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 사회/정치경제사회

보수주의 (로버트 니스벳 지음, 강정인 옮김, 이후 펴냄)

by 서음인 2018. 7. 10.

1790년 에드먼드 버크『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후, 보수주의는 지난 2세기 동안 자유주의 및 사회주의와 함께 서구의 3대 정치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였다. 미국의 저명한 보수주의 사회학자인 로버트 니스벳은 이 책에서 근대 서구 보수주의의 ‘先정치적 영역’, 즉 보수주의 전체를 관통하는 시각, 그들이 공유하는 이념과 가치, 그 사상의 본질적인 통찰과 명제들을 분석함으로서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를 해부한다. 저자에 따르면 보수주의는 자연권 사상과 계몽주의 및 공리주의의 영향으로 발생한 근본적 개인주의와 정치적 집단주의에 반대해, 가부장제 가족, 지역 공동체, 교회, 길드, 지방과 같이 역사적으로 성장하면서 천 년 이상 유럽을 지탱해 온 ‘중개적 제도’들의 권리와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의 논지를 요약하고 개인적 단상을 덧붙이기로 한다.


프랑스 혁명  근대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극렬한 반발에서부터 시작됐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이 압제적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비롯됐다는 옹호자들의 설명과 달리, 사회 내의 특정한 이해관계망에 속하지 않은 정치적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된 절대 권력을 위한 투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실제로 사회 안에서 살고 있는 실체적 인간 군상들보다는 혁명 지도자들이 교육과 설득을 통해 그리고 필요하다면 무력과 공포를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었던 부류의 인간에 훨씬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비판한다. 보수주의자들은 프랑스 혁명과 계몽주의의 거대한 물결뿐 아니라 산업혁명으로 인한 강력한 개인주의의 등장과 종교적 열광주의를 초래할 수 있는 감리교의 발흥, 그리고 필연적으로 권력의 중앙 집중화로 귀결되는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철학과 같은 여러 위협으로 인해 자신들의 시대가 중세적인 위대함, 즉 도전받지 않는 종교와 기사도의 위대함, 대학, 길드, 장원, 수도원 같은 거대한 제도들의 위대함,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 통합되고 중합된 사고 체계의 위대함으로부터 급격히 몰락했다고 주장한다.


역사와 전통 역사에 대한 보수주의자의 신뢰는 바로 인간사에 있어 추상적이고 연역적인 사고에 우선하는 전통과 경험에 대한 신뢰에 기초를 두고 있다. 진보적인 합리주의자들은 현재를 미래의 출발점으로 보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현재를 연속적이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과거가 도달한 가장 최신의 지점으로 본다. 사회는 언제든지 개조가 가능한 기계가 아니며 그 제도들의 발현과 기능들의 상호 관련성, 그리고 불가역적이고 누적적인 발전양상에서 볼 수 있듯 유기적이다. 자연적인 변화와 발전 과정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지혜를 초월한 엄청난 지혜가 숨어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한 국민의 진정한 헌법은 “한 장의 문서가 아니라 지난 세기 동안 형성된 관습과 전통의 총체적 집합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도 유익하지 않은 전통까지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며, 그들이 투쟁의 대상으로 것은 버크가 이른바 ‘혁신의 정신’이라고 불렀던 것, 즉 변화 그 자체를 위한 변화에 대한 우상숭배, 무한히 새로운 것을 통해 기분 전환과 자극을 추구하는 대중들에게 만연된 경박한 욕구였다.

 

편견과 이성 버크는 “오늘날과 같은 계몽 시대에도 우리는 배우지 않고 습득된 감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고 과감하게 고백하겠다”고 말하면서 과거의 모든 편견을 버리는 대신 그것을 매우 소중해 여기겠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버크가 말하는 ‘편견’이란 전통 속에 존재하는 권위와 지혜의 요체를 개인의 정신이 습득한 것으로, 자연법 철학자들과 계몽 철학자들이 단순히 미신이라고 폭로하면서 기뻐하던 그런 종류의 지혜였다. 이상주의자들과 개혁가들은 원칙과 이상에서는 강하지만 편의성, 실용성 및 모든 장인에게서 기대되는 노하우에 있어서는 매우 빈약하며, 인류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순수한 논리 뿐 아니라, 느낌, 감정,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나름의 고유한 지혜를 가진 추론방식(편견)을 필요로 한다. 버크는 자연권에 대한 선험적 지식이나 자유에 대한 타고난 본능에서 비롯한다는 저항의지의 거의 대부분은 사실 인민의 마음속에서 점차적으로 발생해 온 ‘편견’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추상적인 권리가 아닌 이런 ‘편견’이야말로 우리가 존중하는 자유를 위한 인민의 투쟁에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권위와 권력 버크와 그의 후예들은 자신의 관습과 전통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인간의 자유를 옹호하지만, 그들이 의미하는 유일한 자유는 질서 및 덕성과 연계되어 존재할 뿐 아니라 그것들 없이는 전혀 존재할 수 없는 자유다. 루소를 포함한 계몽 사상가들은 자유를 단지 ‘개인’과 ‘국가’라는 두 실체의 권리라는 관점에서만 다뤘지만, 이는 버크와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듯 가족 ‧ 교회 ‧ 지역공동체 ‧ 길드와 같이 이 두 실체를 매개하는 ‘중개적 권위구조’들의 역할과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국가는 공공평화나 공공질서, 공공재산에 관련된 사항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고 사적인 영역이나 중개적 영역, 경제 사회 도덕적 문제에 대해서는 간섭을 최소화해야 하며, 가족 ‧ 마을 ‧ 교회 ‧ 자발적인 결사체와 같은 중개적 권위구조의 기능과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사회적 유대의 강조, 개인의 상대적 경시, 전통에 대한 애착, 위계질서, 영웅주의 및 모든 정치적인 것을 분권화하려는 경향이 보수주의의 특징이다. 완전한 민주주의에는 사회의 다양성을 자신의 획일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주형에 넣고자 하는 근절할 수 없는 제국주의가 존재하며, 전쟁의 확대나 대중의 원자화 및 전제주의 국가의 확대와 같은 위험 또한 수반된다. 자유방임과 분권화야말로 보수주의가 선호하는 최상의 정치형태다.

 

자유와 평등 보수주의 철학에서 자유와 평등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 자유의 일관된 목적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며, 평등의 고유한 목적은 한 공동체에서 불평등하게 분배된 물질적 ‧ 비물질적 가치를 재분배하거나 평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능력은 선천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이런 능력의 다양성을 법과 통치로 보완하려는 모든 노력은 관련 당사자의 자유, 특별히 가장 강하고 가장 우수한 자의 자유를 훼손시킬 뿐이다. 기능 ‧ 역할 ‧ 권력의 불평등은 가족에서처럼 사회 질서 전체에도 필수적이며, 사회분화 ‧ 위계질서 ‧ 기계적이 아닌 기능적인 합의는 질서뿐만 아니라 자유에도 필수적이다. 계급, 공동체, 길드, 법인체와 같은 중개적 집단의 권리 주장은 전제정치로 귀결되기보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보완물로 작용하며, 중개적 결사들은 개인을 중개하고 함양하는 기제로서뿐 아니라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완충장치로서도 소중하다. 가족이나 공동체 지역 같은 집단의 권리가 중앙국가에 의해 침해된다면 개인의 자유를 지켜줄 보루는 조만간 무너지게 될 것이다.

 

재산과 생명 보수주의자들에게 재산이란 단순히 인간의 필요에 봉사하는 수단 이상의 것으로, 신체의 연장이자 인간의 인간다움과 전 자연계에 대한 인간 우월성의 조건을 상징한다. 재산의 균등 분할로 대체된 장자 상속과 한정 상속의 폐지야말로 어떤 단일한 원인보다 근대로의 변환에 막중한 영향을 끼쳤으며, 토크빌에 의하면 미국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의 대부분은 가족과 재산 사이의 '분자적인 결합'의 파괴로부터 나왔다. 자선이란 일차적으로 가족, 마을, 이웃, 교회의 의무이며, 이러한 다양한 중개집단이 국가 관료기구에 의한 허황된 자선보다 ‘상호 부조’의 형태로 훨씬 더 효과적인 원조를 제공할 수 있다. 보수주의가 필연적으로 빈자와 하층계급의 곤경에 무관심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정부의 일차적 목표가 직접적으로 자선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 중개집단들의 능력의 조건을 돌보는 것이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가슴 속에는 재산과 자유가 불가분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재산을 사적 소유로부터 분리하면 자유는 소멸되고 만다는 확신이 존재한다.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로부터 보수주의자를 구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각자의 재산관을 시험하는 것이다.

 

종교와 도덕 보수주의자들에게 종교는 무엇보다도 공적이고 제도적인 것으로서 국가와 사회의 양자를 떠받치는 귀중한 기둥이자 충성과 형식에 대한 적절한 존경을 바치는 것이다. 그들은 주로 국교를 선호했는데, 그 이유는 국교가 정부의 필수적 기능과 전체적인 정치 사회적 유대에 신성함을 부여하며 가끔은 국가의 자의적 권력행사에 대한 견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들에게 종교란 심원하고 충만한 교의거나 삶을 통합시키는 총체적 경험이 아니었으며, 특히 종교적 열광주의란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이러한 보수주의적 신앙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것은 초월적 실체가 종교적 옷은 물론 시민적 옷을 입고 자신을 드러내고 가장 신성한 축제일들이 종교적이고 시민적인 목적에 봉사하는 ‘시민종교’다.

 

보수주의의 귀결 보수주의자들은 현재 존재하는 질서 이외의 ‘자연적’ 질서에 대한 사변을 삼갔고, 허구적인 자연법 이론의 추상적이고 원자적인 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있는 그대로 연구했으며, 그 결과 근대 사회과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자유주의적 다원주의, 분권화에 대한 강조, 길드, 협동조합에 대한 사회주의적 관심의 증대는 실질적으로 보수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크로포트킨의 저작에서 절정에 달한 사회주의적 무정부주의 역시 이 영향력 아래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보수주의의 큰 공헌은 중세적, 전통적인 것을 예술, 문학, 인생 그 자체를 평가하는 탁월성의 기준으로 삼은 데 있었으며, 19세기의 낭만주의는 많은 면에서 계몽사상의 합리주의에 대한 거대한 반테제의 총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전통에 대한 호소력, 인간의 깊은 향수, 그리고 새로운 것의 도전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보편적 심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솔직하고 담담하게 과거가 직접 제공한 모델에 의존해 현재를 비판했다.

 

개인적 견해로 한국의 전통적인 ‘보수’는 전통의 권위와 지혜를 존중하고, 대중독재나 전제정치의 위험에 맞서 다원적 질서나 정치적 분권화를 선호하며, 전통을 중개하고 권력을 견제할 ‘중개적 권위구조’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서구적 의미의 보수주의라기보다, 국가에 절대적인 권능을 부여하고 기꺼이 그 종이 되기를 자처하는 국가지상주의 혹은 유사 파시즘에 가까와 보인다. 식민통치와 한국전쟁의 격변을 통과하면서 지켜야 할 전통이나 그 전통을 담지해야 할 ‘중개적 권위구조’ 자체가 폭력적으로 해체되었고, 식민지와 전쟁의 쓰라린 경험이 대중에게 스스로를 지켜 줄 강력한 국가의 필요성을 깊이 각인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마르크시즘과 주체사상을 추종하던 한국의 몇몇 ‘진짜’ 좌파들이 왜 그다지도 쉽게 ‘보수’로 투항할 수 있었는지를 알려 주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에게 ‘진보’에서 ‘보수’로의 전향이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우파 파시즘 독재로의 전향, 즉 하나의 정치적 집단주의에서 또 다른 정치적 집단주의로의 이동에 불과했던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