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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교의 .변증

어머니 · 연인 · 친구 - 생태학적 핵 시대와 하나님의 세 모델 (샐리 맥페이그 지음, 정애성 옮김, 뜰밖 펴냄)

by 서음인 2020. 6. 18.

어머니 · 연인 · 친구는 벤더빌트 대학과 뱅쿠버 신학교에서 가르쳤으며 미국의 생태여성신학을 이끌어 온 대표적 신학자인 샐리 맥페이그의 신학 방법론과 신학적 사유의 핵심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신학이란 그리스도교의 주장을 강력하고 이해 가능하며 동시대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선택된 서너 개의 기본적인 은유들과 모델들을 정교화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본질상 허구에 가깝지만, 특정 시대에 맞춰 복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나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허구들이 다른 것들보다 더 낫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가부장적이고 정복주의적이며 제국주의적인 하나님 은유와 왕의 통치 영역으로서의 세계 모델은 생태학적 위기와 핵 위협에 직면한 포스트모던 시대에 적실성을 상실했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현대인들의 상상력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어머니 · 연인 · 친구라는 새로운 하나님 은유와 하나님의 몸이라는 세계 모델이 우리 시대에 하나님과 세계를 표현하는 더 적합하고 유용한 그림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어머니(부모) · 연인 · 친구라는 하나님의 세 은유들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공평하고, 재결합적이고, 상호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삼위일체가 된다고 말한다. ‘어머니(부모)로서의 하나님 상은 일체의 생명에 친밀하고 공평한 관심을 기울이시는 창조자하나님을 체현하고어머니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는 존재 자체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사랑이 이루고자 하는 윤리적 차원은 정의연인 하나님은 그 몸을 치유하고 그것과 결합하고자 열정(과 고난)을 쏟는 구원자하나님을 보여주고구원자 하나님의 사랑인 '에로스'는 연인에 대한 열정적 사랑이며, 그 사랑이 추구하는 실천적 윤리는 치유. 친구하나님은 몸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신실한 동료인 지속자하나님을 표현하고, 지속자 하나님의 사랑인 '필리아'는 만물의 실현을 위해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친구의 사랑이며, 그 제자직의 윤리는 사귐’이.


그리스도교 신학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신학 언어의 본질과, 구원의 능력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급진적이지만 창조적인 사유 실험으로 가득한 이 책을 요약하고 간략한 통찰을 덧붙인다.

 


내용 요약 



1장 새로운 감수성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의 그리스도교 세계는 자비로우면서도 절대적 권한을 가진 신의 인도 아래 있는 세계, 서로 간에 또는 다른 생명체들과 위계관계를 맺는 독립적인 개체들이 거주하는 세계이다. 그러나 이는 더 이상 우리의 세계가 아니며, 그러한 전제에 기반해 수행하는 신학은 상처를 준다. 우리 시대의 신학은 통전적이고 책임적이며, 모든 생명체들을 포괄하고 모든 생명의 상호의존성을 인식할 줄 아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감수성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신학에 요청되는 감수성의 중요한 측면들은 통전적이고 생태적이며 진화적인 세계관, 핵 시대에 필요한 인간의 책임성 모든 신학의 '은유적'이고 구성적’인 특성이다.

 

통전적인 실재관    서양 종교 전통에 깊숙이 베어든 개인주의와 인간중심주의로부터 돌아서는 출발점은, 우리가 우주의 진화하는 생태계의 일부이자 그 생태계와 긴밀하게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신학 수행의 범주들은 기계적 세계관의 특성인 실체 · 불변성 · 완전성에서, 생태적이고 통전적인 실재관을 반영하는 관계성과 상호의존, 변화와 변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생태학적 상호주의적 모델이 제시하는 타자를 향한 윤리의 핵심은 인간보다 연약한 것에 대한 책임을 의미하는 정의와 보살핌이며, 우리와 생태계의 관계는 지배에서 보살핌과 양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핵 악몽    인간이 핵무기를 통해 자신과 다른 생명체들을 파괴할 힘을 가지게 된 현실은, 과거에 이원적, 비대칭적이었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연합적, 상호의존적으로 만들었으며, 이제 인간은 지구의 운명에 대한, 특히 일어날 수도 있는 핵 학살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핵 시대에 세계 밖에 존재하며 단독적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군주라는 하나님 은유와 그러한 은유들을 따라 형성되는 전능하고 완전하며 초월적인 하나님 개념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어머니, 연인, 친구로서의 하나님 모델은 힘을 지배나 인정으로서 보던 견해 대신, 연합적이고 상호의존적인 힘인 사랑을 상상하게 만든다.

 

신학적 구성    우리 시대의 신학 수행을 위한 새로운 감수성의 세 번째 측면은 신학이 구성적이고 은유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자각이다. 근본주의는 신학 언어의 은유적 성격을 인정하지 않지만, 은유 신학은 어떠한 신학적 구성물도 신적 실재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모든 구성이 은유적이라는 말은 우리가 모든 실재를 날것 그대로가 아니라 매개를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은유적 특성을 가진 모든 구성적 신학은 불가피하게 모험적이고 부분적이며 불확실하지만, 그것이 실재와 전혀 상관없는 공상이나 환상은 아니라는 의미다. 통전적 비전과 핵 위협의 맥락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구성한다는 것은 그 문제들을 간과하는 옛 구성들보다 우리 시대에 좀 더 적실한 산학적 구성물을 만드는 일이다.

 


2장 은유 신학


 

우리는 각 시대마다 다른 방법으로 신학을 수행해야 하며, 이 과제를 거부하는 것은 당대가 아닌 과거를 위한 신학을 세우는 것이다. 성서의 풍부하고 다양한 은유들과 개념들은 그 시대에 적실했던 신학의 한 모델이나 본보기일 뿐, 불변하는 신학 그 자체에 대한 언명과 동일시되어서는 안된다. 이 책이 다루는 신학은 과거의 신학들이 그랬듯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은유들과 개념들에 대한 사유 실험이며, 모든 모델이 아닌 하나의 모델을, 완전한 교리가 아닌 특정 측면을, 모든 시대가 아닌 우리 시대를 위한 신학을 제시한다.

 

은유/모델 개념    저자가 권유하는 신학적 과정은 해석학으로서의 신학이 아니라, ‘은유모델을 통해 신학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은유란 알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을 통해 말하려는 시도이며, 모델은 충분한 안정성을 가지고 머무는 힘을 획득한 은유이다. 은유 신학은 하나님-세계 관계에 대한 상상력 있는 해석에 초점을 맞추면서 생태학적 핵 시대에 적합한 은유들과 모델들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재신화'하는 일종의 발견적 구성 작업이다. 은유 신학은 적실성을 상실한 기존의 은유를 해체하기에 위험하고, 자신의 모델을 절대화하지 않기에 상대적이며, 다른 모델들도 환영하기에 다원적이다.

 

원천과 자원 ; 성서/전통/경험    그리스도교 신앙의 초점은 성서라는 텍스트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의 변혁적인 힘이며, 성서는 특정 시대에 효과적이고 작용했던 은유와 모델들로 기록된 하나님의 구원 노력에 대한 인간 경험을 담은 침전물이다. 우리는 성서를 영원한 진리를 담은 신학의 권위적이고 유일한 규범이 아니라, 모범적인 하나님-세계 관계의 모형이나 사례가 담긴 그리스도교의 제일 고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변혁적인 사랑을 목격한 개인과 공동체의 다양한 경험을 해석하는 한 가지 방식을 절대화하는 것은, 특정 시대의 어떤 사람들에게 적합했겠지만 이제는 부적절한 은유와 모델들과 개념들을 고착시키는 일이다.

 

그리스도교의 패러다임    그리스도교 신앙의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나자렛 예수라는 한 모범적 인물에 비추어 부분적이고 제한적으로 보도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모범적 이야기는 전 피조물에게 동요시키고 포괄적이며 비위계적인 구원의 비전을 제공한다. 예수의 비유는 모든 가치와 관습을 동요시키고 전복하는 반전이었고, 식탁 친교는 모든 존재를 실현으로 초대하는 급진적인 포용성을 보여주며, 십자가의 죽음은 모든 타자들과 철저히 하나가 되는 비위계성을 보여준다. 새로운 은유에 따르면 죄란 타인들과 지구를 대적하는 것이고, 십자가는 언제나 세계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방식의 한 패러다임이며,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협력하는 모든 인간의 과제다.



3장 하나님과 세계

 


어머니, 연인, 친구라는 새로운 하나님 모델은 하나님의 몸이라는 세계 모델에 근거하며, 이는 왕의 통치 영역이라는 전통적인 세계 모델과 대조된다. 부활과 승천은 개인의 몸이 또 다른 세상으로 이전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장소와 시대 속에서 영원히 몸으로함께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해해야 하며, 그 현존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리스도교 공동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몸으로서의 세상이라는 은유는, 하나님에 대한 정복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은유들과 공존할 수 없다.

 

군주 모델    전통적인 군주 모델은 하나님과 세상의 비대칭적 이원론을 초래한다. 위계적이고 이원론적인 군주 모델의 하나님은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인간 세상과만 관계하며, 지배와 자선의 혼합을 통해 세상을 조종할 뿐 아니라, 우리가 아무것도 아닐 때에만 하나님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착오적 군주 모델은 피조물의 완성을 위한 동요시키고 포괄적이며 비위계적인 비전을 품은 복음 이해의 틀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몸인 세계    우리는 세상을 세심하게 보호받고 양육되어야 하는 존재로,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거하시는 장소인 하나님의 몸으로 만난다. 세상의 모든 악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에게도 일어나며, 악에 감염된 피조물이 느끼는 모든 고통을 하나님도 즉각 몸으로 느끼신다. 세상과 함께 고난당하시는 하나님은 홀로 세상에서 악을 완전히 쓸어버릴 수 없으며, 그 일은 세상에서 일하는 하나님의 파트너들인 우리에게도 맡겨져 있다. 죄란 우리가 하나님의 몸의 일부임을 부인하거나, 몸의 모든 부분을 양육하고 사랑하고 친구가 될 책임을 거부하는 것이다.

 

어머니 · 연인 · 친구인 하나님    어머니 · 연인 · 친구라는 하나님-세상 관계에 대한 인격적 모델은 복음에 대한 포괄적이고 비위계적인 이해를 표현하며, 우리 시대에 생명이 지탱되고 실현되기 위한 조건인 친밀감과 상호성, 관계성을 보여 준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은유들은 권력, 즉 변화를 초래하는 방법으로 지배나 자선을 통한 통제가 아니라, 설득 · 보살핌 · 관심 · 상호성을 통해 일어나는 사랑의 힘을 제시한다. 이 모델에 따르면 복음의 대상은 개별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몸인 세상이고, 부활이란 세상이라는 몸 안에서의 하나님의 현존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깊이 보살피실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보살핌을 요구하시는 분이다

 


4장 어머니 하나님

 


아버지 모델은 자신이 하나님에 대한 유일한 은유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모델들을 억압함으로서 우상화의 길을 걸어 왔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여성적인 하나님의 그림 언어에 대해 불편하게 여겨 왔으나,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남성과 여성을 포괄하므로 남성적/여성적 은유를 모두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여성적 은유는 출산과 양육이라는 모성적 은유를 포함하지만 그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어머니 하나님의 사랑 : 아가페    생명의 수여자이자 만물 안에 깃든 존재의 힘인 하나님은 어머니의 은유로 묘사될 수 있다. 어머니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지만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귀하고 가치있는 피조물에게 네가 존재해서 좋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어머니 하나님은 생명 자체를 편드시며 이는 어느 한 종이나 개별 인간의 생명을 편드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자연 자원을 가진 닫힌 생태계 안에서 모든 생명들의 지속, 성장, 실현을 보장하고 지키기 위한 결정을 내리신다는 뜻이다.

 

어머니 하나님의 활동 : 창조    어머니 하나님 은유가 보여주는 창조의 모델은 예술가의 지성적/미적 창작이 아니라, 신체적 사건이나 출산의 은유다. 창조란 하나님의 실재 안에서 태어나 진화의 시간 속에서 완성되는 하나님의 자기 표현이며, 어머니 하나님은 피조물을 창조하실 뿐 아니라 양육과 구속을 거쳐 실현으로 인도하신다. 어머니 하나님에게 죄란 몸을 거역하는 것”, 즉 자신이 생태계의 일부라는 것과 만물의 상호의존성과 상호관계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구원자이자 심판관인 하나님은 자신을 거역하는 자들이 아니라 만물의 실현을 가로막는 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어머니 하나님의 윤리 : 정의    피조 세계를 어머니-하나님의 몸으로 본다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세상의 몸을 구성하는 타자들에 대한 사랑을 구분할 수 없다.  어머니 하나님이 하는 일은 정죄와 심판의 선고가 아니라, 생태적 정의를 성취해 만물을 완성으로 이끄는 일이다. 인간에게 자연을 파괴할 힘이 주어진 통전적인 핵 세상에서 정의의 윤리란 우주의 부모로서 모든 종의 생존을 바라고, 선한 집주인으로서 생존의 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일이다.  우리의 사랑을 혈연이나 일차 공동체나 심지어 우리 자신의 종까지 뛰어넘어 우주적으로 확장시키는 것은 생태학적 핵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제자도의 윤리다



5장. 연인 하나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하나님을 연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두려워한다. 그러나 연인관계가 가장 깊은 인간관계중 하나라면 그것은 하나님-세상 관계의 특정 측면을 표현하는 중심 은유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연인 관계의 유비를 통해 가장 귀하신 분, 우리가 다른 무엇보다 사랑하는 분, 사랑하는 우리를 모든 계산을 뛰어넘어 귀히 여기시는 분과 영원토록 온전히 연합한다는 가장 깊은 갈망의 실현을 약속받았다. 우리는 사랑받는 자와 사랑하는 자의 수직적 관계 안에서 하나님을 개별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몸인 세상을 사랑함으로서 세상을 사랑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연인 하나님의 사랑 : 에로스    연인이신 하나님은 만물과 떨어져 있는 무감동한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세상의 다양성과 풍요성을 기뻐하며, 세상을 고귀하게 여길 뿐 아니라, 그 실현을 즐거워하신다. 이는 이 세상이 신의 용서를 통해서 가치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귀하고, 연인이 서로를 필요로 하듯 하나님도 세상을 필요로 하며, 구원이란 죄와 무가치로부터의 구출이 아니라 원래 매력적이고 가치 있는 것들을 온전케 하거나 그들과 재결합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모든 피조물과 인간, 특히 제자라 불리는 연인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따르는 모범적 인물인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처럼, 신의 사랑을 나타내는 기호나 성례전이다.

 

연인 하나님의 활동 : 구원    연인 하나님 은유에서 죄란 교만이나 불신앙이 아니라 관계를 거부하는 것 - 연인 하나님께 사랑받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만물의 연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 이다. 구원이란 다른 누군가가 우리 대신에 하는 유일회적 봉사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의 갈라진 몸을 지속적으로 치유하는 일이며, 연인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그 핵심이기에 개인· 인간중심적 · 부정적이기보다 통전적 · 포용적 · 긍정적이다. 회개란 자신만의 구원에 대한 관심에서 온전한 세상의 몸의 회복을 위한 관심으로의 돌이킴이며, 사랑받은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고 구원하고자 애쓸 때 우리의 구원도 성취된다.  

 

연인 하나님의 윤리 : 치유    세상의 파열된 몸을 다시 온전하게 만드는 일이 구원이라면 치유는 그것을 일으키는 방식이다. 연인 하나님의 윤리인 치유 모델은 전통적 구속론에 나타난 인간중심주의와 몸-영의 분리를 근절시키고, 치료를 위한 기적적 개입 대신 올바른 관계와 적합한 조화의 회복을 추구하며, 무질서와 혼돈에 대한 저항과 고통당하는 자와 하나되는 동일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또한 어머니-창조자이신 하나님은 생명을 부정하고 당신의 자녀들에게 돌보고 양육하지 않는 자들을 엄정히 심판하신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 사람들은 타자들에 대한 포괄적이고 급진적인 사랑을 통해 모든분리를 치유하는 모범을 보여준다

 

 

6장. 친구 하나님

 

 

친구 하나님의 사랑 : 필리아    친구란 공동의 비전을 가진 두 사람이 자유롭고 이성적인 선택에 의해 맺은 유대관계이며, 하나님과 인간 간의 친구 관계는 지구의 안녕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구원이라는 공통의 프로젝트에 기초한다. 생태학적이고 진화적인 정황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인간과 하나님이 의존적 관계에서 상호의존적 관계로 바뀌는 것을 뜻한다. 세상의 연인이신 하나님은 세상을 귀하게 여기고 세상의 상처가 치유되고 피조물들이 자유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시며, 친구이신 하나님은 성인이 된 우리에게 그 일의 동료가 되길 요청하신다.

 

친구 하나님의 활동 : 지속    친구 모델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임마누엘이자 동무, 곧 어떤 상황에서든 지속적으로 우리와 동행하는 분이라고 말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지속자 하나님을 묘사하기 위해 성령 모델을 채택해 왔지만, 생태학적 핵 시대에는 공동의 선을 위해 협력하는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친구'의 모델이 지속자 하나님을 더 낫게 표현할 수 있다. 지속자 하나님의 사역으로 형성된 공동체는 신적 현존 안에 서 그 현존과 함께하면서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공유하는 기쁨으로 충만한 공동체이며, 그 범위는 타자들과 아웃사이더들에게까지 확대된다.

 

친구 하나님의 윤리 :  동행    예수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몸인 피조계를 사랑하고 치유하려는 공동 비전에 의해 연합하고, 이를 위해 하나님과 타자들에 대한 상호 책임을 자발적으로 짊어지려는 모든 타자들과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이 모델에서 하나님과 인간은 모두 세상의 친구들이며, 이 친구관계는 하나님과 개별 인간들의 양자관계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결합한 모든 존재 사이의 관계다. 이렇게 전 우주적으로까지 포괄되는 타자들에 대한 보살핌을 수행하는 공동체의 사역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은 "동행"이다. 

 


결론


 

어머니 · 연인 · 친구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창조자 · 구원자 · 지속자의 범주와 일치하며, 이는 이 이름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가장 오래되고 신성한 이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몸인 어머니 · 연인 · 친구로서의 하나님은 세상을 초월하는 동시에 세상 속에 깊이 내재한다.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서 만물의 존재를 부여하는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보여주고, 세상을 고귀하게 여기고 성육신을 통해 세상과 일치하는 에로틱한 사랑은 하나님의 내재성을 보여준다. 우리가 그려온 구원의 비전 - 죄와 악으로 인해 갈라지고 분리된 원초적 통일성이 다시 온전해진 후 만물이 둘러앉아 벌이는 친구들의 축제 - 는 하나님의 세 이름에 의해 풍부해지고 충만해진다.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만물이 참여하는 기쁨의 축제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지의 여부는 우리가 아름답지만 부서지기 쉬운 지구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에 달려 있다. 



개인적인 단상



1.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자유롭고 독창적인 신학적 사유를 가능하게 한 저자의 신학 방법, 그중에서도 신학 언어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였다. 저자는 성서의 언어까지를 포함한 신학 언어의 본질이 존재와 이름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고 전제하는 유비가 아니라, 알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하려는 은유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신학이란 유비의 언어로 쓰여진 권위 있는 경전에 대한 훈고내지는 해석학이라기보다, 우리 시대에 적합한 은유들과 모델들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재신화화하는 발견적 구성 작업에 가깝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이나 아버지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성서적 이미지도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이고 고정적인 하나님 이름의 은유가 될 수 없으며, 유비적 신학 언어를 이용해 만든 고전적 교의학의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물도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적실성을 상실하면 과거의 유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2, 저자는 이러한 은유 신학울 우리 시대에 적용해 인간이 세상을 멸망시킬 힘을 갖게 된 생태학적 핵 시대에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할 뿐 문제 해결의 능력은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가부장적이고 군주신론적인 전통적 하나님 은유는 그 적실성을 상실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자신의 피조물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면서 그들 모두를 완성으로 이끌기 위해 성인이 된 인간과 협력하는 어머니, 연인, 친구라는 새로운 모델이 우리 시대에 더 적합한 하나님의 은유라고 강조한다. 전통적인 신론과 구원론을 포함한 고전적 교의학의 전 영역을 흔들어대는 저자의 이런 생각은 꽤나 급진적으로 들리지만, 이는 어느날 갑자기 한 신학자의 머리에서 탄생한 몽상이 아니라 모두 2000년 기독교 역사의 깊고 풍성한 샘 어디에서인가 길어 올린 신학적 담론들이다. 내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해서 지금까지 기독교 전통 안에 한번도 있어본 적이 없던 현대주의/자유주의적 사고이거나 급진적 이단일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거나 매도하는 일은 심각한 무식과 교만의 소치일 수 있다.


3. 저자의 신학적 사유는 특정 신학자의 저술이나 특정 신학 전통을 담고 있는 도그마야말로 모든 시대와 문화에서 적실성을 가지는 절대 진리에 가깝다고 믿는 일부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에게 당혹과 분노의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정교하고 완벽한 건축미를 자랑한다고 해도, 모든 그리스도인이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반드시 수백년 전에 만들어진 특정 양식의 신학적 건축물 안에서만 거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연 적절한 일일까? 오히려 우리는 과거의 건물은 위대한 유산으로 보존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상찬하되, 그 가운데 꼭 필요한 지혜만을 취해 우리의 시대와 환경에 잘 맞는 좀 더 편리하고 아름다운 '새 집'을 만들어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의를 추구하기 위해 교리를 바꾸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라는 팀 켈러의 생각이 아니라, “모든 시대는 나름의 신학과 문화적 표현을 가져야 하며 이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일이자 기독교를 재번역하는 끊임없는 과정이라는 앤드류 월스의 정신이 아닐까?



* 저자가 본문이나 각주에서 직접 인용한 신학자들 중 대표적인 사람들을 살펴보면 어떤 저자들과 신학적 담론들이 맥페이그의 생각을 빚어왔는지 알 수 있다. 동방 신학의 전통인 부정 신학’(via negativa)신화(heosis)로서의 구원’, 세상의 질문에 대해 신학이 대답하는 폴 틸리히의 상관관계법’, 통전적이고 포괄적인 구원의 비전을 제시한 로즈매리 류터의 생태여성신학’, 하나님은 힘이 아니라 부드러운 설득을 통해 일하신다는 존 캅의 '과정신학', 핵 대학살에 의한 종말의 능력이 인간의 손에 주어졌다는 고든 카우프만의 핵 시대의 신학성인이 된 인간은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본회퍼의 성인된 세계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 폴 틸리히, 위르겐 몰트만, 도로테 죌레, 엘리사벳 피오렌자, 필리스 트리블, 떼이야르 샤르뎅, 존 도미닉 크로산 같이 이런 부류의 책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이름들뿐 아니라, 대체로 부정적 인용이긴 하지만 안더스 니그렌이나 헨리 나우엔 심지어는 C.S. 루이스의 이름까지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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