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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읽기쓰기

뉴욕도서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뉴욕공공도서관 지음, 베리 블리트 그림, 이승민 옮김, 정은문고 펴냄)

by 서음인 2020. 5. 30.

뉴욕도서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1940년대부터 뉴욕공공도서관 이용자들이 남겨 놓은 가장 특이하고 엉뚱한 106가지의 질문과, 그에 대한 도서관 사서들의 친절하고 유쾌한 답변을 함께 모아 펴낸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 안에는 빈대가 등장하는 책 제목이나 나폴레옹의 뇌 무게 같은 엉뚱한 질문이나, 단두대의 판매처나 인육의 영양가를 묻는 으스스한 질문들, 심지어 부정확한 철자를 사용했거나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가 같은 사람인지를 묻는 바보스러운 질문에 이르기까지, 온갖 기상천외한 질문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뉴욕 도서관의 사서들은 아무리 하찮거나 엉뚱해 보이는 질문에 대해서도 품위와 유머를 잃지 않은 채 다섯 문장 내외의 친절한 답변으로 응대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관련 서적들을 소개하거나 관련 자료들을 찾을 수 있는 도서관 구역을 안내하기도 한다. 작은 판형에 삽화가 많고 편집이 시원해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이지만, 읽어가다 보니 지식의 전달과 소통과 관련된 몇 가지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선하고 가치 있는 행위 중 하나는 지식을 전수하고 유통하며 나누는 일일 것이다. 이 책에 담긴 도서관 이용자들의 질문과 사서들의 답변이 잘 보여주고 있는 일이자, 지금 이 시간에도 세상의 모든 도서관에서 인류 역사에서 지식과 정보의 거의 유일한 담지자요 전달자였던 을 매개로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지식의 소통이 책과 도서관의 제국인 구텐베르크 은하계를 넘어, SNS가 구축한 온라인 세상에서 더 활발하게 이뤄지는 혁명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 시대는 이미 이 책에서 친절한 사서들이 했던 역할을, ‘지식인이나 위키백과’, 그리고 유튜브가 대체해버린 세상이 아닌가? 텍스트와 사서와 도서관이 만들어 온 위대한 문자문화는 이제 SNS라는 새로운 제왕의 등극으로 인해, 자신을 이미지나 사운드의 배후에 존재하는 스크립트(script)”로 격하시켜 근근히 생명을 이어가야 하는 슬픈 운명에 처한 것일까? 천국은 이제 거대한 도서관의 모습에서 놀라운 시뮬라크르의 놀이터로 변모해 버리지 않았을까?

과연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인류 역사와 함께 지속되어 온 자신의 왕좌를 지킬 수 있을까? 도서관이 불을 밝힌 채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보르헤스의 예언은 언제까지나 현실로 남게 될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책이란 정보를 담지하고 전달하는 미디어 플랫폼이기 이전에, 그 자체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질이라는 것이다. ‘지식인유튜브는 책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지식의 전달자일지 모르나, 책처럼 감상하고 어루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며 그 아름다움을 상찬할 수는 없다. 책의 '물질성'과 그 물질이 지니는 '아름다움'이야말로 책과 도서관과 사서의 세계 전체를 구원할 유력한 희망이 아닐까? 그렇다면 누가 알겠는가. 이 잘 만들어진 작지만 예쁜 책이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미래를 계시하고 그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강림한 감춰진 선지자나 변장한 메시아 중 하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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