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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역사

중세 동물지 (작가 미상, 주나미 옮김, 오롯 펴냄)

by 서음인 2018. 9. 10.

<중세 동물지>는 10~15세기 중세 유럽에서 유행했던 동물지(Bestiarium)라는 장르의 문헌 중 13세기의 잉글랜드에서 제작된 <에버딘 필사본>을 번역한 책이다. 목차를 살펴보면 걸어다니는 동물 ‧ 날아다니는 동물 ‧ 기어다니는 동물 ‧ 물에 사는 동물과 같이 동물을 다루는 장들 뿐 뿐 아니라 나무 ‧ 인간 ‧ 신비한 돌과 같은 장들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개별 항목들마다 삽화와 함께 특징을 서술하고 있는 구성은 일견 근대의 동물백과 내지는 잡학사전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중세 동물지는 근대 동물백과와 달리 동물의 해부학적 구조나 행동 양태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으며 “그 동물이 상징적으로 지니고 있는 도덕적 ‧ 종교적 ‧ 사회적 의미”를 밝히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번역자는 이러한 동물지의 공통적 특징이 (1) 실재하는 동물뿐 아니라 용 ‧ 유니콘 ‧ 불사조 ‧ 그리핀처럼 상상의 존재들도 나온다는 것과 (2) 겉모습이나 행동 ‧ 습성 ‧ 본성뿐 아니라 이름의 기원과 관련된 신화나 다른 동물이나 인간과 맺는 관계 등이 그 동물의 ‘객관적’ 특성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것 (3) 두 개의 단어나 개념, 두 가지 사물이나 사건 사이의 막연한 유사성이나 상응성에 기초해서 관계를 밝히면서 감춰진 진실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 등이라고 말한다. 중세 동물지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생물인 동시에 초자연적인 것의 의도적인 재현이며, 자연은 신의 정신이 비추어지고 있는 거울이자 신의 뜻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로 여겨진다. “성서는 분명하게 말하고 자연은 그것을 확인시켜 준다”는 동물지 작가의 말은 동물을 포함한 자연을 바라보는 중세인들의 사고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이러한 동물지의 특성은 이 책의 여러 곳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원숭이(Simia)가 이성을 지닌 인간과 유사해(similitudo)보여서 그렇게 불리며 유일하게 거세되는 조류인 수탉(Gallus)의 이름은 거세된 남자를 일컫는 galli 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하늘을 날다 시신을 보면 내려와 그것을 먹는 독수리는 천상에 머물다 죽음에 휩싸인 인류를 보고 지상에 내려온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자신의 옆구리를 쪼아 벌려서 죽은 새끼들의 몸에 피를 부어 다시 살려낸다고 알려진 펠리컨 역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서술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징과 알레고리들이 동물지 작가 개인의 주관적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당대 사회에서 보편성과 구체성을 지니며 소통되었던 공적 지식이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동물지는 중세의 설교 ‧ 조각 ‧ 속담 ‧ 문장 ‧ 우화 등의 다양한 분야에 두루 활용되었으며, 어떤 장르보다도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에게 폭넓은 인기를 끌고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러한 중세 동물지는 중세 유럽 사회의 정치적 ‧ 종교적 ‧ 도덕적 규범들을 우의적으로 표현한 중요한 교화의 수단이기도 했으며, 지금도 근대인들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자연 이해와 대비되는 중세적 자연관과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애서가들에게 필독서로 권할 만한 책은 아니나, 서구 중세문명이나 기독교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쯤 훓어볼 만 하다. 그리고 한 가지, 이 책을 읽다보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잘못된 과학 내지는 유사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강단에서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는 몇몇 설교자들의 모습이 반드시 떠오르게 될 것이다!

 

 

목차


해설 | 동물로 보는 중세 사회와 문화

 

1. 신의 창조물

천지창조 | 세상의 모양 | 창조의 5단계 | 창조의 6세대 | 아담의 이름붙이기

 

2. 걸어다니는 동물

사자 | 호랑이 | 파르두스 | 표범 |안탈롭스 | 유니콘 |스라소니 |그리핀 |코끼리 | 비버 | 아이벡스 | 하이에나 | 본나콘 | 원숭이 | 사슴 | 염소 | 모노케로스 | 곰 | 레우크로타 | 악어 | 만티코라 | 파란드루스 | 여우 | 산토끼 | 카멜레온 | 에알레 | 늑대 | 개 | 양 | 숫염소 | 멧돼지 | 황소 | 낙타 | 나귀 | 말 | 오노켄타우루스 | 고양이 | 쥐 | 족제비 | 두더지 | 겨울잠쥐 | 오소리 | 고슴도치 | 개미

 

3. 날아다니는 동물

새들의 본성 | 비둘기 | 매 | 산비둘기 | 참새 | 펠리컨 | 헛간올빼미 | 오디새 | 까치와 딱따구리 | 큰까마귀 | 수탉 | 타조 |독수리 | 두루미 |솔개 | 앵무새 | 따오기 | 제비 | 황새 | 지빠귀 | 수리부엉이 |후투티 | 올빼미 | 박쥐 | 갈까마귀 | 나이팅게일 | 거위 | 왜가리 | 세이렌 | 계피새 | 에르키니아 | 자고새 | 물총새 | 물닭 | 불사조 | 칼라드리우스 | 메추라기 | 까마귀 | 백조 | 오리 | 공작 | 검독수리 | 벌 | 비둘기와 페린덴스 나무

 

4. 기어다니는 동물

뱀에 대하여 | 용 | 바실리스크 | 살무사 | 아스피스 | 스키탈리스 | 안피베나 | 이드루스 | 보아 | 이아쿨루스 | 시렌 | 셉스 | 디프사 | 도마뱀 | 뱀의 본성 | 벌레

 

5. 물에 사는 동물

고래 | 세라 | 돌고래 | 바다돼지 | 황새치 | 톱상어ㆍ바다전갈 | 악어 | 강꼬치고기 | 노랑촉수 | 숭어 | 물고기의 습성 | 놀래기 | 빨판상어 | 뱀장어 | 곰치 | 문어 | 전기가오리 | 게 | 성게 | 조개ㆍ뿔고동ㆍ굴 | 거북이 | 개구리

 

6. 나무

나무에 대하여 | 종려나무 | 월계수 | 사과나무 | 무화과나무 | 나무딸기 | 견과나무 | 소나무 | 전나무 | 삼나무 | 편백나무 | 노간주나무 | 플라타너스 | 참나무 | 물푸레나무 | 오리나무ㆍ느릅나무 | 포플러나무ㆍ버드나무 | 고리버들 | 회양목

 

7. 인간

인간의 본성 | 인간의 혼과 몸 | 인간의 감각 | 머리와 얼굴 | 팔과 손 | 가슴과 등 | 허리와 다리 | 근육과 장기 | 인간의 생애

 

8. 신비한 돌

부싯돌 | 아다마스| 진주 | 열두 가지 보석 | 돌의 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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