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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예술/미술

제임스 앙소르 (울리케 베스크 말로르니 지음, 마로니에 북스 펴냄)

by 서음인 2016. 5. 26.

가면이나 해골이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그림들로 유명한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 1860~1949)는 쿠르베와 같은 사실주의나 모네로 대표되는 인상주의가 풍미했던 19세기말에 표현주의적이며 풍자적인 독특한 화풍으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과 허위와 위선에 가득찬 당대의 부르주아 사회를 통렬히 비웃고 풍자한 괴짜 화가였으며, 20세기의 파울 클레나 게오르게 그로스 같은 화가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그로테스크하고 연극적인 것, 풍자와 야유 속에서 자신의 기질과 내적 본능에 맞는 표현수단을 발견했으며, 세상을 향한 급진적이고 풍자적이며 불평스러운 시선을 담아낼 수단을 찾아낸” 이 벨기에 화가의 그림에는 과연 그로테스크한 형상, 찌푸린 얼굴, 해골이나 가면, 섬뜩한 환영들이 가득하고, 이러한 그로테스크한 그림들을 통해 화가는 그가 조소해 마지않았던 ‘평범한’ 사물이나 ‘정상적’인 인간의 이면에 도사린 추악하고 위선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가 즐겨 그렸던 괴상하고 추악한 가면들이 사실은 우리가 뒤집어쓰고 있는 ‘정상적’ 얼굴이라는 가면 속에 감추어진 우리의 진짜 얼굴이라는 역설이야말로 그의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속적으로 판사 의사 성직자 같은 그 당시의 주류세력에 대한 경멸을 드러냈으며, 일련의 풍자화를 통해 그들의 허위의식과 위선, 무능, 타락에 대해 조롱하고 야유를 퍼부었다. 그리고 사회적 비리나 의심스러운 사건을 엄격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감시자로서 일생동안 권력의 남용에 대해 통렬히 비판했다. 저자에 의하면 “그의 풍자화는 신랄하고 섬뜩하며 때로 메스껍기까지 했으며, 그 지독한 조소로 인해 친구들에게까지 혹평을 받을 정도였다”.


만약 이 괴상한 화가가 오늘 한국에 살아있다면,  조금이라도 양식을 가진 평론가는 약육강식의 아비규환으로 가득한 추악한 세태를 가면과 해골들로 적나라하면서도 정확하게 그려낸 그를 極사실주의(hyperrealism) 화가로 분류하지 않을까 하는 그로테스크한 생각이 언뜻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나 혼자 진리를 주장해봐야 어쩔 수 없다는 ‘냉소적 이성’은 결코 논증만으로 무너지지 않으며, 냉소의 시대에 우리는 장바닥으로 내려와 충격을 통해 차가운 냉소로 얼어붙은 사유와 습속에 균열을 내고, 무례함과 뻔뻔함을 가지고 냉소를 냉소해야 한다” 는 진중권의 일갈에 따르면, 그의  괴상하고 무례한 그림들이야말로 진실과 정의를 자기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이 시대의 잘나신 '나리들'에게 우리가 던질 있는 가장 강력하고 적실한 메시지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리뷰에 첨부한 앙소르의 그림 "현명한 법관 나리들" 을 상식을 가진 인간이 감당하기 벅찬 창의적인 판결을 내리느라 불철주야 노고가 많은 이나라의 대법관 및 헌법재판관 나리들께 헌정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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