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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과학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스티븐 호킹 지음, 이종필 옮김, 동아시아 펴냄)

by 서음인 2020. 2. 13.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은 루게릭병을 극복하고 우리 시대의 가장 유명한 이론물리학자로 등극했던 스티븐 호킹(1942-2018)이 블랙홀에 대해 15분간 두 차례 강연한 내용에 BBC 뉴스의 과학편집자인 데이비드 슈크만이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고, 여기에 다시 번역자인 입자물리학자 이종필 교수가 원문보다 긴 해설을 붙여서 펴낸 책이다. 이렇게 써놓으니 꽤 두꺼운 책일 것 같지만 사실은 작은 판형에 150페이지 남짓 정도의 분량밖에 안 되는 작은 책이며, 그나마 스티븐 호킹의 강연과 데이비드 슈크만의 설명은 합해도 7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 호킹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블랙홀이 가진 신비한 성질인 호킹복사(Hawkin radiation)와 여기서 파생되는 정보모순(Information paradox)에 관한 것이며, 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현대 물리학을 떠받치는 두 기둥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블랙홀에서 만나 근본적인 모순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서 치열하게 전개됐던 블랙홀 전쟁은 아직도 계속 진행 중이라고 한다. 번역자인 이종필 교수는 블랙홀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처럼 현대물리학의 큰 모순을 여지없지 보여주기 때문이며, 이러한 모순과 퍼즐을 해결한다면 21세기 물리학은 더 크게 도약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호킹의 강연은 우아하고 슈크만의 설명은 명쾌하며 이종필 교수의 해설은 친절하지만, 이 자그마한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그다지 쉽지만은 않다. 우리 시대 최고의 대가가 생애 말미에 현대 물리학과 우주과학의 최첨단에 자리한 블랙홀을 둘러싼 흥미로운 연구의 결과와 치열한 논쟁의 과정을 직접 들려주는 귀한 책이며, 제목 그대로 스티븐 호킹블랙홀에 대해 흥미를 가진 분들이 입문서로 읽기에 적당하다. 이 책 다음으로는 이정모 관장이나 이명현 박사 같은 과학교양서 분야의 최고 고수들이 적극 추천하는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교향곡정도를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책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으로 독서를 마치도록 한다.

 

 

내용 요약

 

 

1.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자연의 고유한 언어는 광속이고 시간공간은 인간이 만들어 낸 언어이며, 이는 시간과 공간의 간격이 운동의 상태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가속운동시 발생하는 관성력은 시공간을 뒤틀리게 하며, ‘관성력중력은 동등하기에 (등가원리), 중력이란 곧 시공간의 뒤틀림 또는 시공간의 곡률이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은 질량이 있을 때 그 주변의 시공간이 어떻게 휘어지는지를 기술한다. 아인슈타인은 중력파의 존재를 예견했으며, 이는 질량의 변화에 따른 주변 시공간의 곡률변화가 물결치듯 시공간의 요동을 타고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2. 별이 형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자체 중력과 핵융합 반응에 의한 압력이 평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별이 더 이상 핵융합 반응을 할 수 없으면 중력붕괴를 막을 힘이 사라지지만, 태양의 1.4배 정도 되는 질량(찬드라세카르 한계)까지는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따라 같은 상태의 전자를 밀어내는 축퇴압에 의해 중력붕괴 막을 수 있으며 이 경우 흰난쟁이별(백색 왜성)이 된다. 태양의 1.4배에서 3배까지의 질량(톨만-오펜하이머-폴코프 한계)에서는 별이 더욱 압축되어 중성자를 만들며, 이러한 중성자에 의한 축퇴압이 중력붕괴를 막고 있는 별이 중성자별이다. 별의 중량이 TOV 한계를 넘는 경우에는 더 이상 중력붕괴를 막지 못하고 블랙홀이 된다


3. 이 경우 거대한 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압축되어 밀도와 표면의 중력이 무한대가 되고 시공간의 곡률이 무한대가 되는 하나의 점인 특이점으로 모이게 된다. 호킹은 특이점을 수학적으로 계산한 덕분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여기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비롯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리이론이 작동하지 않는다.

 

4. 블랙홀은 그 천체의 중력을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속도(탈출속도)가 광속인 약 30만 킬로미터보다 큰 천체를 말하며, 이러한 탈출속도는 질량이 커지거나 반지름이 줄어들수록 커진다. 모든 블랙홀은 자신의 외부에 중력이 충분히 강해서 빛을 포함한 모든 것을 탈출하지 못하게 하는 경계선인 사건의 지평선을 가지며, 따라서 블랙홀의 크기는 사실상 사건의 지평선의 크기라 할 수 있다. 블랙홀 중심에서 사건의 지평선에 이르는 거리를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라고 하며 이는 블랙홀의 질량에 정비례한다. 따라서 물질이나 복사가 추가적으로 블랙홀 속으로 떨어지면 사건의 지평선은 항상 증가한다.

 

5. 어떤 블랙홀도 질량, 각운동량, 그리고 전기전하라는 세 가지 물리량으로 모든 특성이 결정되며, 가장 간단한 슈바르츠실트 블랙홀의 경우 질량만 같다면 모든 물리적 성질은 같다. 이를 블랙홀의 대머리 정리’(no-hair theorem)라 하며, 블랙홀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도입한 존 휠러는 이를 블랙홀에는 털이 없다라는 말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블랙홀은 이 세 가지 성질을 제외하면 붕괴한 천체의 다른 어떤 세부사항도 보존하지 않으며, 이는 중력붕괴 때 많은 정보를 잃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6. 베켄슈타인은 블랙홀이 사건의 지평선의 면적에 비례하는 엔트로피를 가진다고 제안했으며, 이는 중력붕괴로 블랙홀이 만들어지는 동안 회복불가능하게 잃어버리는 정보량의 척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블랙홀이 엔트로피를 가진다면 표면중력에 비례하는 유한한 온도를 가지고 흑체복사를 해야 하지만,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블랙홀은 모든 열적 복사를 다 흡수하되 열을 포함한 어떤 것도 방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는 모순이 발생한다.

 

7. 그러나 호킹은 블랙홀이 마치 유한한 온도를 가진 흑체처럼 입자를 만들어내고 열을 방출한다는 사실(호킹복사, Hawking radiation), 그 온도는 블랙홀의 표면중력에 비례하며 질량에는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호킹복사는 아직 관측된 바 없지만 만약 덧차원을 포함한 전체 시공간에서 중력이 약하지 않다면 우리가 운용하는 입자가속기에서도 굉장히 작은 마이크로 블랙홀을 만들 수 있으며, 이때 호킹복사를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8. 이 복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은 블랙홀 주변에 양자역학을 적용하는 것이다. 호킹복사는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양자역학의 불완전성 정리에 따른 양자 요동에 의해 만들어진 한 쌍의 가상입자 중 하나가 블랙홀 속으로 떨어지고 하나는 탈출하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입자들이 탈출하면 에너지 보존법칙에 의해 블랙홀은 질량을 잃고 줄어들며 언젠가는 사라지게 된다. 호킹은 블랙홀의 증발과 함께 정보가 사라진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모든 정보가 반드시 보존되어야 한다는 양자역학과 모순관계에 있게 된다. 따라서 호킹은 양자역학과 블랙홀이, 더 크게는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 이론이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이를 정보모순이라고 한다.

 

9. 세상 만물이 모두 1차원적인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끈이론은 양자역학적으로 중력을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중력 현상을 그보다 한 차원 낮은 경계면에서의 양자장론으로 등치시킬 수 있다는 말다세나 추론에 의하면, 블랙홀에 관련된 모든 현상은 그보다 한 차원 낮는 경계면에서의 양자장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이론들에 따르면 블랙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정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호킹은 나중에 말디세나 추론을 적극 받아들여 정보가 손실된다는 자신의 입장을 철회했.  그러나 그 이후로도 이 주제를 둘러싼 논쟁은 다양한 분야에서 계속되고 있다.

 

10. 현재 양자역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중력의 양자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끈 이론이나 고리양자중력이론 등이 나와 있으나 아직 중력과 양자역학을 아울러 설명하는 만족스러운 양자중력이론이 나오지는 않았다. 블랙홀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처럼 현대물리학의 가장 큰 모순을 여지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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