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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읽기쓰기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표정훈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by 서음인 2020. 5. 12.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책과 독서, 출판에 대한 글을 쓰는 탐서주의자표정훈은 내 책읽기에 꽤 큰 영향을 끼친 작가다. 그가 지은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탐서주의자의 책은 내게 오랫동안 책과 책읽기에 대한 교과서 같은 역할을 했다. 그는 작년에 펴낸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의 머리말에서 이 책이 다양한 그림 속에 그려진 책의 제목과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그림이 그려진 시기의 책과 독서, 그리고 출판문화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그림 속 책이 무엇일지 그 정체를 추측한다. 그는 자신의 추측을 그 그림에 깃들어 있을 법한 가상의 대화나 그림 속 인물들 사이의 대화, 그림 속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삶 한 자락에 대한 재구성 등 다양한 형태의 글에 담아 흥미롭게 풀어낸다.

 

책은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다. ‘독서의 위안이라는 제목을 가진 1부에서는 독서가 책벌레들에게 줄 수 있는 몇 가지 효용과 위안을 담은 그림과 글들이 실려 있다. ‘그녀만의 방이라는 제목을 가진 2부에는 읽고 쓰며 자유롭고 독립적인 주체로 서기 위해 노력했던 여성들을 그린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모여 있다. 3부인 삶과 사랑 그리고 예술에는 삶과 사랑 그리고 창작으로 인해 고통 받았던 사람들과 관련된 책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그림들이 소개된다. 4부에서는 자유의 주체자들이라는 제목 아래 인습과 신분과 종교와 텍스트로부터의 자유를 갈구했던 사람들을 담은 그림 속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 5부인 책 삶이 되다는 지배 계급의 전유물이었던 읽기와 쓰기가 만인의 것이 되고 만인을 해방하는 과정을 담은 인상적인 그림과 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미술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뽐내거나, 그림 속 책에 대한 서지학적 소개에만 관심을 두는 책이 아니다. 한때 2만 권의 장서를 소유했던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탐서주의자가 당대의 그림과 책, 역사와 문화, 독서행위와 독서 문화에 대한 방대한 지식들을 상상력과 결합해 직조해 낸, 그림과 그 안에 놓인 책에 대한 풍요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다. 다양한 형식에 담긴 그의 이야기들은 단순히 흥미진진하기만 할 뿐 아니라 충분한 역사적 개연성도 갖추고 있으며, 저자가 이야기 중간중간에 심어 놓은 보석과 같은 독서론을 만나는 일은 이 책을 읽는 커다란 재미와 유익 중 하나다. 그의 글은 박식하되 현학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며, 일체의 기름기를 빼고 꼭 필요한 단어와 최소한의 문장만으로 자신의 주장을 명료하게 전달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미술에 대한 수많은 책 중에 왜 꼭 이 책이냐고 묻는다면, 대체 불가능한 저자가 대체 불가능한 문체로 쓴 대체 불가능한 책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놓치기 아까운 인상적인 독서론 몇 문장을 옮기는 것으로 책읽기를 마치도록 한다.  



내용 엿보기

 


책 좋아하여 잔뜩 쌓아놓기는 해도 좀처럼 읽지는 않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조롱 받아야 할까? 아니다. 그런 사람도 책 표지만은 읽지 않겠는가. 표지에 실린 제목과 저자, 출판사 정보만 접하더라도, 표지 디자인과 장정을 감상만 하더라도 그 사람은 충분히 독서인이다. 독서 가운데 뜻밖에 보람과 유익이 큰 독서는 바로 표지 독서.” (호모 비블리쿠스, 서인종의 탄생 )

 

모름지기 잘 쓴 글이란 화려하고 장황하게 꾸민 글이라고 생각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한국 사학자 이기백 선생의 <한국사 신론>을 교양 한국사 수업 교재로 처음 접하면서 이런 글도 있구나 하고 크게 놀랐다. 닭가슴살 같은 글이라 할까. 지방질 0%에 가까운 지성의 단백질. 한 문장에 한 가지 의미와 생각을 담는 단문에 계속 이어지는 글쓰기.” (기꺼이 포로가 되는 순간 )

 

“‘세상을 바꾼 책이니 세계를 움직인 책이니 하는 표현이 있다. 현실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는 책, 그런 책의 혁명성을 강조하는 말이지만 그것은 책의 일리(一理), 하나의 이치일 뿐 그 전체가 아니다. 세상과 나 사이 높은 담이 되어주는 것, 세상을 소란을 잊게 만들어주는 것 또한 책의 엄연한 일리다 ..... ”책 읽기가 행복한 것은 책 읽기처럼 세계를 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책 읽기의 고통과 행복 사이 )

 

“‘여류라는 표현이 아니어도 여성 특유의 섬세한때위 표현을 쓰는 사람이 여전히 드물지 않다. ...... 섬세함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뿐 성별에 따른 차이가 아니다. 설령 그런 면이 보이더라도 그건 역사적으로 여성이 섬세함이 요구되는 일에 더 자주 투입되어 온 결과일 뿐이다. 여성이 섬세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더 자주 맡았다고 보기 어렵다.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인 것을 자꾸 자연적인 것으로, 예컨대 여자는 본래 그래!“ 식으로 착각하지 말자. 크리스틴 드 피장이 이 점을 깊이 인식하고 비판한 지도 600년이나 지났다.” (‘여류는 없다. 인간이 있을 뿐)

 

시인 말라르메가 백지의 공포라고 일컬었다는 작가의 벽(writer's block).’ 쓸 내용이나 아이디어가 통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는 상황,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절필감, 글을 전혀 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 글도 첫 일필(一筆)에 만필(萬筆)이 통섭되고 억만 개 문장을 수용한다. 생각이 나니 쓰는 게 아니다. 쓰니까 생각이 나고, 쓰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써진다. 문장이 문장을 낳는다. 일필로 벽을 차 부수는 수밖에 없다.”(벽을 차 부수어라! )

 

혜능을 비롯한 많은 선사는 불경을 깊이 읽은 다음에 찢었다. 피카소가 창조한 자유자재한 새로운 스타일 뒤에는 정해진 기법을 마스터하기 위한 수많은 습작이 있었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건, 그것을 피하거나 무시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면으로 마주하며 숙달하고 정통해야, 즉 무언가를 마스터해야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며 나아가 새로운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창조할 수 있다. 아무나 스타일을 창조할 수 없듯이, 아무나 책을 찢을 수 없다.” (책을 찢다 )


“‘책은 만인의 것이라는 말이 있다. 책이 실제로 만인의 것, 모든 사람의 것이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만인이 문자를 해독할 수 있어야 하고, 만인이 책을 살 수 있어야 했으며, 지배 계층의 입맛에 맞는 책만 허락되는 현실을 무너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 그림 속 책은 그렇게 책이 만인의 것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였다.” (책은 만인의 것 )

 

책과 독서의 생명이 있다면 그 이름은 자유다. 만일 인간의 역사를 자유가 진보해온 역사라고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책을 쓰고 펴내고 유통시키며 읽을 자유가 진보해온 역사일 것이다. 우리가 나 또는 우리와 다른 타자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환대해야 한다면, 나 또는 우리와 다른 생각을 담은 타서(他書)에 대해서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책과 독서에는 이단이 없다 )

 

클릭 몇 번으로 책을 찾고 주문하여 받아보는 온라인 서점이 대세지만, 온라인 서점은 삶의 기억과 개인의 역사가 깃드는 장소로서의 서점은 아니다. 1968년 국제출판협회가 공표한 도서 헌장에 따르면 도서는 단순히 종이와 잉크로 만들어진 상품만은 아니다. 인간 정신의 표현이며 사고의 매체이며 모든 진보와 문화발건의 바탕이다.” 이를 다음과 같이 서점 헌장으로 바꿔 봐도 좋겠다. “서점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매장만은 아니다. 서점은 인간 정신 교류의 장이며 생각의 발전소이며 모든 진보와 문화발전의 바탕이다.” (서점, 그 이상의 서점 )

 

그림 속 책이 어떤 책이든 그것은 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탐색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타인을 아는 것과 자기 자신을 아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쉽게 답하기 힘들다. 독서는 세상과 타인을 좀 더 깊이 넓게 이해하도록 도와주지만, 그것의 가장 깊은 차원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맬컴 엑스가 그러했고 제이콥 로렌스가 그러했듯이, 독서는 곧 자기 성찰이다.” (나는 스스로 배워야 했습니다 )

 

인류 역사의 대부분 기간에 읽고 쓰는 능력은 지배계층이 독점했다. 대다수 사람은 문맹이었다. 지배계층이니까 읽고 쓸 줄 알았고, 읽고 쓸 줄 알았기 때문에 지배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지식 정보를 독점한다는 뜻이었고 자기 생각과 주장을 독점적으로 발표, 전파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민주주의에서 민주(民主)의 주()란 읽기와 쓰기의 주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읽지 않고 쓰지 않는, 말하지 않는 이는 주체, 주인의 자격과 멀어진다는 뜻이다. 우리는 내 생각을 나의 말과 글로 나타낼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자유를 실제로 행사하지 않는다면, 나도 모르게 남의 말과 글에 지배당해 결국 생각과 행동을 지배당하기 십상이다. 감히 말하기를, 쓰기를 주저하지 말 일이다. (읽기와 쓰기, 자유와 해방의 조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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