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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회/정치경제사회

문명화과정 I, II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지음, 박미애 옮김, 한길사 펴냄)

by 서음인 2019. 10. 5.

문명화과정은 현대 사회학의 거장인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 1897~1990)의 대표작으로 두 권을 합치면 8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이다. ‘결합태 사회학이나 문명화과정의 이론과 같은 독창적인 사회학적 사유를 역사적이고 실증적인 연구와 결합한 이 고전적인 저술은 1939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지만, 세계대전으로 인한 망명과 이로 인한 늦은 학계정착이라는 저자의 개인적 불행에 당대의 주류 사회학계와 벗어난 학문적 관점이 더해져 오랫동안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그의 생애 말년에 화려하게 복권되고 재조명되었다고 한다


문명화과정이란 사회구조의 변동에 따라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사회적 통제를 내면화함으로서 개인의 감정구조가 변화해가는 과정이라는 저자의 논지를 당대의 예법서에서 인용한 온갖 더러운예들로 입증해 나가는 1권의 경우 흥미롭기도 하고 읽기에도 어려움이 별로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명화과정이 봉건적인 중세사회에서 중앙집권적 절대국가가 등장하는 근대사회로의 전환이라는 유럽의 사회구조적 변화과정과 맞물려 있음을 실증적 태도로 상세히 설명하는 2권을 읽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번역자의 해설을 참조해 내용을 요약하고 짧은 개인적 단상을 덧붙임으로 이 책과 함께했던 긴 여정을 마감하기로 한다 .


요 약


결합태 사회학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사회학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결합태는 글자 그대로 인간들이 자신의 행위를 통해 형성하는 인간관계의 구체적 형태를 의미하며, '구체성'과 ‘상호의존양상’ 그리고 동태적 관계라는 특성을 가진다. 인간결합태인 사회의 흐름은 분명 일정한 방향과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결코 미리 규정된 계획이나 목적에 따라 진행되지는 않는다. 엘리아스 사회학의 근본과제는 바로 이러한 결합태 내의 상호의존양상을 분석하고 그 역동성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개개인은 결합태의 구성원으로서 그 결합태 내에서 발달된 사회적 규범을 학습해나간다. 모든 결합태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부단한 변화의 흐름 속에 있으며, 그 결합태에서 특정 시대에 모범으로 생각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는 행동과 감정 규약 역시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어린아이가 성장하면서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와 규범, 행동방식을 습득하여 내면화하는 개인의 사회심리적 발달과정이 사회화라면, 장기간에 걸친 사회나 문화의 사회심리적 발달과정이 바로 문명화과정이다.

 

문명화과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문명화되었다는 말에서 "남에게 예절바르고 친절한 태도, 남을 배려하는 태도, 깨끗하고 위생적인 습관, 온건함과 강한 자제력" 등을 연상한다. 엘리아스는 식탁에서의 행동규칙이나 코 풀고 침 뱉는 방식등에 대한 행동지침을 수록한 예법서나 문학작품과 같은 다양한 역사적 자료들을 분석해 서구인의 행동양식이 중세 후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동안 점차 문명화되는방향으로 변화해 왔고, 이러한 행동의 변화는 인간의 심리 및 감정구조 전체의 변화를 수반한다는 사실을 밝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명화과정'은 근대 시민계층이 아닌 궁정 귀족층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1) 엘리아스는 문명화과정에 수반하는 행동방식의 변화에는 행동의 외면적 통제에서 내면적 통제로의 전환이라는 보편적 과정이 관찰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행위를 외부로부터 규제하는 제제가 문명화과정을 통해 개인의 내면으로 옮겨지면서 결국 사회의 외부에 존재하는 통제장치가 개인의 내면에 형성된 통제장치와 일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문명인은 자신의 감정과 충동에 더 이상 예속되지 않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그래서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다. 즉 '문명화과정'이란 '합리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 이러한 합리화 및 문명화과정을 위해서는 물리적 폭력에서 자유로운 평화적 공간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의 중앙집중화와 절대주의 국가의 형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절대주의적 국가는 궁정사회라는 상호간에 밀접한 관계로 얽힌 새로운 결합태를 산출하고, 무기로 치르는 투쟁을 허용치 않는 궁정사회는 궁정인들에게 감정과 충동의 폭력적인 분출을 그 특징으로 하던 중세의 기사들과 다른 특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특성이 바로 심사숙고, 장기적 안목, 자기절제, 감정의 정확한 조절, 생리적 기능의 은밀화, 인간을 비롯한 전체의 영역에 대한 광범한 지식”, 궁정적 합리성이다.

 

(3) 이러한 궁정적 합리성을 비롯한 궁정적 생활형태나 행동양식은 중세의 전사들을 길들여 온건한 궁정인으로 만들면서 평화로운 상호교제의 모델을 만들어냈고, 이는 모범적인 상류사회의 표본으로서 17, 18세기의 산업적 시민사회로 확산되었다. 사회구조의 변화가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방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는 다시금 그 관계 안에서 살아가가는 인간들의 행동방식 및 정서구조의 변화를 촉발한다는 것이다. 엘리아스에 따르면 결국 문명화과정 및 합리화과정은 중세 후기부터 시작된 궁정의 발달과정의 부산물이었으며, 그 주체는 세속 궁정귀족이었다.

 

문명화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엘리아스는 이렇게 행동과 인격구조의 변화를 그 본질로 하는 유럽 문명화과정이 중세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전환이라는 사회구조적 변화과정과 맞물려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국가형성과 그로 인한 사회의 평화가 적어도 유럽발전의 특정한 시기 즉 12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문명화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다. 문명화과정2권에서는 그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1) 중세의 봉건사회는 낮은 수준의 교역과 노동분화, 제한된 화폐사용 그리고 물리적 폭력의 분권화를 그 특정으로 하며, 강력한 중앙권력의 부재로 인해 끊임없는 폭력과 사회볼안을 그 특징으로 하는 사회였다. 왕이 하사한 토지에 웅거하던 영주들은 자기 나름의 경제적 수입원 · 무력 · 행정조직을 장악하면서 비교적 자율적인 단위로 존재했으며, 이들에게는 강력한 무력과 전투능력만이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중세인들의 전형적인 행동방식인 육체적인 것의 직접적 표출이나 개인의 감정과 충동의 공격적 발산을 통제할 필요나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2)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며 노동분화와 교역망의 증대, 실물경제에서 화폐경제로의 전환, 도시와 시민계급의 사회적 상승 등의 변화가 일어났고 이는 대영주에게는 유리하게 중소 영주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따라서 제후들간의 권력투쟁이 발생하고 독점 매커니즘이 작동하게 되면서 강력한 영주가 상대적으로 약한 영주들을 군사적 정치적으로 통제하게 되는 과정이 반복되며, 그 결과 봉건제도가 해체되고 절대왕정과 근대국가가 형성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형성된 국가는 물리적 폭력과 조세권을 독점하면서 전통적인 영주 귀족들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킨다.

 

(3) 조세권을 독점해 부유해진 왕은 토지의 분배 대신 화폐지급을 통해 군대와 관료조직을 유지하고 지방이나 중앙의 관직에 귀족뿐 아니라 시민계급을 등용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왕은 중앙의 통치기구를 시민계급의 전유물로 만듦으로서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었지만, 약화된 귀족계급에게는 궁정의 관직을 제공함으로서 두 계급 간의 균형을 유지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잠재적 경쟁관계에 있었던 여러 개인이나 집단들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상호조정하고 규제할 상부 조장자로서의 왕의 권한은 더욱 강화되었다.

 

(4) 경제적 입지가 축소된 군소 영주들은 자신의 영지에 머무는 대신 절대군주의 궁정에 가신으로 들어가게 되며, 절대군주의 궁정에서 감정과 충동의 폭력적 분출이 아니라 세련된 예절과 자기통제 즉 문명화된 행동양식을 요구받게 된다. 귀족층은 점차 이러한 문명화된생활양식을 내면화하여 자신들을 시민계급과 구별짓고 위계질서를 공고히 하려고 하며, 경제권을 가지고 권력에 참가하기를 요구하는 시민계급 역시 그러한 문명화된생활양식을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한 가지 단상

 

엘리아스는 문명화과정이란 다른 사람에 의해 외부에서 주어지던 강제의 역할을 개인이 스스로 담당하게 되는 사회적 통제의 내면화과정이며, 그 원동력이 물리적 폭력수단이 중앙권력으로 집중되면서 내부의 평화가 달성되는 국가형성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평화가 사라지고 삶의 안정성이 파괴되어 많은 사람들의 삶을 불안이 사로잡는 상황이나 전쟁과 같이 개인의 충동과 폭력성이 여과 없이 분출되는 것이 허용되는 상황에서는, 문명화라는 내면화된 통제가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문명화된서구인들이 과거 식민지에서 행한 여러 만행이나, 나치의 유대인 말살정책을 포함한 20세기에 벌어진 수많은 전쟁에서 벌어진 홀로코스트의 참상, 그리고 오늘날 소말리아나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무정부 상태에 빠진 국가에서 벌어지는 무질서와 폭력을 상기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문명화란 세워지기까지 지난한 노력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힘써 지키지 않는다면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는 연약한 구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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