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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역사

교양의 탄생 - 유럽을 만든 인문정신 (이광주 지음, 한길사 펴냄)

by 서음인 2016. 6. 2.

1. 이 책을 지은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는 젊은 시절부터 내가 좋아했던 저자 중 한 분으로 최근까지도『편력: 내 젊은 날의 마에스트로』『윌리엄 모리스, 세상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다』등의 책을 통해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知性史의 대가이자,『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아름다운 책 이야기』를 쓴 소문난 애서가요 인문주의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840면에 달하는 이 두툼한 책에서 그가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탐구해 왔던 “유럽문명을 형성해 온 인문정신”과 “그 정수로서의 교양 그리고 교양인”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로부터 시작해 20세기의 68운동에 이르기까지 유럽역사의 전 시대를 횡단하며 흥미진진하게 서술해 나간다. 

 

2. 저자에 의하면 모든 문명과 사회는 당대의 도덕성과 문화의 이상을 상징하고 구현하는 이상적 인간, 즉 교양인을 염원하고 형성해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교 문명권의 선비와 군자, 근대 프랑스의 오네톰과 영국의 젠틀맨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교양과 교양인은 시대를 초월하는 자명한 규범으로 확립된 보편적 실체가 아니며, 역사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천을 거듭해 왔다. 예를 들면 유럽에서 전통적으로 교양이란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적 배움과 취향을 뜻했으며, 교양계층은 라틴어를 말하며 키케로의 문장과 베르길리우스의 시를 읊는 ‘문예공화국’의 주민을 의미했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고답적이고 엘리트적인 ‘교양’을 대신해 근대소설과 극장문화로 대표되는 시민적 교양이 싹트기 시작했으며, 극장에 모이고 소설을 읽으며 함께 토론하는 “담론하는 공중-연대하는 인간”이나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모반을 서슴지 않는 참여적 비판적 지식인이 새로운 시대의 교양인상으로 등장했다. 이런 흐름은 프랑스 혁명을 거쳐 드레퓌스 사건과 스페인 내전, 그리고 현대의 68 혁명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3. 과연 우리 시대에 교양이란 무엇이며, 교양인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오늘날 교양인의 칭호를 얻기 위해서는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자신만의 서재에서 고전과 예술에 탐닉하는 고답적인 개인주의자가 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으며, 최신의 지적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영상문화와 SNS로 무장한 채 현실의 이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참여적 지식인이 되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보인다. 고전과 현대, 서재와 광장, 고독과 연대, 배움과 실천을 아우르는 총체적이고 균형 잡힌 지성인! 바로 그것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참된 교양인像이 아닐까? 여기에 우리처럼 유교문화권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동양과 서양, 신앙과 이성을 아우르며 서로 조화시켜야 하는 과제까지 추가되니, 오늘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이 교양인이 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교양’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대다수 현대인의 뇌리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설령 기억된다고 해도 시대에 뒤떨어진 케케묵은 과거의 유물 혹은 세상의 진보를 방해하는 세력의 전유물 정도로 폄하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교양’이 결코 오래 전에 현실적합성을 상실한 곰팡내나고 고루한 지식들의 더미이거나 시간과 돈이 남아도는 기득권 엘리트들의 한가한 지적 유희가 아닌, 인류가 지금까지 성취해 온 위대한 지적 문화적 유산의 정수일진데 우리가 어찌 교양인이 되기를 멈출 수 있을 것인가! ‘교양’ 및 그와 항상 함께 언급되는 고전, 배움, 지성, 품위, 담론과 같은 단어들은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결코 포기되어서는 안될 고귀한 가치의 이름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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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교양과 지식의 탄생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에서는 신화의 세계와 결별이 일어났다. 그것은 아이러니컬하게 “그대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의 신탁에 따라 고지되었으며, 인간적 인문적인 知의 시대의 개막을 상징한 것은 소크라테스의 출현이었다. 소크라테스와 그에 앞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주역들은 뛰어난 웅변가였다. 말(logos)은 논리를 뜻했으니 그들의 말은 철학적 담론(플라톤의 대화록!)에 이어지고 이론과 지식을 배태했다. 그리스 사람들은 말을 귀하게 여기면서 제단에 바치거나 경전을 꾸미며 염불을 외듯 신성시하는 일은 없었다. 에로스를 주제로 삼은 플라톤의 『심포지온』이 밝혀주듯 그리스인은 말과 말로서 사색과 담론의 놀이를 즐겼다....... 다른 문명권이 신과 왕, 영혼을 받든 반면 그리스인은 인간을, 교양을 구현한 이상적 인간을 창조했다.

 

키케로의 후마니타스와 시민적 휴머니즘  키케로가 이상적인 변론가로서 그토록 내세웠던 교양 있는 변론가란 인간적인 학예(human arts), 즉 인문학적 소양을 두루 갖춘 인간이었다. 그리스의 파이아데이아를 떠올리게 하는 키케로의 후마니타스(humanitas, 이는 키케로의 조어이다)는 바른 예절, 인간적 부드러움을 의미하면서 또한 시민적 덕목을 뜻했다. 시민사회, 시민공동체인 로마에서 국정이나 공사에 참여하는 것은 후마니타스, 인간교양의 중요한 의무 또는 권리로 여겨졌다...... (유럽에서) 인문학적 교양이란 무엇보다 말과 대화, 편지와 글을 잘 쓰는 교양이었으며, 그 텍스트는 키케로의 저작이었다...... 유럽에서 교양이란 글을 쓰는 지적 교양, 공사와 공공선에 참여하는 교양이다. 키케로가 유럽적 교양의 최고 정초자로 기록되는 이유다.

 

중세의 대학  중세의 대학에서 토론(exercitia)은 교본 중심의 강의와는 달리 오늘날의 세미나와 마찬가지로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생 간의 토론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뛰어난 교사들은 강사에게 강의를 맡기고 토론에 주력했다..... 중세 대학에서 강의 이상으로 중요한 토론은 학생들에게 변증법적인 지적 훈련의 기회를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에 의한 탐구, 개인 스스로 인식하는 지의 단련, 그리고 학문에 대한 논의, 이의를 제기하는 비판적 학풍이라는 유럽적인 지적 전통을 쌓아올렸다. 다른 문명권의 학교 교육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유럽 중세 대학에 특유한 ‘토론’은 “물음을 통해 우리는 탐구하고, 탐구를 통해 진리를 찾는다”고 간파한 변증법의 기사 아벨라르에게서, 멀리 소크라테스(문답교수법!)에게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수도원과 주교좌성당 & 철학은 신학의 하녀인가  『성서』가 상징하듯이 그리스도교는 문자와 서적의 종교이다. 중세와 더불어 고대 ‘목소리의 문화’에 종지부가 찍히고 ‘문자의 문화’, 책의 시대가 열렸다. 그 중심에 『성서』가 자리했다. 그리스도는 고대에서 중세로 옮겨지는 과도기, 오늘날의 그리스도상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철학자로 표현되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고전 고대에서 특히 심복한 사상가는 플라톤과 키케로였다. 중세 1천년은 가톨릭 교리와 교회가 지배한 시대라고 하지만 그 ‘한 권의 책’이 군림한 시대는 결코 아니었다. 세 권의 책을 받쳐 든 이 교부를 본받아 많은 성직자는 ‘한 권의 인간’(homo unius libri), 즉 한 권의 책만 탐독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성서』와 더불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베르길리우스를 가까이 한 폭넓은 독서인이며 교양인이었다. 수도원의 도서실이나 사본공방에는 『성서』나 교부들의 저작과 나란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라틴어 고전들이 꽂혀 있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교양 계층의 탄생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들이 중세의 고전학 교사들과 다른 점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시, 산문, 역사서술의 내용이나 문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거기에 담긴 사람다움(humanitas)을 귀히 여기며 그것을 모범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고전은 그들 인문주의자들에게 중세풍의 문헌학자들과는 달리 삶을 위한 최대 자산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운동이 단순이 고대 학예의 ‘재생’에 그치지 않고 부르크하르트와 미슐레가 강조한 바와 같이 인간의 발견, 세계의 발견으로 일컬어지는 이유이다..... 당시의 인문주의자들 중에 페트라르카와 같이 정해진 직업을 갖지 않아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자유로운 문인, 자유로운 교양인과 더불어 자유로운 인격이라는 자의식을 가진 새로운 인간이 탄생되었다. 그러면서 문필가의 저작은 예술가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사유재산이라는 생각, 즉 지적 재산의 개념이 생겨났다.

 

북방 인문주의와 에라스뮈스  전 생애를 통해 에라스뮈스는 교황 국왕 교회 도시 및 대학과 의무가 뒤따르는 관계를 맺지 않았다. 모든 권력 조직과 거리를 둠으로서 지적 자유를 조용히, 그러나 깊은 집념으로 지켰다. 권력과 지위, 그에 따라다니는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초연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한편, 아무도 지배하지 않는 위치. 그는 만하임이 지칭한 ‘자유로이 부유하는 지식인’의 정형, 아니 유연자재한 교양인이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Nulli concedo)!

 

극장, 유혹하는 무대 혹은 카타르시스의 공간  우리는 그리스 로마 시대 이후 면면히 이어진 유럽의 극장무대에서 선남선녀보다 탕아와 탕녀, 일탈과 반역을 꿈꾸는 자를 많이 만난다. 악인, 악한도 로망 피카레스크의 주인공처럼 영웅호걸 대접을 받고 사탄도 메피스토처럼 인간적인 장난기 넘치는 유혹자이다. 그들은 시대에 앞서서 새로운 풍속, 새로운 의식과 삶을 만들고 관객은 그들로부터 놀이와 일탈하는 심성을 배운다. 놀이가 진정 정화의 샘이듯 일탈이란 자유로의 길. 그리하여 가부장들과 권력체제는 본능적으로 그 배반하는 놀이의 장을 두려워한다.

 

전문학과 전문직, 사회 속의 교양  옥스퍼드의 펠로를 지냈던 아널드는 그의 사회 비평집 『교양과 무질서』(1869)에서 교양이란 “사회적 이념이며 교양인이야말로 평등의 진정한 사도이다.” 라고 말한다. 아널드는 계급적 사회적 차별 수단으로 도구화한 지난날의 교양과 산업화 사회의 물질주의, 특히 중산 계층의 자기만족이 빛은, 이른바 속물들의 교양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아널드의 교양인(man of culture)는 정신의 자유로운 놀이를 즐기는 귀족, 젠틀맨의 교양인 상과는 다르다. 그의 교양인은 사회 개혁에 정열을 바치고 사회의 무질서를 구제하는 인간이다. “교양은 계급 타파를 추구한다. 이것은 사회사상이다. 그러므로 교양인이란 진정한 평등의 사도이다.”

 

스페인 전쟁과 교양있는 좌파  지난날 체제에 의해 옹호된 심미적이며 자기중심적인 교양은 18세기 계몽사상의 세례를 받으며 인권과 사회적 연대에 눈을 떴다. 그리고는 마침내 드레퓌스 사건과 스페인 전쟁을 통해서는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 및 유대인과 연합해 그들과 함께 분노하고 증오하며 더 나은 사회를 향한 기쁨과 희망, 꿈을 나누었다. 오늘날 경전처럼 받들어지는 고전도 지난날 이단의 書였다. 교양은 완성된 인간 이상, 격식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실천하고 변모하는 삶의 희망, 꿈을 나누었다.

 

 

목차

                                                                                                                  책을 내면서|이광주

1 그리스, 교양과 지식의 탄생

2 극장, 디오니소스적인 도취

3 키케로의 후마니타스와 시민적 휴머니즘

4 수도원과 주교좌성당, 초기그리스도교의 문화

5 12세기 르네상스와 대학에 이르는 길

6 중세의 대학

7 철학은 신학의 하녀인가

8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

9 사랑의 발명과 궁정풍 교양

10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교양 계층의 탄생

11 보티첼리의 '봄'

12 프랑스 르네상스와 몽테뉴의 에스프리

13 북방 인문주의와 에라스뮈스

14 종교개혁과 종파 이데올로기

15 서재의 미학

16 근대소설과 변신하는 여인

17 극장, 유혹하는 무대 혹은 카타르시스의 공간

18 살롱 또는 담론하는 사교장

19 아카데미와 백과전서적 교양

20 근대 과학의 성립과 패러다임의 전환

21 전문학과 전문직, 사회 속의 교양

22 신문과 잡지, 모반을 꿈꾸는 말과 문자

23 여행, 편력하는 삶의 토포스

24 18세기 계몽주의, 문명의 숲, 사회 속의 연대

25 프랑스 혁명과 독일 지식인

26 베를린 대학과 학문을 통한 교양

27 미국의 대학과 기술산업사회의 허구와 진실

28 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의 정치참여

29 스페인 전쟁과 교양 있는 좌파

30 1968년 5월,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한다"

Y형에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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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주 지음, 교양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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