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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영성제자도

신을 기다리며 (시몬느 베에유 지음,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중력과 은총 (시몬 베유 지음, 이제이북스 펴냄), 시몬느 베이유 (에릭 스프링스티드 지음, 분도출판사 펴냄)

by 서음인 2016. 5. 28.

1. 시몬느 베이유 (Simone Weil 1909-1943) 는 프랑스의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교수 자격을 획득한 철학자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고 평행을 노동자와 가난한 자들을 위해 투신한 노동운동가이자 몇 번의 신비적 체험을 통해 그리스도와 만났지만 끝내 제도 교회에의 입문은 거부했던 ‘가나안 가톨릭 신도’ 이기도 했다 그녀가 1943년 서른 셋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출판된 유고들은 그녀를 일약 유명한 여류 사상가이자 영성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으며, 그 중 <신을 기다리며> 는 Christianity Today 에 의해 20세기의 위대한 신앙서적 100 권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2. 영성서적이나 아포리즘 형태의 글을 이해하기 힘든 정신구조를 가지고 있는 내게 이 여류 사상가의 독창적인 글들을 읽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였다. 사실은 몇 권의 책을 읽은 지금도 그녀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자신은 전혀 없다. 일단 이번에는 희미하게나마 그녀를 이해하기 위한 단서가 될 몇 가지 단상을 건진 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한다.

 

(1) 베이유의 ‘신앙’은 제도 교회 (특별히 가톨릭 교회) 나 성례전, 혹은 문자 (성경) 의 중재를 거치지 않은 하나님과의 직접적 만남이라는 ‘체험’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따라서 신비주의 신앙의 전통과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특별히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회심이라는 그녀의 체험이 ‘회심’ 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기독교의 특징 (회심주의) 과 비슷한 맥락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마 이런 점이 복음주의 잡지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에서 ‘가나안 가톨릭’ 인 그녀의 책을 20세기를 대표하는 기독교 서적으로 선정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복음주의자들에게 익숙한 ‘회심’ 체험은 결코 모든 기독교의 전통에서 익숙하거나 당연시되는 경험이 아니다. 일례로 영국 국교회 소속 복음주의자들의 수기를 읽어 보면 이들이 회심을 체험한 후 자신의 교구 사제에게 이 사실을 고백했을 때 그 교구사제가 화를 내거나 면박을 주는 장면들이 나온다. 제도 교회에 잘 출석하고 성례전에 꼬박 꼬박 참석했다면 그에게 별개의 '회심'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특별히 예전을 중시하는 高교회론의 입장을 지닌 가톨릭교회나 영국 국교회의 경우에 이런 입장이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2) 베이유는 신비적 체험을 통해 신앙을 받아들인 후에도 그녀의 영적 스승이라 할 수 있는 페렝 신부와 지속적으로 교제했지만 끝끝내 제도 교회에 출석하거나 성례전에 참여하는 것은 거부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이유를 “가시적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껴안기 위해서” 라고 고백했다는 사실, 그리고 철저하게 이러한 자신의 고백과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베이유의 '신앙' 이 자신의 구원이나 영적 유익을 위한 수단이 아닌, 철저하게 “세상을 위한” 신앙이요 “세상을 섬기기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러한 그녀의 삶이야말로 현대인은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며,  교회란 철저하게  “타자를 위한 교회” 가 되어야 한다는 본회퍼의 신학을 가장 잘 구현해낸 사례가 아닐까? 바벨탑과 같은 웅장한 건물들을 짓고 자식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며, 주변의 교회들을 파괴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몸집을 불리는데만 열중하는 대형교회들이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물의를 일으키는 우리의 현실을 보니 베이유야말로 참된 선지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3) 베이유는 중력과 은총이라는 두 힘이 우주를 지배하고 있으며, 은총이 개입하지 않는 한 세상의 모든 것들은 불행과 죽음으로 대표되는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은총을 받아들이게 된다 해도 그 은총이 우리의 고통을 기적적으로 경감시키거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위안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은총은 예수의 자기 비움과 십자가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자율성을 철저히 거부하는 자기 비움과 고난과 고통을 하나님의 뜻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자발적 복종을 우리에게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에릭 스프링스티드는 그의 책 <시몬느 베이유>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완전한 사랑과 정의의 패러다임을 제공함으로서 인간 생명이 신적 생명의 모든 단계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이야말로 시몬느 베이유가 추구했던 영성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서는 심지어  ‘자기파괴적’ 이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철저하게 자기비움과 순종을 갈망하고 추구했던 베이유는 타인의 자율성을 빼앗고 그들을 ‘물질’의 상태로 만드는 모든 악에 대해서는 단호히 정죄하고 비판하면서 평생 저항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나 동료의 죄, 그리고 권력이 저지르는 악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기득권을 가진 자들에게는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에게는 함부로 ‘용서’ 를 입에 담는 일부 '자기파괴적‘인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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