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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영성제자도

장기려, 그 사람 (지강유철 지음, 홍성사 펴냄)

by 서음인 2016. 5. 30.

 이 책은 ‘한국의 슈바이처’, ‘바보의사’, ‘작은 예수’등으로 불리며 평생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던 성산 장기려 박사(1911-1995)의 평전이다.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김일성대학 의과대학 교수, 부산 복음병원 원장, 청십자 병원 원장을 역임했으며, 한국 최초로 간의 부분절제와 대량절제를 성공하고 부산대와 가톨릭대 서울대에서 후학을 가르치기도 했던 이 거인은, 전시 부산에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무료병원을 설립하고 간질환자를 위한 ‘장미회’ 를 평생 섬겼으며, 한국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하기도 하는 등 그의 평생을 의료의 혜택에서 소외된 가난한 자들을 섬기기 위해 바친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이기도 했다. 저자는 수많은 관련 자료들에 대한 철저한 고증에 입각하여 장기려 박사의 삶을 주요 시기별로  탄탄하고 성실하게 기술해 나간다. 물론 저자의 명성에 걸맞게(!) 장기려 박사가 학장으로 있었던 고신대 의대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사태나, 말년에 제도권 교회를 떠나 ‘종들의 모임’으로 옮겨 다시 세례를 받았던 사실, 평생의 친구였던 함석헌과의 관계 등 기존의 연구서들이 정치적 이유로 알리기를 꺼려했던 사실들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저자인 지강유철 선생은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어쩌면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가 아니라 그가 감춘 것” 이라는 앙드레 모루아의 말을 인용한다. 그렇다면 드러난 그의 ‘업적’이 아닌 장기려 박사 ‘자신’은 과연 누구였을까? 저자의 평가를 들어 보기로 한다. (1) 선생은 거짓을 저주받을 짓이라고 여겼고, 정직을 최선의 미덕으로 알았던 이면과 표면의 경계를 허문 사람이었다. (2) 선생은 사람을 그가 가진 권력, 돈, 신분에 따라 다르게 대하지 않았고, 자신의 집에 구걸을 왔던 거지와도 겸상했으며, 국가도 방치한 영세민들을 위해 23 만 명의 회원을 가진 의료보험조합을 만들어 낼 정도로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람으로 대했던 사람이었다. (3) 선생은 탁월한 의술에도 불구하고 전문가주의를 거부했으며, 병원의 대형화 효율화가 긍휼과 자비의 정신을 억압하고 맘몬숭배를 조장할 것을 경계한 아마추어리즘을 고집한 의학도였다. (4) 선생은 77세에 교회개혁을 열망하는 작은 공동체를 만난 후 늘그막에 찾은 진정한 교회 공동체를 위해 자신이 누리고 있던 모든 명성과 관계를 포기할 정도로 평생 교회개혁의 열망을 간직하고 산 사람이었다. (5) 선생은 자신의 보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이단시하던 무교회주의 색채를 띤 모임을 32년 동안 이끌었으며, 대표적인 반정부 인사이자 퀘이커교도였던 함석헌과 평생 친분을 유지할 정도로 이념에 얽매이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5) 선생은 73년 복음병원의 폭력 사태 이후로 개인의 병을 고치는 것보다 민족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세계 평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탄압했던 북한 공산체제, 심지어 김일성 부자와 북한의 권력자들을 위해서까지 눈물로 기도했던 통일의 실마리를 풀 열쇠를 지닌 사람이었다. (6) 선생은 자신이 가진 기독교 신앙을 타종교인이나 무신론자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진실’과 ‘사랑’, 그리고 ‘성실’ 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그들과 소통했던,비기독교인들을 위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훌륭한 ‘업적’과 ‘성취’를 이룬 사람의 전기를 읽는 것은 의외로 그다지 힘들지 않다. 왜냐 하면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평범한 사람들이 위안을 얻을 만한 거리들이 제법 눈에 띠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헤겔도 “하인 앞에 영웅은 없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나 훌륭한 ‘삶’을 살아간 분의 전기를 읽는 것은 언제나 불편하고 힘들다. 더구나 그 ‘훌륭한 분’이 잠시나마 나와 동일한 시대 같은 하늘 아래 살았다면, 게다가 동종업계(?) 에 종사하기까지 했다면 그 불편함을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여 내게는 이 책이 마지막까지 펴들고 싶지 않았던 책이요, 수많은 핑계로 읽다가 멈추다가를 반복했던 책이요, 다 읽은 후에도 끝끝내 상당 기간 리뷰를 미룬 책이었다. 그러나 꼿꼿하기로 소문난 저자 지강 선생마저도 에필로그에서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사실은.....저자처럼 살지 못했던 나 자신이었다” 고 고백한 것을 보며 나 역시 위안을 얻는다. 부디 이 책이 가짜 권력이 거짓과 폭력으로 자신의 불의를 과시하고, 더러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소수자와 타자에 대한 이념적 증오를 부추기며, 돈만 된다면 철도든 의료든 사람이든 모든 것을 맘몬에게 바치지 못해 혈안이 되어 있는 이 어둠의 시대에, 자신만의 게토에 갇혀 세상의 불의와 타인의 고통에 눈멀고 귀먹어버린 많은 사람들의 양심을 흔들어 깨우는 작은 불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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