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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역사

에라스뮈스 (요한 하위징아 지음, 연암서가 펴냄), 에라스무스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아롬미디어 펴냄), 에라스무스 (롤란드 베인턴 지음, 현대지성사 펴냄), 바보 예찬 (에라스무스 지..

by 서음인 2016. 6. 2.

1. 이 책은 『중세의 가을』 『호모 루덴스』등의 명저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의 문화사가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 에 의해 씌어진, 16세기의 위대한 신앙인이자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 의 평전이다. 이번에 이 책과 아울러 과거에 읽었던 그에 대한 두 권의 평전인,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에라스무스 평전』과 기독교 역사가 롤란드 베인턴의『에라스무스』그리고 그의 대표작인『바보 예찬』까지 함께 꺼내들었다. 당대 최고의 역사학자와 전기 작가, 그리고 역사신학자에 의해 씌어진 이 세 권의 평전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에라스뮈스의 모습을 잘 그려주고 있다. 하위징아가 능숙한 역사가의 솜씨를 발휘하여 주로 그의 생애와 사건들을 중심으로 꼼꼼하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면, 탁월한 전기 작가 츠바이크는 마치 케리커쳐를 그리듯 에라스뮈스라는 인물의 특징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롤란드 베인턴은 종교개혁사의 대가답게 주로 에라스뮈스의 사상을 특별히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2. 당대인들에게 ‘위대한 로테르담 사람’ ‘세상의 보석’ ‘인류의 빛(lumen mundi)’ 등으로 불렸던 이 賢者는 헬라어 및 라틴어 신약성서의 출간과 유명한『우신 예찬』을 포함한 여러 저술들을 통해 전 유럽을 망라하는 엄청난 명성과 존경을 얻었으며, 시대의 두뇌, 심장, 양심이자 당대 문명을 회전시키는 중심축 같은 인물로 여겨졌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유럽을 통합하기를 꿈꾸었던 진정한 세계주의자이자 모든 형태의 전쟁과 폭력을 증오하고 대화와 타협을 중시한 평화주의자였으며, 날카로운 풍자의 무기를 휘두르며 평생을 놀이와 위트정신 속에서 살았던 진정한 휴머니스트이자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에게도 구속되기를 거부했던 철저한 자유인이기도 했다. 형식화되고 부패한 당대의 가톨릭 교회에 대해 누구보다 날카로운 풍자와 조소의 칼날을 들이댔던 에라스뮈스는 초기에 종교개혁 사상에 동조했고 루터를 옹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문에 바탕을 둔 점진적 개혁을 선호했던 그는 결국 루터를 포함한 종교개혁의 세력과 결별했으며, 말년에는 양쪽 진영에서 모두 비난을 받는 패배자요 방관자로 생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사실상 종교개혁은 “에라스무스가 낳은 알을 루터가 부화시킨 것”이었으며, 따라서 반종교개혁의 주창자들이 “하나님이여 알들을 깨부수고 병아리들을 죽이시옵소서”라고 그를 비난한 것은 정당한 것이었다. 루터의 모토가 “나는 여기에 서 있다, 나는 달리는 어떻게 할 수 없다.(Ich kann nicht anders)”라면, 에라스뮈스의 정신은 “나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을 것이다(concedo nulli)”라는 말에 가장 잘 요약되어 있다고 할 수있다. 에라스무스는 늘 자기 자신만을 대표하는(Erasmus est homo pro se)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3.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감탄할 만한 열정과 진지함으로 자신들이 믿는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 루터의 후예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루터가 부화시켰던 종교개혁이라는 알을 낳았던 기독교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의 정신인 평화와 관용, 놀이정신과 사려 깊은 회의주의 같은 가치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설령 있다 해도 비기독교적인 것으로 폄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오늘날 위기를 맞은 한국교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열정이 아닌 더 많은 지성, 더 많은 확신이 아닌 더 많은 회의, 더 많은 진지함이 아닌 더 많은 놀이정신, 더 순수한 신앙이 아닌 더 폭넓은 신앙, 바로 에라스뮈스의 정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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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뮈스의 사상 I 에라스뮈스는 비합리적인 것, 무미건조한 것, 오로지 형식으로만 존재하는 것들을 아주 싫어했다. 그는 사회 특히 종교계가 각종 관행, 의식, 전통, 고정관념 등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았고, 그 세계에서 종교의 정신은 사라진지 오래라고 보았다. 에라스뮈스는 그런 관행들을 무조건 배척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런 이해나 진정한 느낌 없이 그런 관행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이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우리들은 성자들의 신발과 그들의 지저분한 손수건에 키스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남긴 가장 거룩하고 효과적인 유물인 책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하위징아)

 

에라스뮈스의 사상 II  에라스무스의 교육 이념은 후마니타스(humanitas) 와 피에타스(pietas)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전자는 고전적인 개념이고 후자는 그리스도교적 개념이다. 후마니타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말이었으며, 이 개념에 있어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견해인데 왜냐 하면 지각을 갖고 있는 존재들 중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성과 언어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이성과 언어의 능력은 부여받은 인간은 존경을 받을 만하며, 또한 동료 인간들에게 존경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와 병렬되어 있는 그리스도교적 개념은 피에타스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종교와 관련된 개념으로 존경 헌신 위탁 등을 의미했으며, 자비 인내 용서 겸손 그리고 자비 부정과 같은 덕목들이 더하여짐으로서 풍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개념들이 어떻게 가르쳐질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인문학과 성경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라는 것이다. 성인들의 지혜와 복음의 은총이 어린 아이의 정신을 형성해야 한다. (롤란드 베인턴)

                                                                                                                          

에라스뮈스의 사상 III 에라스뮈스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빌어와 세운 스콜라 철학의 구조와 그 위에 단테가 세워올린 천국-연옥-지옥의 정신적 구조로 이루어진 중세 기독교 문명의 세계를 도외시하고 자신만의 다른 세계를 세웠다. 그것은 순수 고전주의 순수 기독교 정신이 융합된 세계였다. 에라스뮈스에게 순수 고전주의라 함은 키케로, 호라티우스, 플루타르코스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두 사상이 화학적으로 온전하게 융합될 수 있을까? 우리가 에라스뮈스의 지적 경력을 살펴보면, 그의 정신적 빛은 이교도적 고대와 원시 기독교를 번갈아가면 조명할 뿐, 그 둘을 동시에 비추지는 않는다. 에라스뮈스 정신의 주축은 기독교이고 고전주의는 정신의 형식을 부여해 주는 보조물이다. 그는 고전 고대에서 기독교적 이상에 부응하는 윤리적 경향만을 취해 온다. (하위징아)

 

우신 예찬 『우신예찬』이 가지고 있는 유일하고도 모방할 수 없는 기교는 천재적인 가장술이라 할 수 있다. 에라스무스는 자신이 이 땅의 권력자들에게 보여 주려는 혹독한 진실을 모두 말하기 위해 말 자체를 이용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대신에 우매함을 강단에 보내 그 우매함이 스스로를 칭송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재미있는 착각이 발생한다. 도대체 누가 말하고 있는 것인가. 에라스무스가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그 거침과 무례함을 용서해야 하는 우매함이 등장인물이 되어 말하고 있는 것인가? .... 자유롭게 떠들 수 있는 그 신성한 바보의 권리를 그의 시대에 가장 대담하고 동시에 가장 예술적으로 사용한 첫 번째 작품으로 꼽히는 이 풍자집에서 에라스무스가 했던 것보다 더 능란하게 사용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츠바이크)

 

라틴어 성서 번역 에라스뮈스는 (그의 헬라어 원본에 근거한 새로운 신약성서 라틴어 번역에 대해) 일개 문법학자의 자격으로, 사소한 실수나 오탈자를 빌미로 삼아 성경(불가타)의 텍스트를 공격하려 든다는 비난을 받았다. “물론 그것들은 사소한 세부 사항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세부 사항들 때문에 위대한 성직자들이 실수를 하거나 헛소리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문헌학적 고증은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음식, 우리의 옷, 우리의 돈 문제에 대해서는 그토록 까다로우면서, 유독 성스러운 문헌 속에서 찾아낸 언어학적 정밀성이 왜 그토록 당신들을 불쾌하게 만듭니까? ” (하위징아)

 

에라스뮈스의 성격 에라스뮈스는 놀이와 진지함의 경계선상에서 오래 머무르면서 어떠한 확정적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그것은 주로 조심성에서 기인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어느 한쪽에 맡겨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나는 단정적인 주장을 너무 싫어하여, 성경의 권위와 교회의 명령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하면 회의론자들과 한편이 되고 싶었다. 우리는 미지의 상태 혹은 미결의 상태에 남겨 두어도 좋은 법한 것을 너무 많이 정의함으로서, 오히려 우리의 구원을 위태롭게 한다.” .... (종교개혁에 대해) 그는 세상의 빛이라는 자신의 권위를 이용하여 평화를 유지하려고 했으며, 어느 쪽 편도 들지 않은 채 중도 노선을 유지하려 했다. 그것은 공포와 소심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동시에 어떤 특정 인물이나 대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싫어하는 중립적 관점이 작용한 것이었다. (하위징아)

 

에라스뮈스와 종교개혁 에라스무스의 개인적 비극은 모든 인간 중에 가장 비광신적이고 반광신적인 그가, 초국가적 이념이 승리를 확신하며 처음으로 유럽을 밝게 비추던 바로 그 순간에, 역사가 알고 있는 한 가장 난폭하게 터져나온 국가 종교의 대중적인 열광 속에서 휩쓸려 들어갔다는 데 있다. 그는 독일의 첫 번째 개혁자로서 이성의 법칙에 따라 가톨릭교회를 개혁하고자 했다. 그러나 운명은 시야가 넓은데다가 정신적이며 진보적인 인간인 그에게 행동하는 인간, 공허한 독일 민중의 힘으로부터 악마처럼 솟아오른 혁명가 루터를 보낸다.......수세기 동안 기독교 세계와 유럽 세계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남과 북, 교황파 아니면 루터파로 분열된다. 그러나 에라스무스는 그 시대의 지도자 중 유일하게 어느 편에도 가담하길 거부한다. 그는 교회의 편에도 종교개혁의 편에도 서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양편에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확고한 신념에서 신교의 교리를 첫 번째 것으로 요구하고 장려했으므로 신교에 연결되어 있으며, 몰락하고 있는 세상에 마지막 정신의 통일 형식을 가톨릭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기에 가톨릭과 연결되어 있다. (츠바이크)

 

루터와 에라스뮈스 루터와 에라스뮈스의 정신성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고 세계에서 발원한다. 에라스무스는 의심의 여지없이 폭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고 박학다식한 사람이다. 삶의 어떤 것도 그에겐 낮설지 않다. 그의 보편적인 오성은 마치 햇빛처럼, 수많은 비밀의 틈새와 이음새 사이로 색깔 없이 투명하게 밀려들어 모든 대상을 밝혀 준다. 반면, 루터는 폭은 좁지만 깊이에 있어서는 에라스무스를 능가한다. 그의 세계는 에라스무스보다 좁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좁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모든 사상에, 자기의 모든 설득에 자기 나름대로 활력은 불어넣을 줄 안다. 그는 모든 것을 안으로 끌어들여 자기의 붉은 피로 뜨겁게 가열한다. 모든 것들을 열광 속으로 몰아넣는다.......루터와 에라스무스는 수십 번 똑같은 생각을 피력했다. 그러나 같은 생각이라도 에라스무스가 말하면 정신적인 사람들에게 섬세하고 정신적인 매력을 주었던 것들이, 루터가 말하면 그의 열정적인 방법 덕분에 즉시 구호와 함성이 되고 두드러진 요구가 된다. 회의론자(Skepticus) 에라스무스는 분명하고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말할 때 가장 강한 반면, 열정의 아버지(Pater exstasicus) 루터는 격앙과 증오가 입술에서 격하게 튀어나올 때 가장 강하다. 이러한 대립은 동일한 투쟁 목표에도 불구하고 유기적으로 적대관계라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츠바이크)

 

에라스뮈스의 실패 에라스뮈스의 세계관과 사회관은 완전히 실패했다. 1517년에 그가 굳게 믿었던 평화의 빛의 황금시대는 어떻게 되었는가? 신학적 논쟁이 분노에 가득 찬 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는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참여자이기를 거부하고 방관자로 남았다. 교회 내의 엄청난 싸움에 직접 참여하는 배우가 되기보다 그 연극의 무대를 자발적으로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이상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는 복음 철학에 대한 편지를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조롱과 위협, 무력과 불공정이 아니라 신중함, 혜택, 온유함, 관용의 힘으로 저항합시다” (하위징아)

 

에라스뮈스의 유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도덕 교육과 폭넓은 관용이 인류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는데, 그런 믿음은 우리 인류가 에라스뮈스에게 빚진 부분이다.....교양 있는 사람들은 에라스뮈스의 기억을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가 있다. 그것은 에라스뮈스가 보편적 자비로움을 아주 열렬하게, 또 성실하게 외친 설교자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상은 그런 도덕적 특성을 간절하게 요청하고 있다. (하위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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