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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읽기쓰기

대한민국 독서사 (천정환 · 정종현 지음, 서해문집 펴냄)

by 서음인 2019. 12. 14.

대한민국 독서사는 대학의 국문과에 재직하면서 한국 현대 문학사와 문화사를 연구하는 두 명의 연구자들이 광복 후 70년 동안 우리가 어떤 책들을 사랑해 왔고 우리의 책 읽기 문화는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시대별로 살피고 있는 책이다. 저자들은 저자에서 시작해 독자까지 연결되는 커뮤니케이션 회로의 각 단계와 전 과정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어떻게 변천 발전했는지를 이해하려는 것책의 역사라면, “커뮤니케이션 회로의 마지막 단계이자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 실현되는 단계인 읽는 행위”, 즉 과거의 독서 양상과 관행을 정확하고 꼼꼼하게 밝히는 것이 독서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리고 책의 선택과 구입, 독서 과정과 독서 후 인식과 행동의 변화에 이르는 모든 일은 개인이 속한 당대의 문화적 정황에 의해 주어지는 집합적 행위의 일부인 독서문화이며, 이러한 독서문화의 거시적 미시적 변화인 독서문화사는 해방 후 한국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어 왔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러한 해방 이후 한국 독서문화의 변천 과정을 교양 수준에서 개괄한다. 

 

저자들은 한국에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거대한 인간 개발과 지식 발달사의 동력이었으며, 독서와 한국 현대사를 함께 보는 것은 곧 경제발전과 민주주의가 지식문화와 맺는 관계를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한국의 독서문화는 관변 독서운동이나 검열과 같은 국가의 정책이나 해방을 꿈꾸었던 사람들의 자발적 저항적 책읽기와 같은 정치에 직접 영향을 받았으며, 해방 70년의 독서문화는 일상의 정치요 문화정치로 이 땅의 민주주의와 깊고도 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회현상으로서의 독서는 대중사회의 성장과 대중성 변화의 지표이며, 그 대표적인 물적 증거인 베스트셀러는 작가와 출판사가 함께 설치한 텍스트 안과 밖의 이런저런 상술을 포함한 쓸림 현상과 출판자본주의의 상태를 반영해 왔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최근들어 심화되는 한국 독서문화 퇴행의 원인이 무엇인지, 스마트폰 시대에 책과 독서의 미래는 어떠할지 성찰하는 것으로 이 책을 마치고 있다. 


책이나 책읽기를 사랑하시는 분들, 특히 이 책이 다루는 시대를 살아왔거나 소개된 책들과 이러저러한 관계를 맺어온 분들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될 흥미진진한 책이다. 내용을 요약하는 것으로 책읽기를 마치도록 한다 . 



요 약

 


책의 해방과 분단 1945-1950   해방된 조선인이 독립된 민족으로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적인 갱생의 제의를 거쳐야 했으며, 이는 최남선의 <조선역사>와 같은 한국사 관련 교재와 최현배의 <우리말본> 같은 한글 관련서의 폭발적인 판매로 나타났다. 또한 아직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낼 조건이 미비한 상황에서 과거 지배자의 지식 위에 민족의 언어를 덧씌우는 표절 행위가 횡행했으며, 제국의 지방학으로 수행되었던 조선학은 새로운 국민국가의 동질적 자아를 형성하는 한국학으로 변모했다. 해방직후는 무엇보다 좌익 계열의 정치사상 팸플릿의 시대였으며, 황민화 교육만을 받았던 청년 세대들은 이를 통해 사상 청년으로 변해 갔다. 그러나 미군정이 지배한 남한에서 좌우익 갈등이 심해지면서 사상적 경직이 심화되었으며, 좌익 서적은 금지되어 남한의 공식 출판계에서 점차 사라지게 된다


한국전쟁기 책과 지식 풍경   한국전쟁은 지식과 사상의 다채로움과 중간지대를 제거했고, 전쟁으로 빈민화된 대다수의 민중들의 신분상승 욕망은 전시 대학으로 대표되는 교육열로 나타났다. 당대 지식인들의 독서 양상은 이광수와 김내성의 작품을 포함하는 한국어로 된 대중문학 읽기, 일본어로 된 교양 읽기, 영어를 통한 서구 교양 읽기가 혼재된 양상을 보여 준다. 피난지 대구 부산에서는 <희망>, <학원>, <사상계>, <여성계>, <신태양> 등 한국 문화사에서 잊을 수 없는 잡지들이 창간되었으며, 이 중 <사상계>는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론의 설파를 통해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지성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된다. 전쟁의 와중에 도강에 실패한 잔류파들은 수기를 통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도강파에 대한 울분과 항변을 표현하려 했으며, 최재서와 같이 대표적 친일문학가들은 한국전쟁을 통해 친일이라는 과거를 지우고 미국/서구라는 새로운 진영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자유 부패 부활 : 1950년대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텍스트 자체와 무관하게 사회적 이슈화를 통해 유명해진 진정한 의미의 현대적인 베스트셀러로, 말하고자 한 것과 보여준 것이 서로 모순되는 대중서사의 전형적인 효과를 보여 준다. 해방을 기점으로 일본어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한글세대가 등장하고 여성 독자가 성장하면서 <여원> <주부생활>같은 잡지의 창간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새로운 독서문화가 발생했지만, 일본 책 · 일본어 교양 · 일제강점기 저자 등 식민지 시대부터 연속된 독서문화의 영향도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한국 출판문화는 1950년대 중반부터 <우리말 큰사전> 같이 대규모 집필 편집진이 필요한 책들이 발간되고, 정음사 · 동아출판사 · 을유문화사 등에 의해 대규모 세계/한국문학 전집이 발간되는 등 점차 발전과 회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외판 · 할부판매라는 마케팅 방식이 정착했다.


4.19 혁명과 책    4.19를 만든 책이라고 할 수 있는 <사상계>는 식민지 시대의 <개벽>과 이후의 <창작과 비평>으로 이어지는 지식인 잡지 계보의 중추로, 고등학생부터 대학교수에 이르는 광범한 독자층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기독교 민족주의’, ‘서구 지향적 자유주의’, ‘반공주의라는 기조를 유지했다. 또한 4.19의 상징이 된 최인훈의 <광장>이 보여주는 탈냉전적 서사는 구정권이나 이후의 박정희 시대에는 용납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한편 4.19 혁명 당시 에 대한 요구로 궐기했던 거리의 군중은 부랑아라는 명명과 더불어 대학생-지식인이 중심이 된 자유민주주의혁명의 서사에서 축출되었으나, 5.16을 기획한 정치군인들은 빵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민감하게 포착해 <사상계>의 근대화론과 결합해 정치적 수사로 전유함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다


개발독재와 민족주의 시대의 책과 독서 : 1960년대     박정희를 만든 책은 <나폴레옹 전기>와 같은 남성 영웅서사였으며, 박정희식 개발주의의 이론적 배경은 월트 로스토의 <반공산당 선언 - 경제발전의 제 단계>였다. 또한 심훈의 <상록수>는 국가주의적 개발의 교본이자, 선각자에 의한 민간 농촌운동의 독본이라는 양가적인 기능을 했다. 굴욕적인 한일 국교 정상화를 전후하여 유주현의 <조선총독부>로 대표되는 반일 역사소설 붐과, 가와바타 야스나라의 <설국>이나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을 포함한 일본소설 붐이 동시에 일어났다. 1960년대의 대표적 베스트셀러인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풍토론을 통해 한국문화의 본질을 밝히려는 민족본질론적 사고를 보여 주었으나, 김용섭은 <조선 후기 농업사 연구>를 통해 내재적 발전론과 자생적 근대화론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한 <주간한국>의 성공을 기점으로 주간지들이 잇달아 창간되었으며, 이 중 <선데이서울>에 대한 욕망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시대의 자화상 역할을 했다. 또한 1966년에 창간된 <창작과비평>은 염무웅 신경림 박현채 등의 참여로 권력과 자본에 대항하는 민중적 민족적 색깔을 갖추면서, <사상계>를 대신해 점차 한국의 지성계를 대표하는 잡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먼 곳에의 그리움과 모방 욕망 : 1960년대 ②     1960년대 중반부터 한 일 국교 정상화/베트남전 파병에 결부된 경제개발 효과와 인구팽창 및 독자층의 성장이 함께 이루어지면서 한국 출판자본주의의 호시절이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냉전 시대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 나라의 하나였기에 이국에 대한 낭만적 문화적 동경은 더 컸고, 이러한 먼 곳에의 그리움및 그와 관련된 개인주의 및 여성주의적 해방의 표상이 바로 요절한 전설의 천재 작가 전혜린이었다. 그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와 같은 전설적인 에세이 뿐 아니라, 서구적 교양과 실존 정신의 정화로 광범위한 독서 계층에 수용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같은 유럽 문학 작품의 번역 · 소개자로서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또한 미국 작품으로는 펄 벅의 <대지>와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군>등의 소설과 이언 플레밍의 대중소설 ‘007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


최인호 · 황석영과 전태일 · 난쏘공 : 1970년대    1970년대의 독서시장도 인구 증가와 경제성장의 영향으로 빠르게 성장했고, <샘터>와 <뿌리깊은 나무> 같은 잡지나 삼중당문고에서 알 수 있듯 더 대중화되고 세련되어갔다. 또한 이 시기는 곳곳에 마을문고직장문고가 설치되고 국민독서경진대회자유교양대회가 열리는 등 관변독서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이는 권력의 의도와는 달리 진정한 자유교양과 비판적 독서문화를 배양하는 역할을 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에릭 시걸의 <러브스토리>,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생택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번역되어 인기를 얻었으며, 고교 재학 중에 문단에 나와 통블생으로 대표되는 당대 청년문화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자유부인>이후 최대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당대의 청년들은 현실에 대한 저항으로 정통소설이나 <희망의 철학> <풍요한 사회>같은 사회과학 서적을 읽음과 동시에 위안을 얻기 위해 <어린 왕자>같은 성인용 동화도 읽었으며, 점차 낭만적이고 도회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별들의 고향>형과 저항적이고 민중적인 경향을 상징하는 <객지>형으로 분화되어갔다.   


산업화 시대와 저항의 독서 : 1970년대     당시 저소득 노동자들의 독서율은 상당히 높았으며, 이는 독서가 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절박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책 읽기를 통해 자기 삶과 상관없는 교양을 추구하던 노동자들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어느 돌멩이의 외침>, <전태일 평전>같은 책들을 접하면서 공순이/공돌이에서 노동자라는 주체로의 도약을 경험했다. 급속한 산업화와 그에 따른 모순을 전면화한 조세희의 연작소설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한국 독서계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로 등극했으며 당대의 대학생들에게 가난한 민중의 현실을 알려주는 의식화교재의 역할을 담당했다. 리영희는 <우상과 이성>이나 <전환시대의 논리>같은 책들을 통해 당대인들을 지배하던 광적인 반공주의와 극우적 세계관의 허구를 적나라하게 폭로함으로서 젊은이들에게는 사상의 은사로 유신 정권에게는 의식화의 원흉으로 여겨졌다. 1970년대 동아투위 사태로 해고된 기자들 중 일부는 한길사, 예조각, 까치, 청람, 두레 같은 출판사를 차림으로서 1980년대 사회과학 서적 붐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출판은 운동, 독서는 저항 : 1980년대      1980년대의 지성사와 독서사는 극심한 억압과 치열한 저항이 부딪히며 전개되었으며, ‘운동으로서의 출판’, ‘저항으로서의 독서가 꽃핀 한 시절이 펼쳐지면서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1970년대 말부터 홍성사의 홍성신서와 한길사의 오늘의 사상신서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 중 1980년대의 대표적인 책으로 인정받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자발적 의식화의 교재로 쓰인 책들은 시대별 수준별로 달랐다. 문학작품은 주로 초심자용으로 박노해, 김남주, 황지우, 신동엽의 시집과 <난쏘공>, <태백산맥>, <무기의 그늘>, <어머니>, <아리랑>등이 필독서 목록에 올랐으며, <철학에세이>, <전태일 평전>, <페다고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같은 책들도 꾸준히 읽혔다<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거꾸로 읽는 세계사>같이 상당히 대중적인 신입생용의식화 교재들은 198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등장했다


수준별로는 먼저 변증법적 유물론이나 사적 유물론 서적을 학습하고 난 후 좀 더 본격적인 정치경제학 책이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을 읽고, <공산당 선언>을 포함한 마르크스 레닌의 원전으로 나아갔다. 6월 항쟁 이후 검열체제가 느슨해진 후로는 마르크스 레닌 저작선이나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역본 등이 쏟아져 나왔으며, 1980년대 말에는 <노동해방문학>같은 전위조직의 기관지들도 대학가 서점에 모습을 드러냈다. NL 그룹은 <강철서신>을 거쳐 항일무장투쟁사와 주체사상에 관한 책을 읽었으며, 1980년대 말에는 <김일선 선집>이나 <조선전사>같은 북한 책들도 대거 간행되었다. 이런 자발적, 공동체적 책 읽기에 참여했던 인원의 규모와 질은 어느 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었으니 가히 책과 혁명의 시대라고 할 만 했다


의협의 시대 : 1980년대      1980년대의 많은 청소년들이 만화와 무협지, 하이틴 로맨스와 추리소설을 탐독하며 연애와 에로스를 배웠고 선/악을 분별하는 감성체계를 형성했다. 어떤 이들은 <베르사이유의 장미><올훼스의 창>을 통해 프랑스와 러시아 혁명사를 습득했고, 이현세의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남벌>, 허영만의 <! 한강>과 같은 만화책이 대중에게 아로새긴 근현대의 역사상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영향에 못지않았다. 또한 오혜성, 이강토, 최강타 등이 보여주었던 생의 투쟁과 활기는 현실 세계 청년들의 가열찬 삶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1980년대는 무엇보다도 무협의 시대였다. 약자를 위한 정의에 목숨까지 내건다는 협()의 정신은 운동세대들의 정신구조와도 닮아 있었으며, 유하의 <무림일기>나 김영하의 <무협학생운동>은 이러한 1980년대의 시대 상황을 무협으로 재현한 흥미로운 작품들이다. 또한 한국 출판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였던 김홍신의 <인간시장> 역시 무협지적 시대상과 감수성의 기반 위에 만들어진 속류화된 협의 서사였으며, 800만부 이상 팔려나간 대만 작가 김용의 <영웅문>도 무협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무협소설과 만화를 포함한 장르문학은 진지한 관심을 받아야 할 하나의 당당한 문화다.  


중간층 대중독자의 독서 : 1980년대      1980년대의 급진적 변혁운동이 꿈꾼 전망의 최종심급에는 교조화된 사회주의 이념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그 저류에는 억압된 개인성에 대한 희구가 공존했으며, 강석경의 <숲속의 방>은 이러한 1980년대 집단주의와 개성의 충돌을 잘 보여준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이문열의 주인공들은 시대와의 불화를 겪으면서도 속물적인 주류적 가치와 운동 이념의 집단적 도그마 양쪽과 모두 불화하는 아웃사이더들이었다. 1980년대의 독자들은 그의 소설이 풍기는 냉소와 자기비하라는 변형된 나르시시즘적 현학의 정조에 열렬히 반응했으며, 그의 주인공들은 일상을 긍정하는 중산층 독자들에게 탈정치의 알리바이와 감상적 위안을 제공했다. 당대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킨 서정윤의 <홀로서기>와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은 평단에서 철저하게 무시되었으나, 동아기획의 언더그라운드음악들과 함께 1980년대 공동체주의의 열기를 보완하고 있던 개인적 서정의 영역을 환기시켰다.


문화의 지각변동,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 1990년대 ①    1990년대는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새로운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등장, 그리고 세계화 자유화의 영향이 남한 땅을 강타하면서 독서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독서시장은 1990년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확장되었으며 출판 자본의 장악력이 커지면서 집적 집중화가 가속되었다. 대형서점이 등장하고 광고와 마케팅에 힘입은 베스트셀러나 밀리언셀러가 자주 나타났으며, 80년대의 사회과학 출판사들은 망하거나 창비처럼 운동의 구심에서 자본으로 변신했다. 거센 세계화와 정보화의 파도가 말려왔다. 전자출판과 ISBN이 도입되고, PC 공간이 베스트셀러를 산출하는 새로운 매체가 되었으며, 컴퓨터 서적이 많이 읽혔다. 운동으로서의 출판저항의 독서문화가 서서히 사멸해갔으며, 대학 문화는 독자성을 잃고 상업적 대중문화에 종속되기 시작했다. 신경숙과 공지영을 비롯한 여성 작가와 여성 독자, 그리고 비평가들이 대거 등장해서 문학장과 담론장을 바꿔 놓았다. 신경숙은 대다수 남자-중년 비평가들의 압도적인 지지 하에 ‘1980년대와 대비되는 ‘1990년대를 주장할 중요한 근거로 여겨졌으며, 공지영 역시 1980년대 민중문학의 추방과 1990년대 여성문학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한편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으니 여전한 관변 · 민간의 독서운동과 출판에 대한 공안권력의 간섭과 탄압이었다.  


세상의 중심은 ’ : 1990년대      1990년대에는 의 체험을 강조하고 자유와 욕망의 해방을 열망하는 책들이 등장했다. 김우중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은 청년들의 성공 욕망을 자극했으며,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같은 자기계발서 및 <소설 동의보감>이나 이명박의 <신화는 없다>와 같이 성공욕구를 지닌 개인의 자수성가 이야기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러나 이 시기는 윤대녕의 <은어낚시 통신>처럼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시원으로의 회귀를 희구하거나 공지영의 <고등어>처럼 이념이 사라진 시대에 좌절하고 절망하는 청춘의 모습을 그린 문학작품들도 쏟아져 나왔으며, 이러한 상실과 절망의 정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파크리크 쥐스퀸트의 <좀머 씨 이야기>같은 작품들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았다. 또한 이 시기의 독자들은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이현세의 만화 <남벌>과 같이 반일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작품들에 열광하면서, 동시에 <에반게리온>, <공각기동대>같은 재패니메이션과 <꽃보다 남자>, <슬램덩크> 같은 일본 망가에 심취하는 분열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저자인 유홍준의 심미안과 유려한 문체, 그리고 때맞춰 도래한 마이카 시대의 개막과 함께 1990년대를 통틀어 가장 성공한 책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새로운 진보 담론과 세기말 서점가 : 1990년대    인터넷 서점은 때맞춰 닥친 IMF 경제위기와 함께 도서 구매와 유통의 구조를 순식간에 바꿔 놓았으며, 이로 인해 수백 개의 오프라인 서점이 문을 닫았다. 이 시기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데는 1990년대 중후반의 해외여행과 유학의 대중화에 따른 이국 취향의 확산과 프랑스의 똘레랑스와 대조되는 한국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 현실자본주의의 몰락 후 소련과 동구의 공식 이데올로기를 대신해 떠오른 서구 마르크스주의구조주의’, ‘포스트주의의 득세로 인한 진보 담론의 연성화와 관계가 있다. 새로운 진보 담론을 이끈 저자들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하버마스, 프랑스의 푸코 · 라캉 · 알튀세르 · 들뢰즈, 이탈리아의 그람시 · 네그리, 영국의 페리 앤더슨 · 레이먼드 윌리엄스 등으로 다양했다. 이 시대의 청년 학생들은 홍세화 · 진중권 · 박노자 · 강준만 등의 책을 통해 진보의 논리와 입장을 접했으며, 인문 사회과학적 교양과 책 읽기는 여성주의와 생태주의를 주 내용으로 하는 신사회운동’, 대중문화와 일상에서의 문화정치에 주목하는 문화주의, 그리고 언론개혁운동과 연관된 맥락에서 재구성되었다.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이 등장한 이후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포함하는 경제 · 경영서, 자기계발서, 재테크 책은 그 위력과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으며,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속한 국가에서 공통적인 새로운 독서문화를 창출했다.     


위기 · 불안 시대의 책읽기 : 2000년대      IMF 위기는 사람들에게 실업과 극빈이라는 전락의 공포를 안겨 주었으며, 이에 따라 2000년대 벽두부터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아침형 인간>, <마시멜로 이야기>, <긍정의 힘>, <시크릿>과 같이 성공을 비밀을 알려준다는 자기계발서들이 속속 베스트셀러로 등장했다. 또한 성공을 위한 확실한 사다리 중 하나인 영어 능력의 향상을 위한 토익계의 4대 천왕을 포함한 영어 학습서들이 밀리언셀러로 등극했으며, 이는 자아의 기업가화라는 지기지배의 테크놀로지의 전면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석훈과 박권일은 <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에서 청년 세대에게 토플 책을 덮고 연대해 투쟁하라고 권고했으며, 김난도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청년들의 멘토를 자처하면서 달콤한 화법으로 마시멜로적인 성공론을 포장해 전달했다. 또한 IMF 위기로 인한 가족해체의 위기에 직면한 대중은 조창인의 <가시고기>나 김하인의 <국화꽃 향>처럼 부모의 지고지순한 가족애를 그린 소설을 열독했다. 

 

사라져가는 것들과 이어가야 할 것들 : 2000년대     한국은 해방 이후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뤄 왔지만 독서라는 의식적인 활동에 필요한 지적 훈련이나 이를 위해 쓸 시간적 공간적 경제적 여유는 늘 부족했다. 따라서 사람들이 책을 읽을 시간이 진짜 없을 뿐 아니라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잘 모르며, 그 결과 OECD 국가 중 실질문맹률이 가장 높은 나라의 하나가 됐다. 이제껏 인간이 발전시켜 온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손바닥 안에 집약시켜 놓은 스마트폰은 전자책과 PDF 파일과 더불어 점차 전통적인 종이책과 인쇄매체를 대신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접해 온 세대인 디지털 네이티브가 종이책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따라 책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2016-2017년에 걸친 촛불항쟁은 한국 사회의 지적 · 민주적 저력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으나, 책 읽기와 토론 및 건강한 공론장이 존재해야 겨우 회복한 민주주의가 확고해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 현대 독서문화194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의 재구성기,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성장기,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의 성숙기 2000년대 이후의 전환기로 나뉘며, 거시적 인구변동과 경제성장, 근대화, 자유화 같은 요인이 앞의 두 단계를,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세계화 민주화 같은 요인이 뒤의 두 단계를 규정한다. 1990년대 후반까지를 절정으로 종이책 독자는 줄고 있으며, ‘스마트문화 때문에 독자들의 책 읽는 힘은 약해지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테크놀로지, 영상문화의 확장, ‘스마트폰 세대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한국사회 전체의 인구학적 변동 등이 책읽기 문화를 바꾸고 있는 근저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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