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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역사

결혼을 허하노니 마오쩌뚱을 외워라 (쉬산빈 지음, 이영수 옮김, 정은문고 펴냄)

by 서음인 2018. 2. 6.

『결혼을 허하노니 마오쩌뚱을 외워라』는 중국의 저명한 민간문서 수집가인 쉬산빈(許善斌) 선생이, 가산을 탕진해가며 수십 년 동안 모아 온 생활문서(증서와 문서)를 통해, 청나라 말부터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중국 근 현대사의 중요한 단면들과 당대를 살아간 중국인들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살펴본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청나라 말에서부터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직전까지(1880~1948)와 중화인민공화국 설립부터 문화대혁명의 종료까지(1949~1980)의 두 시기로 나눠, 기차표나 입장권에서부터 졸업증서나 결혼 증명서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수집한 다양한 생활문서들을 주제별로 소개한다. 그리고 각 문서들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나가며 당대의 정치사회적 정황과 그 시대를 살아간 민초들의 삶을 생생한 필치로 되살려낸다. “생활문서로 본 중국 백년”이라는 부제야말로 이 책의 내용을 가장 잘 요약한 문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40년 전의 혼인에 대해 혼인세를 징수한 결혼증명서에서부터, 남편이 아내를 매매한 후 자신이 새 결혼의 주례까지 맡았다는 사실이 기록된 아내매매증서, 합법적으로 아편을 피울 수 있는 아편관의 영업허가증이나 흡연면허증, 마오쩌뚱 어록이 4/5를 차지하고 결혼식 일정과 장소는 아래 구석에 조그맣게 표기된 청첩장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삶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이 책에 실린 문서의 내용들은 단순히 흥미롭기만 할 뿐 아니라 때로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최근 역사학의 중심축은 역사의 큰 흐름을 다루는 정치사나 경제사, 사회사 같은 분야로부터 개인들의 일상이나 심성에 관심을 가지는 일상사, 생활사, 미시사, 심성사와 같은 분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공동체’와 ‘거대담론’이 쇠퇴하고 ‘개인’과 ‘삶’이 강조되는 세상의 변화와 관계가 깊지 않을까? 비록 훈련받은 역사가는 아니었지만 생활문서를 통해 나름의 '역사쓰기'를 시도한 저자의 수고로운 작업 역시 그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370여 페이지 정도로 얇은 책은 아니지만 서술이 유려하고 내용이 흥미로울 뿐 아니라 칼라 사진이 많고 편집도 시원해 읽기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으며, 꼼꼼한 만듦새로 읽는 재미뿐 아니라  보는 재미까지 안겨주는 좋은 책이다.

 

목 차 

한국어판 추천사 각설하고, 읽어보시라! 
추천사 생활문서로 역사를 기록하다 

1부 | 근대라는 시련과 실험 1880-1948 
1. 서양에서 수입한 졸업증서 
2. 힘 잃은 황제의 명령 
3. 수술대에 오른 전통교육 
4. 외국학교, 인재를 키우다 
5. 스승과 제자, 계약과 매질 사이 
6. 두 갈래로 나뉜 교육 
7. 정치색, 이쪽 아니면 저쪽 
8. 량수밍과 노먼 베쑨 
9. 옛 결혼에 세금을 매기다 
10. 결혼도 이혼도 법대로 
11. 신식결혼이냐, 단체결혼이냐 
12. 루쉰 모친 부고 속 정실과 첩 
13. 여자를 사고팔다 
14. 철도에서 애국심을 키우다 
15. 낭만은 기차여행이 으뜸 
16. 도로 위 등장한 새로운 탈거리 
17. 외국산 당나귀, 자전거 
18. 배를 탔다는 증표가 더 중요해 
19. 우표를 붙여야 하는 시대 
20. 전보여! 중국인을 유혹하라 
21. 대륙에 전화벨이 울리다 
22. 박물관으로의 초대 
23. 전족 한 쌍에 벌금 얼마? 
24. 사진, 기녀의 품격을 품다 
25. 기녀 영업도 등급이 있다 
26. 신분증명서는 곧 품행평가서 
27. 복권 경제침략 VS 복권 문화진흥 
28. 한탕 권하는 복권공화국 
29. 개항과 함께 불어 닥친 마권 바람 
30. 서양이 건넨 덫, 아편 
31. 아편과의 전쟁, 금연 전성시대 
32. 대륙에 새겨진 일본이라는 상처 

2부 | 붉은 별, 인민공화국 1949-1980 
1. 붉은 오각별과 낫과 망치 
2. 인민정부의 독한 공부법 
3. 문화인, 천 개 문자를 아는 자 
4. 능숙한 기술자가 필요해 
5. ‘노동’이라는 학습과목 
6. 마오쩌둥을 외우고 또 외워라 
7. 혁명이야말로 최고의 여행상품 
8. 인민이여, 다자이에서 배우자 
9. 교양이 없어서 혁명가? 공선대와 군선대 
10. 새 술은 새 부대에 ‘혁명위원회가 좋다’ 
11. 아무데나 붙는 마오쩌둥 최고지시 
12. 혁명, 이혼을 부채질했나? 
13. 신랑신부보다 정치가 중요해 
14. 혁명을 싣고 달리는 기차 
15. 인민의 튼튼한 발 
16. 전보 울렁증에서 벗어나다 
17. 전화를 빨리 받아 애국하자 
18. 화상회의의 원조, 전화회의 
19. 굶지 않게 되니 여행과 유람이다 
20. 건국기념일의 여러 표정 
21. 세상물정을 한눈에 
22. 사회주의식 끼리끼리 
23. 소련은 ‘큰형님’ 
24. 애증의 대상과 친해지는 방법 

지은이의 글 옛 종이를 음미하는 즐거움 
옮긴이의 글 역사란 이렇게도 볼 수 있다


<결혼을 허하노니 마오쩌뚱을 외워라>

아내매매 증명서!

사진까지 달린 기녀의 영업허가증

마오쩌뚱 어록으로 가득한 문화대혁명 당시의 문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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