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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문학

발터 벤야민의 수수께끼 라디오 (발터 벤야민 지음, 마르타 몬테이로 그림, 박나경 옮김, 봄볕 펴냄)

by 서음인 2019. 9. 28.

발터 벤야민의 수수께끼 라디오는 독일의 문예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발턴 벤야민이 1932년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방송 대본으로 썼던 글을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벤야민 책 몇 권을 인터넷으로 구입하면서 함께 산 책이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초등학생 상대의 그림책이어서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농부는 자주 볼 수 있고, 왕은 가끔 볼 수 있지만, 신은 결코 볼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수수께끼 때문에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주인공 하인즈는 친구인 안톤에게서 자신의 모자를 놓고 갔으니 찾아 달라는 부탁과 이미 모자를 찾았으니 신경쓰지 말라는 자답이 함께 담긴 이상한 편지를 받는다. 이 편지를 받은 주인공은 안톤이 수수께끼 풀기의 귀재임을 떠올리고 해답을 얻기 위해 그를 찾아 나서지만, 계속 만남에 실패한 채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는 사건들과  다양한 논리적 오류들을 만나가며 새로운 질문들만 덤으로 얻게 된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집에서 안톤을 만나지만 그가 돌아간 후에야 수수께끼의 답을 물어보는 것을 깜빡 잊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안톤 역시 이번에는 진짜로 자신의 모자를 주인공의 집에 놓고 가버린다.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기 위해 친구를 찾아 나선 주인공이 현실 속에서 더 많은 논리적 오류와 수수께끼에 부딪히며, 우여곡절 끝에 친구를 만났지만 결국 답을 얻는 일에 실패하고 만다는 이 책의 구성은 경쾌한 내용과 어린이책이라는 형식으로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심히 벤야민스럽다’. 또한 주인공이 끝끝내 풀지 못했던 이 책의  주된 수수께끼인 농부는 자주 볼 수 있고, 왕은 가끔 볼 수 있지만, 신은 결코 볼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의 답이 평등’ 이라는 것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왕'이나 '신'이야말로 평등의 주된 방해물이라는 뜻일까마르타 몬테이로의 독특하고 심지어 혼란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그림은 한 화면 안에 긴 시간의 흐름을 분할해 담거나 여러 시점을 한 시점으로 포착해 담아내는 기법을 통해 인과관계 없이 느슨하게 배열된 일련의 사건들을 이어붙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벤야민의 몽타주식 글쓰기를 효과적으로 구현해 전달하고 있다. 

주로 어린이들일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주로 저자가 심어 놓은 '오류'와 '수수께끼'를 해결한다는 '과제'를 중심으로 읽게 되겠지만, 아무리 그림책이라도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벤야민"의 텍스트라는 관점에서 좀 더 심층적으로 접근하고 싶어할 분도 계실 것 같다. 나 역시 진지한(척 하는) 독자답게 이 그림책에서도 '벤야민' 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심오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위에 끄적거린 몇 가지 단상 외에는 그 일이 내 능력 밖이라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인터넷을 뒤져 보았지만  후자의 관점에서 이 책을 깊이 읽은 독자를 아직 찾지도 못했다. 언젠가 이 그림책에서 더 '심오한' 무엇을 '보게' 될 날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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