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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역사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창비 펴냄) : 빗창 - 제주 4.3 (김홍모 만화), 사일구 - 4.19 혁명 (윤태호 만화) 아무리 얘기해도 - 5.18 민주화운동 (마영신 만화), 1987 그날 - 6.10 민주항쟁 (유승하 만화)

by 서음인 2020. 4. 30.

1.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획한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시리즈가 2년여의 작업 끝에 창비출판사에서 나왔다. 총 네 권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의 책들은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 제체와 군부독재 정권의 억압을 이겨내고 성숙한 민주주의 체제로 나아가기까지의 과정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인 제주 4·3,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을 네 명의 작가가 각각 한 편씩 맡아 만화로 그려낸 것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은 책의 앞머리에 실린 기획의 말에서 이 프로잭트가 민주화운동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그 생생한 역사를 잘 알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들이 우리 민주주의 역사를 새롭게 발견하고, 내일의 세대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해주는 메신저가 되기를 희망한다.

2.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네 명의 작가들은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들이 맡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1) 제주 4.3을 그리기 위해 제주도로 이사하기까지 한 김홍모 작가는 빗창에서 1931년부터 6개월여 동안 진행된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자세히 묘사하며,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 이야기를 4.3까지 연결한다. 그리고 미군정과 결탁한 이승만 정권 및 그 하수인인 서북청년단에 의해 자행된 무자비한 폭력과 이에 맞서는 해녀들의 2대에 걸친 강인하고 처절한 항쟁을 좌고우면하지 않는 직선적 이야기 전개와 판화를 연상시키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그림체에 잘 담아냈다. 네 작품 중에서 가장 선명한 선악구도를 가진, 계몽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2) 이끼미생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는, 일제치하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생존을 삶의 강령으로 체화한 주인공이 현장에 있었지만 투쟁의 주체는 되지 못했던 상태로 겪었던 4.19혁명의 소회를, 정밀한 그림체에 담아 담담하게 들려준다. 주인공이 죽기 얼마 전 그의 전라도 사위가 변혁을 꿈꾸며 서 있던 촛불 광장에 몰래 모습에 드러낸 것은, 혁명의 광장에서 죽어가는 친구를 버려두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던 그날의 부끄러움을 극복하려는 몸짓이자,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존에 급급하느라 감히 꿈꿔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자유을 향한 용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으리라.

(3) 마영신 작가는 아무리 예기해도를 이른바 광수사진을 친구들과 돌려보다가 담임선생님께 꾸중을 듣는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문제의식을 느낀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5.18 민주화운동의 배경과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잔혹한 만행을, 마치 다큐멘터리 필름의 스틸 컷을 연상케 하는 그림체로 생생하게 옮겨 낸다. 또한 우연히 목격한 담임선생님의 실수를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빌미로 삼아 끝끝내 반성을 거부하는 학생의 모습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하는 의도적인 왜곡세력 못지않게 이를 묵인하거나 동조하는 보통사람들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4) 갓 스무 살의 나이로 610민주항쟁에 참여했던 유승하 작가는 부천경찰서에서 발생한 성고문 사건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발생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그리고 시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군 사건 등 전두환 정권의 폭압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거대한 국민적 항쟁의 물결에 합류한 다양한 시민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하나로 뭉쳐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기까지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당시에는 국민들이 힘써 쟁취한 직선제의 과실을 결국 또 다른 군부정권이 차지하고 말았지만, 그 지난했던 투쟁의 과정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단단한 토대가 되었다고 강조한다

3. 지금까지 이 땅에서 오십여 성상을 살아오며 지니게 된 확신 한 가지는 세상이 좋아질 수 있고 실제로 좋아져 왔지만, 그 세상은 홉스봄의 말마따나 절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잔해로부터 실패와 파국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불러내 응시하고 애도하면서,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 가능한 작은 성찰과 실천에 매진하는 일이야말로, ‘역사의 천사’(Angelus Novus)가 뒷걸음치는 것을 막고 이 땅에 메시아적 시간을 도래케 하는 길일 것이다. 역사의 거대한 심연으로부터 무엇을 건져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과연 당신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나는 이 책들이 소환하는 기억과 그 기억이 지향하는 미래의 편에 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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