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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역사

알코올의 역사(로드 필립스, 연암서가), 맥주, 세상을 들이키다(야콥 블루메, 따비),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조너선 헤네시, 계단)

by 서음인 2017. 12. 26.

1. 기독교와 술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다룬『기독교 역사 속 술』을 읽으며 함께 읽게 된 술의 문화사를 다룬 세 권의 책. 내용만 500페이지가 넘어 세권 중 가장 부피가 큰 『알코올의 역사』가 9천년에 이르는 술의 역사와 음주의 문화사 및 영향사를 유럽과 북미뿐 아니라 이슬람 세계나 중남미 아프리카와 같은 탈서구 세계까지 포괄해 광범위하고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교과서적인 책이라면, 『맥주, 세상을 들이키다』는 역사의 모든 장면에서 인간과 함께 했던 맥주를 둘러싼 다양하고 이야기들과 맥주가 당대의 세상에 끼친 영향(특히 정치적 영향)을 재미 있게 서술한 ‘맥주의 문화사’라 할 수 있으며,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는 위 책의 내용중 맥주에 관한 핵심적인 부분이 멋진 그림에 담겨 있는 흥미진진한 만화다.

2. 세 권의 책에 나오는 내용 중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요약해 보기로 한다. 

(1) 술의 기원은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기원전 7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기원전 4000년 전에 만든 용기에서 포도주의 발효 흔적이 발견되었다. 인류가 지은 가장 오래된 이야기인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주인공인 엔키두는 빵과 맥주를 먹음으로서 비로소 인간(문명인)이 된다. 술의 역사는 곧 문명의 역사이며, 유사 이래 인간은 곧 술 마시는 인간(Homo Imbibens)이었다.

(2) 고대부터 근대까지 음주는 식사 문화의 중요한 일부였다. 중세시대까지의 맥주는 동일한 양의 빵보다 칼로리가 높았고 영양이 풍부했으며, 빵의 또다른 형태라 할 수 있는 ‘흐르는 빵’에 가까왔다. 또한 물이 오염되어 있었던 대부분의 시대에 술은 선택 가능한 가장 안전한 음료였으며, 물의 오염의 의심되는 전장이나 장거리 항해에서도 수분섭취를 위한 필수품이었다. 근대 이전의 음주는 공동체와 함께 하는 사회적 행위이자 교제의 수단이었기에 ‘알코올 중독’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중독은 금주의 필요성이 대두된 후에 나타난 현상이다.

(3) 포도주가 예배와 신학의 중심에 위치했던 기독교는 다른 주요 종교보다 음주에 대해 관대했으며, 중세 가톨릭 수도원이나 종교개혁자들은 절제를 강조했지만 포도주와 맥주의 적절한 섭취 자체를 금하지는 않았다. 기독교가 퍼진 곳에는 포도나무가 심겨졌고, 중세 수도원은 질 좋은 맥주나 포도주를 만들어내는 양조장이기도 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술은 수도원을 유지하는 주요 수입원이 되었다. 그리고 수도원들은 맥주 첨가물인 홉(hobb)의 효능을 처음으로 언급했던 전설적인 여성 수도원장 힐데가르트 본 빙겐이나 라거비어를 만들어 낸 뮌헨의 수도원들처럼 맥주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4) 16세기 들어 값싸고 알코올 돗수가 높은 증류주(스피릿)가 등장했고, 산업화의 진행으로 도시에 몰려든 사람들은 점차 술집에서 홀로 마실 수 있으며 저렴한 비용으로 빨리 취하게 해주는 증류주를 선호하게 되었다. 공동체성을 상실하고 개인화된 음주를 조장하며 교제보다는 취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증류주의 유행은 중독이나 폭력과 같이 이전에 없던 심각한 사회문제들을 유발했고, 자제력과 ‘멀쩡한 정신’을 미덕으로 삼는 산업 사회의 요구와 맞물려 모든 종류의 술을 사회악의 근원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증가시켰다.

(5) 이에 더해 공중보건의 발달로 안전한 식수의 공급이 가능해지고 차와 커피 같은 비알콜성 대체 음료가 점차 보편화되면서, 이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이었던 절대 금주가 역사상 최초로 완전히 실행 가능한 선택대안이 되었고, 술의 문화적인 의미가 영양과 수분을 섭취하기 위한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음식에서 오락을 위해 임의로 소비하는 음료로 영원히 바뀌게 되었다. 그 결과 19세기부터는 절주/금주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미국에서 이러한 운동은 모든 종류의 알코올 음료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금주령으로 열매 맺게 된다. 한국 기독교의 독특한 금주전통은 바로 이렇게 술에 대한 19세기 서구의 변화된 태도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3. 다시 한번 요약하자면 술은 근대 이전까지 영양과 수분을 제공하는 필수적이고 일상적인 식품(흐르는 빵)이자 교제를 위해 공동체로 함께 즐기던 사회적 음료였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면서 취하기 위해 홀로 마시며 심한 주취와 중독을 유발하는 증류주가 유행하고, 깨끗한 물이나 커피/차와 같은 비알콜 대체 음료가 일상화됨에 따라, '개인이 오락을 위해 임의로 소비하는 대체가능한 음료'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그리고 19세기 들어 이렇게 술의 문화사적 의미가 완전히 변화되면서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절주/금주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4. 이 책을 읽은 후 내가 내린 유일한 결론은 내가 심지어는 기록된 성서의 역사보다 더 오래된 이 중요한 음료에 너무 소홀했다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체질적으로 알콜과 상극인 내가 이 음료와 직접 부딪히면서 친해질 일은 전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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