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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과학

송기원의 포스트게놈 시대 (송기원 지음, 사이언스 북스 펴냄)

by 서음인 2019. 6. 22.

송기원의 포스트게놈 시대는 연세 대학교 생명 시스템 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가 최근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합성 생물학이나 유전자 가위와 같은 생명 과학의 최첨단 분야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소개한 교양 과학서다. 저자는 2003년 인간 유전체 30DNA 염기쌍의 서열을 밝혀 낸 인간 유전체 계획(Human Genome Project, HGP)이 완료된 후로 인간의 의도에 따라 생명을 디자인하고 만들어내는 인간에 의한 지적 설계의 세상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과학기술이 합성 생물학’(synthetic biology)유전자 가위기술, 그리고 세포치료라고 말한다. 그리고 20178월에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배아에서 유전체를 성공적으로 교정함으로서 인간 배아에 수정을 가하는 것이 옳다 그르다 하는 논의 자체가 의미를 잃었고, 선진국을 쫓아가던 과거와 달리 생명과학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경우도 많은 우리는 이제 윤리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나름의 답을 앞서서 제시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고 강조한다. 흥미진진한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짧은 단상을 덧붙인다.

 

합성 생물학

 

합성 생물학은 자연 세계에 이미 존재하는 생물 시스템을 재설계해 새로이 제작하거나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 생명체의 구성 요소와 시스템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으로 정의할 수 있다. 실용 목적의 합성 생물학은 생명체를 DNA라는 소프트웨어가 담긴 유전자 회로로 구성된 하나의 기계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며, 그 목표는 원하는 물질을 생산하기 위해 유전자 정보를 조합해 생명체 내에서 작동하는 모듈을 설계하고 이것을 다시 시스템적으로 통합해 가장 효율적인 생산 설비인 생명체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용적 목적을 넘어 과학자들은 합성 생물학을 이용해 지구의 역사에서 어떻게 물질에서 생명으로 급격한 변화가 가능했는지의 과정을 이해해 생명의 본질을 밝히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20세기 후반 DNA의 정해진 특정 염기 서열을 인식해 자를 수 있는 유전자 가위가 발견되고 변형된 세균의 DNA 조각이나 바이러스가 임의의 유전자를 유전체 내로 전달하는 벡터로 개발되면서, 다른 종의 유전자를 넣어 유전 정보를 변형한 생명체인 트랜스제닉(transgenic)을 만들어내는 유전자 재조합 혹은 유전 공학(genetic engineering)이라는 새로운 과학 기술이 탄생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GMOLMO(living modified organism)가 트랜스제닉이다. 이러한 유전공학은 변형된 생명체에서 인슐린 단백질이나 말라리아 치료제 같이 인간이 원하는 물질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인류가 처한 식량, 환경, 의료 등 여러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기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의 이면에는 합성 생물학을 새로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첨단 테크놀로지 정도로 인식하면서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생명의 가치관에 대한 문제나, 안정성, 보안 문제, 규제 등에 대한 논의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태가 발생할 위험성이 상존한다. 특별히 기술적 진입장벽이 낮고 규제가 어려운 합성 생물학의 특성상 블랙 바이오해커에 의해 기존의 바이러스가 치명적인 형태로 변형되어 바이오 테러를 위한 생물 무기 생산에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

 

유전자 가위

 

2013년부터 유전체 내의 특정 유전자 염기서열을 손쉽게 인식해 자르는 유전자 가위인 CRISPR와 이를 이용해 유전체 DNA 정보를 인간의 의도에 따라 자르고 붙이고 고치는 유전체 편집 기술이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 기술은 자신의 몸에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21 염기쌍 길이로 절단해 그 정보를 자신의 유전체 내에 저장했다가 다음에 같은 유전 정보를 갖는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저장된 정보로부터 침입한 DNA 염기 서열을 인식해 잘라 무력화하는 CRISPR라는 유전자를 포함한 세균의 면역 반응 시스템(CRISPR-Cas9 유전자 가위)에서 유래했다. 이 가위는 임의의 21 염기쌍 서열을 CRISPR 유전자 사이에 삽입해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며, 인간 세포 같은 진핵 세포에서 원하는 표적 유전자를 잘라 내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

 

제한 효소나, 징크 핑거 가위, 탈렌 같은 기존의 유전자 가위들은 적게는 4개에서 많게는 12개까지의 염기 서열만을 인식할 수 있었고, 따라서 인간 유전체에 적용했을 경우 유전자 가위가 인식하는 염기 서열이 유전체의 다른 부분에도 존재할 확률이 높아 유사한 염기 서열이나 원하지 않는 부분을 자를 수 있는 오류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21개의 염기 서열을 인식하는 CRISPR가 인간 유전체에서 의도치 않은 다른 부분을 절단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이로서 인류는 모든 세균뿐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진핵생물의 유전체까지 원하는 부분을 마음대로 잘라 내고 다른 유전자로 교체하거나 새로운 유전자를 삽입할 수 있는 정교한 도구를 손에 넣게 되었다.

 

CRISPR 가위 기술의 가장 큰 기여는 생명 과학 연구에 아주 유용한 도구와 방법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인간 유전체의 기능을 확인하거나, 유전자에 의해 발현되는 단백질의 위치를 추적하고 발현 정도를 확인할 수 있으며, 거의 모든 생물에서 유전체 변형이 가능해져 모형 생명체로 쉽게 이용할 있다. 일부 학자와 언론은 21세기의 밥상이 유전자 가위로 만들어진 식재료로 뒤덮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으며, 이종간 장기 이식의 위험인자인 돼지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나 인간 면역 유발 유전자를 제거하려는 인간 장기 생산용 돼지연구에서도 사용이 시도되고 있다.

 

현재 CRISPR 기술을 이용해 시도되고 있는 유전자 치료는 모두 성체를 대상으로 하는 세포 치료로 문제의 원인이 되는 세포나 치료하는 기능의 세포를 인체 밖으로 꺼내어 CRISPR 가위로 유전체 정보를 바꾼 후 다시 인체 안으로 넣어 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개체가 가진 변이 유전자 정보를 근원적으로 교정할 수 없고 세포가 지속되는 동안에만 한시적으로 효과가 나타난다는 문제가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유전체 정보를 바꾸는 유전자 치료는 수정란이나 초기 배아 세포에 적용해야 영구적이고 효과적인 치료가 될 수 있다2017년에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배아에서 유전체를 성공적으로 교정함으로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고인류는 자체의 유전체를 임의로 교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체의 수정란이나 초기 배아에 이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윤리적 문제를 피해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원하는 대로 유전자가 교정되거나 편집되는 효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고 임의의 유전자에 원하지 않는 변이가 생길 가능성인 표적 이탈 효과가 매우 높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인간 유전체에서 1퍼센트에 불과한 유전자를 조절하기 위한 스위치가 전체 유전체 정보의 80%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발생 단계와 발현되는 장기나 세포의 종류에 따라 한 개의 유전자가 여러 기능을 수행하는 다면 발현현상을 보인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유전자의 정보를 기초로 특정 유전자를 조작해 실용성을 높은 개체를 만드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세포치료

 

세포 치료는 살아 있는 정상 세포를 직접 환자에게 주입해 이상 세포를 대치해 병을 치료하려는 모든 시도를 의미하며, 크게 줄기 세포를 이용하는 경우와 체세포를 이용하는 경우로 나뉠 수 있다. 이중 줄기 세포를 이용하는 경우는 배아 줄기 세포를 이용하는 경우와 성체 줄기 세포를 이용하는 경우로 나뉘며, 체세포를 이용하는 경우는 주로 혈액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면역 세포를 이용하는 치료법인 면역 세포 치료가 많이 시도되고 있다. 이 치료법의 문제는 세포의 기능을 유지한 채로 몸에서 분리해 내는 것이 어렵고, 분리해 낸다 하더라도 수가 매우 적으며, 인체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기대한 기능만을 수행하도록 제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치료 과정에서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될 가능성도 높다.

 

면역 세포 치료제는 우리 몸에 존재하는 분화된 세포인 면역 세포들을 질병 치료제로 개발한 것으로 대부분 자가세포 치료제이다. 면역 세포 치료제는 주로 항암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으며, 환자에게서 분리한 백혈구나 T 세포, NK 세포와 같은 면역세포들을 암세포를 잘 공격하도록 변형시키거나 활성화해서 환자에게 다시 주입, 암세포에 대한 면역 기능을 활성화함으로서 치료 효과를 얻는 방식이다. 항암 치료제로서 면역 세포 치료제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기존의 방사선 치료나 화학요법 항암제 사용시 나타나는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치료들은 개인 맞춤형 치료라는 장점을 가지지만 고비용과 과다한 면역 반응이 유발될 수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줄기세포 치료는 세포가 기능을 못하거나 사멸해 발생하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줄기 세포를 체내에 주입해 기능을 잃은 세포를 대체하도록 하는 치료로, 최근에는 주로 성체 줄기세포를 사용하는 방식이 개발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역분화 줄기 세포인 유도 만능 줄기세포(iPSC)를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그러나 분화된 세포에서 유도만능 줄기 세포가 만들어지는 효율이 낮고, 유도된 줄기 세포를 특정 세포로만 분화하도록 유도하는 효율 역시 매우 낮으며, 줄기 세포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기존의 약을 이용해 치료하는 시대는 가고 세포를 이용한 개인 맞춤형 치료가 대세를 이루는 시대로 가고 있음을 자명하게 보여준다.


개인적 단상

 

이 책은 2003년 30억 쌍에 이르는 인간 유전체의 염기 서열을 해독한 이후로 인류가 직접 생명을 디자인하고 만들어내는 혁명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그리고 2017년 인간 배아에서 유전자 교정을 성공적으로 시행함으로서 인간이 인간 스스로의 유전체를 조작하는 '되돌릴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는 사실도 알려 준다. 그러나 이 책은 이 길이 수많은 법적, 기술적, 윤리적, 종교적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는 험난한 여정이 될 것임을 예고하기도 한다. ‘유전자 가위합성 생물학이 만들어낼 세상은 과연 어떤 곳이 될까? 밧모섬의 사도 요한이 환상 가운데 목도했던 눈물과 고통과 질병이 없는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창조한 인간에게 무서운 복수를 감행하는 수많은 프랑켄슈타인들로 가득한 지옥도가 펼쳐지게 될 것인가? 이 책을 덮으니 상상조차 불가능한 미래가 두려워진다.




  

목차


프롤로그 인간, 드디어 조물주의 자리로?

 

1부 생명을 디자인하다


1장 합성 생물학의 시작: 이것은 인간이 직접 만든생명체입니다

2장 합성 생물학의 출현: 기계도 만드는데, 생명은 왜 못 만드나?

3장 생명체의 기계화: 생명 블록 쌓기

 

221세기 혼종 매머드가 온다


4장 생명체 변형의 역사: ‘유전자 조작연어는 어떻게 탄생했나?

5장 합성 생물학의 성과: 이 청바지는 옥수수로 만들었습니다

6장 멸종 유전체와 동물 복원: 16년 전에 죽었던 생쥐가 살아났습니다!

 

3부 합성 생물학의 두 얼굴


7장 합성 생물학의 대중화: PC 조립하니? 난 생명체 만든다!

8장 합성 생물학의 위험성: ‘좀비 바이러스가 유출된다면?

9장 합성 생물학과 생명 윤리: 신이 아니라 내가 생명의 창조자!

10장 유전체 계획 쓰기, 한 걸음 더 가까이: 진핵 세포 모델 유전체 디자인과 합성 성공

 

4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발견하다


11장 유전자 가위 기술의 의미: 혁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유전자 가위 ‘CRISPR’

12장 유전자 가위 기술의 역사: 왜 유전자 가위가 필요한가?

13장 유전자 가위 기술의 적용: 유전자 가위, GMO인 듯 GMO 아닌 GMO?

 

5부 크리스퍼 테크놀로지가 바꾼 세계


14장 유전자 가위 기술과 유전자 드라이브: 말라리아모기 줄이는 획기적 방법, 아시나요?

15장 유전자 가위 기술의 활용: 유전자 가위, 에이즈 완치 길 열었다

16장 유전자 가위 기술와 유전자 치료: ‘부모 유전자 탓운명에 맞서다

 

6부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


17장 인간 배아 유전체 편집의 이해: 유전자 가위, 사람에게 쓴다면?

18장 인간 배아 유전체 편집이 불러온 논쟁: 중국의 유전자 가위 연구, 충격과 한계

19장 인간 배아 유전체 편집의 한계: 유전병 없는 아기 얻으려 유전자 교정? 위험한 시도!

20장 인간 배아 유전체 편집의 현황: ‘맞춤 아기가능성, 윤리 논란 부른다

 

7부 만능 가위의 불편한 진실


21장 유전자 가위 기술의 수수께끼: CRISPR는 정말 만능 유전자 가위인가?

22장 다양한 유전자 가위 기술: 더 정확한, 더 뛰어난, 더 훌륭한 가위를 찾아서

23장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한 성찰: ‘DNA 혁명크리스퍼, 우린 얼마나 알고 있나?

 

8부 난치병 치료의 구원 투수?


24장 세포 치료제 시대: 개인 맞춤형 치료의 시대 열리다

25장 면역 세포 치료제: 우리 몸의 세포로 만드는 미래의 항암 치료제

26장 줄기 세포 치료제: 체세포의 운명을 되돌리다, 만능 치료제의 미래

 

에필로그

 

더 읽을거리

용어 해설

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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