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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역사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상/하 (에릭 홉스봄 지음, 까치 펴냄)

by 서음인 2016. 6. 2.

1. 장기 19세기 (1789-1914) 를 다룬 세 권의 역사서인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영국의 역사가 故 에릭 홉스봄 (1917-2012) 은 이 책 <극단의 시대 : 20 세기의 역사> 에서 1차 세계대전에서 공산권의 몰락까지의 기간인 단기 20세기 (1914-1991) 의 역사를 직업적 역사가로서 뿐 아니라 동시대를 치열하게 경험했던 ‘참여 관찰자’의 입장에서 흥미롭게 서술한다. 그는 인류가 경험했던 어떤 시기보다 변화무쌍했던 이 세기를  (1) 1914년부터 제 2 세계대전 종전 직후까지의 ‘파국의 시대’ 와 (2) 1945년부터 1973 년까지 자본주의의 유례없는 번영의 시대인 ‘황금시대’ 그리고 (3) 1973년 이후로부터 동구권의 몰락에 이르기까지의 해체와 불확실성과 파국을 그 특징으로 하는 ‘위기의 몇십 년’ 으로 구분하고, “왜 사태가 그렇게 전개되었고 각 사태의 전개가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각 시기를 총체적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2-(1). 1차 세계대전의 발발에서부터 2차 세계대전의 종전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은 19세기의 산물인 자유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이며 부르주아적인 서구 문명에게  ‘파국의 시대’였다. 이 시기에 그 문명은 (1)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2) 全세계적인 혁명과 반란의 물결 (3) 전례 없는 경제위기 및 (4) 그로 인한 파시즘-권위주의 체제의 부상에 의해 지속적으로 위협을 받았으며, 그 결과 (5) 서구열강들의 거대한 식민제국은 결국 해체의 운명을 맞았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이 문명은 주로 파시즘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기묘하고 일시적인 동맹” 에 의지하여 생존에 성공했으며, 따라서 저자에 의하면 이 동맹이야말로 이후 20세기史의 방향을 결정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2-(2).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1973년까지의 이른바 ‘황금시대’에 자본주의는 유례없는 번영을 구가했으며, 이러한 번영은 농민층의 급격한 감소, 고등교육인구의 급증, 노동인구 및 고등교육인구에서의 여성 비율의 증가, 가족의 위기, 청년문화의 부상과 같이 “인류 역사상 가장 급격하고 근본적인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변혁”을 유발했다. 그리고 저자는 20세기를 실제로 살았던 사람이 느꼈던 감정과는 달리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 즉 냉전은 이러한 급진적인 사회 문화적 변혁에 비해 그 역사적 중요성이 훨씬 덜하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의하면 소련의 공산주의는 특히 후진농업국들의 근대화에 대한 강력한 촉진제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으나, 일반적 통념과 달리 적극적으로 혁명을 전 세계로 확장하려고 시도하거나 자신을 서구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현실적 대안으로 간주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서구자본주의에게 스스로 개혁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서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2-(3).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는 것처럼 보이던 세계는 1973년의 오일쇼크를 시작으로 1980년대와 90년대의 소위 ‘위기의 몇십 년’ 동안에 다시 불안과 위기에 직면한다. 특별히 ‘황금시대’ 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초국가적이고 통합적으로 기능하는 보편적 세계경제를 창출했기 때문에 이 위기는 진정한 의미에서 ‘전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이 시기에 자본주의 세계는 황금시대에 사라졌던 심각한 불황이나 대량실업, 극심한 빈부격차와 같은 문제들에 다시 직면하게 되었으며,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은 80년대 내내 지속적 쇠퇴를 경험한 끝에 90년대 초반 결국 붕괴되는 운명을 맞았다. 이러한 위기의 결과 서구 자본주의진영 내에서는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극단적 신자유주의 세력의 목소리가 힘을 얻었으며, 현실사회주의 체제 붕괴의 결과는 약 40년간 국제관계를 안정시킨 국제적 체제의 파괴와 다양한 종교적 민족적 요구의 분출, 그리고 많은 신생 독립국들의 탄생으로 나타났다.

 

3. 저자는 20세기말의 세계가 (1)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전적으로 서구 중심적이지는 않으며 (2) 국민국가나 국민경제와 같은 전통적 개념이 쇠퇴하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세계 전체가 훨씬 더 단일한 작동단위의 일부가 되었으며 (3) 오래된 사회적 관계들이 해체되고 과거와 현재 사이의 다양한 연결고리가 게속 단절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문명화된 삶의 조건이 꾸준히 개선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장기 19세기’와 달리 20 세기에 들어서 비전투원에 대한 무차별 살상이나 고문이나 테러의 일상화와 같은 형태로 폭력성과 야만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우려한다. 그러면서 이 老 역사가는 우리가 과거와 현재를 연장함으로서 새로운 천년기를 건설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실패를 맛보게 될 것이며, 우리의  사회를 적극적으로 변혁하지 않는다면  21세기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라고 경고한다.

 

4. 홉스봄은 “생산의 사회적 관계를 우선으로 하는” 마르크스의 모델을 역사 연구를 위한 최소한의 공리로 받아들이지만, 고전적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엄격한 역사 결정론이나 단계론 혹은 교조화된 경제 결정론을 모두 거부한 채, 사실에 대한 경험주의적이고 실증적인 접근을 통해 “역사에서 인간 사회의 변천사라 할 만한 구조와 패턴”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같이 모스크바의 정통적이고 교조적인 역사 해석을 거부한 결과 당대의 가장 탁월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 인정받았던 그의 책들은 정작 사회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에서는 단 한권도 번역되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외면받았다.) 그리고 그는 이 책에서도 - 물론 경제를 ‘최종심급’의 자리에 올려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 특유의 박식함으로 정치, 문화, 사회, 예술을 포함한 다양한 측면들을 모두 고려하며 총체적으로 20세기를 파약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서구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권이나 제 3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히 서술하고 있으며 그 공과를 공정하면서도 냉철하게 평가하고 있다. 이렇듯 역사에 있어 '생산관계의 우선성' 이라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되 교조화된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끝까지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접근을 중시했던 그의 태도야말로 그가 단순히 탁월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의 범주를 넘어서 20세기 최고의 역사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게 된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야말로 자신의 기득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이라는 폭력적인 레토릭으로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은폐하면서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자세가 아니겠는가?

 

 

“확실히 전쟁의 총력전적인 성격과 양쪽 편 모두 비용에 상관없이 무제한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려는 결의가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그것 없이는 20세기의 더해가는 야수성과 비인간성에 대해서 설명하기 어렵다. 1914년 이후에 야만성이 계속 상승곡선을 그렸다는 점만큼은 불행히도 전혀 의심할 수 없다.....” (총력전의 시대)

 

“예컨대 단기 20세기의 역사는 러시아 혁명과 그것의 직접적 간접적 결과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이는 특히 러시아 혁명이 서방으로 하여금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 독일을 이길 수 있게 해준 동시에, 자본주의로 하여금 스스로를 개혁하도록 고무하고, 대공황에 대한 소련의 명백한 면역을 통하여 자유시장이라는 정통교리를 버리도록 고무함으로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구세주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세계혁명)

 

“냉전의 독특성은 객관적으로 말해서 세계전쟁이 곧 일어날 위험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게다가 양측의 묵시록적 언사에도 불구하고, 두 초강대국 정부 모두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의 지구상의 세력분배 상태를 받아들였다.....사회주의의 토대를 침식한 것은 자본주의 및 그 초강대국과의 적대적 대결이 아니라 사회주의 자체의 갈수록 명백해지는 심각한 경제적 결함들과, 훨씬 역동적이고 선진적이고 우세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사회주의 경제에 대한 가속화하는 침탈의 결과였다. 냉전의 역설은 소련을 패배시키고 결국 파산시킨 것은 대결이 아니라 데탕트였다는 데 있다......” (냉전)

 

“요컨대 소련 체제는 그 나라 인민이, 최소한의 사회적 수준을 보장해주는 생활수준과 , 최저생활수준을 약간 웃도는 물질적 생활수준에 만족할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매우 후진적인 미개발국을 가능한 한 급속하게 공업화할 목적으로 설계된 체계였다....그러나 소련의 경제발전의 엔진은 차량이 일정 거리를 간 뒤에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으면 속도가 올라가기보다 떨어지도록 맞들어진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것이 1944년 이후에 인류의 3분의 1이 살았던 경제들에게 모델이 되었던 체계였다...” (현실사회주의)

 

“20세기 말의 혁명들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진 셈이었다. 기존 혁명전통의 위축과 대중의 부흥이 그것이었다. 1917년 이래 대부분의 혁명들은 헌신적이고 조직된 소수정예 활동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졌거나, 군사 쿠데타의 경우처럼 위로부터 부과되었다. 그러나 20 세기에 대중은 (이란의 신정혁명이나 동독의 저항운동에서처럼) 지지하는 역할을 맡은 자들이라기보다는 주역으로 무대에 복귀했다......” (제 3 세계와 혁명)

 

“소련의 붕괴로 ‘현존사회주의’의 실험은 끝났다. 사회주의 건설 시도는 주목할 만한 성과들을 낳았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나고 참을 수 없는 인명손실을 냈고, 결국 앞길이 막힌 경제와 좋게 말할 점이 전혀 없는 정치체제로 드러난 것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소련 사회주의의 실패가 다른 종류의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손상시키지는 않는다.....” (사회주의의 종식)

 

“과학은 자신의 시대를 반영했다. 과학자들의 생활상의 경험은 어떤 형태로든 그들의 자연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부르주아적 개선과 진보의 19세기에는 연속성과 점진주의가 과학의 패러다임을 지배했다. 자연의 운동방식이 어떻든지 간에 도약은 허용되지 않았다....그러나 20세기 후반의 몇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로서는 카오스나 파국 같은 이미지들이 과학자들과 수학자들에게 떠오른 이유를 이해하기가 전혀 어렵지 않다.....” (마법사와 도제-자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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