞장서 왔으며 천주교 인권위원장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한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이다. 지금까지 그가 관계해 왔고 이 책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는 사건들은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에서부터 임수경 문규현 방북사건, 송두율 교수 사건, 문화방송 PD 및 광우병 보도 사건, 인혁당 및 민청학련 재심 및 손해배상청구 사건,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 그리고 용산참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의 한복판에 있던, 한국사회와 한국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만한 사건들이다. 


저자는 역사와 이데올로기와 권력과 자본의 제단에 희생양으로 바쳐진 수많은 억울한 사연과 죽음들 앞에서 그가 가진 ‘법’이라는 무기를 사람을 살리고 진리를 드러내는 활인검(活人劍)으로 쓰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상이 한바탕 꿈임을 깨달아 열반하자거나 이 죄 많은 타락한 세상을 떠나 천당에 가자고 말하는 자들은 눈앞의 골치 아픈 세상에 억지로 눈감는 허무주의자들일 뿐이라 일갈하며, 자신은 앞으로도 저 천국 말고 ‘이 풍진 세상’에서 비망록 쓸 일을 해 가며 살겠노라고 다짐한다.


혹자는 말한다. 저런 일 당하지 않으려면 국가에서 말하는 대로 믿고 시키는 대로 얌전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당신이나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이 또 다른 희생자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100% 확신할 수 있는가?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상흔과 권력과 자본의 탐욕으로 갈갈이 찢기운 한국 사회에서? 어버이연합이든 일베든 누가 됐든 안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년 가까이 원인미상으로 남아 부모의 마음에 평생 한을 남긴 군내 의문사 사건의 주인공인 故김훈 중위의 아버지는 바로 아들이 근무하던 1군단의 군단장까지 지냈던 예비역 중장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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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한 살인범도 존엄한가 ─ 사형제 위헌심판 中  “........‘살인범에게 억울하고 불쌍한 면이 있으니 사형은 안 된다’ 를 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가지고 사형제도에 정면으로 마주 서는 게 필요하다. 흉악한, 금수만도 못해 보이는 저 사람을 국가 손으로 죽일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형은 안 된다’ 고 말할 것인가......헌법 책을 들여다본 게 대충 35년이지만, 근자에 들어 모든 국민이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는 헌법 10조의 선언은 정말 새삼 다시 보인다. 성서나 불경 같은 경전도 아닌 세속 권력구조 속에 어떻게 이런 ‘비현실적’인 말씀이 버젓이 자리 잡을 수가 있단 말인가......헌법 37조에는 국가 안보, 질서 유지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지만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사람의 자유와 권리도 살아 있는 연후에야 나오는 이야기다. 생명권이 모든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이란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보성 어부 노인이나 사체를 끔찍하게 훼손한 오원춘은 모두의 안전을 위해 철저히 격리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국가가 형벌을 통해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더라도 그 본질인 생명을 빼앗을 수는 없다. 이것도 헌법에 씌어 있는 그대로다..”


원수가 된 이웃들 ─ 서울 달동네 재개발 中  “......조합과 시공사가 재개발 지정으로 가격이 뛰어 얻게 된 막대한 이득의 이주 조금을 내어 임대아파트를 지어 주기로 한 처음 약속을 지켰더라면 돈암동처럼 모두 잔치 벌이며 끝났을 일이었다. 돈이 사람을 죽인 건 용산이나 전농동이나 매한가지였다. 따지고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아파트 분양받아 한 몫 챙기려는 마음을 안 가져본 사람이 벌로 없을 테니 모두가 다 그 아주머니를 죽인 공범들이다. 건설자본과 집값 상승으로 한몫 얻기를 바라는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 탓에, 어느 정권 할 것 없이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나도 그 10여년 전 돈암동 때부터 이어져 온 이런 세입자들 변론을 그 10년 뒤인 용산참사 때까지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불타는 망루 ─ 용산참사 中  “......용산경찰서 정보과 형사였던 그는 1심 법정에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왔다.......법원 서기는 ‘감정이 북받쳐 대답하지 못하였다’고 짧게 적었다. 하지만 그 형사는 어떻게 협상 한번도 없이 사람이 여섯이나 죽었냐며 1분여를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 높은 자리 공무원들을 대신해 한 말단 형사가 속죄하면서, 물 좋다는 본청 정보과 자리를 버리고 경찰서 도보순찰대로 자원해 내려갔다. 그리고 법정에서 눈물을 흘렸다. 무간지옥에 연꽃이 피었다. 명령에 따라 무서운 망루 안으로 떠밀려 들어갔던 하급 특공대원들도 그랬다. 계급이 높아질수록 법정에서 모르쇠와 거짓말로 자리보전을 꾀했지만, 하급자 젊은 경찰들은 그래도 진실을 말했다. 많은 특공대원들이 화재 직전 자신들은 화염병이 날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모두가 공범인 우리는 용산참사의 책임을 면제받고, 용산은 그저 책임질 사람이 없는 ‘참사’로 남았다. 아니, 망루 밖으로 화염병을 던진 철거민 ‘테러범들’만이 그 책임을 몽땅 도맡아 졌다. 무간지옥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감옥으로, 까맣게 타 죽은 자들은 무덤으로......”


초청과 지령 사이 ─ 임수경ㆍ문규현 사건과 방북 中  “......살다보면 상대방 주장에 다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그와 더불어 살려면 혹은 예의상으로라도, 상대방이 존경하는 사람을 향해 절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걸 보안법이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적을 찬양하고 고무 동조했다고 몰 수도 있다......법은 객관적이고 명료해서 애매한 구석이 없어야 억울한 사람이 안 생긴다. 그런데 보안법은 애당초 저자가 우리 편이나 아니냐를 가리는 데만 관심이 있다. 하지만 내 편, 네 편을 무슨 수로 명료하게 나눌 수 있겠나. 49퍼센트, 우리 편? 51퍼센트, 적? 우리하고 무엇이 몇 퍼센트 비슷하면 우리 편인지 또는 아닌지. 그러다 보니 공안기관들의 ‘멋진 상상력’이야말로 보안법 운용의 필수조건이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 ─ 인혁당ㆍ민청학련 재심 中  “.... 박정희 정권은 민청학련이나 인혁당을 조사도 하기 전에 이미 각본을 다 짜놓았다. 사람들을 잡아들이기도 전인 1974년 4월 3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사건 전체를 암시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민청학련이 어떤 단체인지 조사하기도 전에 긴급조치 4호를 발표해버려 범죄단체로 지정해버리니 재판은 법률적으로 전혀 필요없는 절차가 되고 말았다......한두 번도 아니고 집권기간 내내, 툭하면 국민이 뽑은 국회와 헌법을 무력화하는 내란죄를 범한 당사자가 거꾸로 헌법을 지키려는 국민들을 내란죄로 잡아다가 사형까지 시켰다. 그 잘못은 이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결 그리고 최근 법원 재심과 국가배상을 통해 거듭 확인되고 있다......무기징역을 받은 천장일은 재심 법정에서 증언했다. ”수사가 다 끝난후 이아무개 검사가 구치소로 찾아와 담배를 권하며 이랬습니다. ‘여러 가지로 미안하다. 국가안보를 위해 한 일이니 이해해 달라. 당분간 세상을 잘못 만났다 생각하고 감옥에서 성경공부 많이 해서 착실한 기독교인이 되어서 건강한 몸으로 나와 달라.’ 그런 악행을 한 사람이 어찌 나에게 설교를 하는가”......”



목차

                                                                         

들어가며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1부 그럼에도 사형은 안 된다

그해 겨울 ─ 검사시보 시절의 기억

스물한 살 여인의 운명 ─ 양평 생매장 사건

절망의 섬에 갇힌 사람들 ─ 파키스탄 사형수 이야기

사형, 무죄, 사형, 무죄, 무죄 ─ 치과의사모녀 살인사건

흉악한 살인범도 존엄한가 ─ 사형제 위헌심판


2부 누가 그를 망루에서 떨어뜨렸는가

원수가 된 이웃들 ─ 서울 달동네 재개발

불타는 망루 ─ 용산참사

분신정국의 한가운데서 ─ 한진중공업 박창수의 죽음

진실의 무덤 ─ 최종길 교수 의문사

그 여름, 거문도 ─ 이내창 의문사

망자여, 부디 잘 가소 ─ 신호수 '자살 위장' 사건

사라진 상황일지 ─ JSA 김훈 중위 의문사


3부 조각난 나라에 산다는 것

초청과 지령 사이 ─ 임수경ㆍ문규현 사건과 방북

감옥살이 40년 ─ 비전향 장기수 이야기

영원한 이방인 ─ 송두율 사건

뱃속부터 간첩의 아들 ─ 재일동포 간첩사건

유령이 된 사람들 ─ 북파공작원

세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 ─ 인혁당ㆍ민청학련 재심

존재 이유가 없는 국가 ─ 보도연맹 사건


4부 광기의 시대, 그 한복판에서

슬픈 코미디 ─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과학과 이성 그리고 진실 ─ 천안함의 진실

기자와 고무신 ─ 이승복 사건 오보소송

형님 스님 이야기 ─ 종교인 재판

절차적으로도 정당한가 ─ 당파성에 대하여

너무 슬퍼하지 마라 ─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 ─ 황우석 교수 사건

7전 7승 ─ PD수첩 광우병 보도


나오며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발문 천 강에 비친 만 개의 달과 씻김이 김형태 ─ 곽병찬 「한겨례」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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