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 기독교/교의 .변증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헬무트 틸리케 지음, 박규태 옮김, IVP 펴냄)

by 서음인 2019. 4. 4.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나치 정권에 항거하다 해직됨으로서 행동하는 신앙과 양심을 보여주었던 기독교 윤리학자이자 독일의 현대 신학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복음적이며 종교개혁 사상의 전통에 섰던 교의신학자였던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 1906~1986)가 신학을 처음 공부하는 젊은이들에게 주는 조언을 담은 작은 책이다


헬무트 틸리케 – 종교개혁적인 성령론적 신학을 쓴 김영한 교수에 따르면 그는 젊은 시절 호흡장애를 유발하는 갑상선 질환으로 인해 인간 이성과 실존의 한계상황에 직면했으며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과량의 약을 복용한 후 병상 침대 맞은 편에 있던 십자가의 예수 상을 바라보면서 기적적인 치유가 이루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그리고 그의 신학은 이 치유사건을 통해 강단 신학에서 교회 정위적이고 신앙 우위적이며 인간 고통과 영성에 관련된 성령론적 신학으로 바뀌었으며한편으로는 기독교의 전통 교리를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현대적인 상황에 관련지음으로서 그만의 독특한 복음주의 교의학과 윤리학을 체계화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살펴보면 이 책은 단순히 2을 앓고 있는 초보 신학생들에게 거장의 반열에 오른 선배가 주는 애정 어린 충고를 넘어, 틸리케의 신학함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안내서이자 그의 신학을 압축된 형태로 담고 있는 좋은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고 개인적인 단상을 덧붙이도록 한다.


 

신학에 대한 평범한 신자들의 회의 경험과 논리

 

교회 공동체의 평범한 신자들은 믿음에 더하여’ 신학이라는 특별한 무기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회의를 가지며, 이는 그들의 경험과 ‘논에 그 논거를 두고 있다.

 

경험에 근거한 회의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학생은 흔히 살아 있고 자유로우며 편안한 평신도들의 신앙적 대화에 끼어들어 모든 것을 망치는 추상적 관념이라는 경악스러운 마비 주사를 찔러 넣곤 한다신학이 다루는 문제들은 훌륭한 신학자들의 수백 년에 걸친 치열한 투쟁과 신앙적 노력 그리고 진지한 영적 체험이 그 배후에 자리하고 있지만, 젊은 신학도들은 그들이 이제 막 배우고 이해함으로서 '간접 체험'하기 시작한 신학적 관념들을 스스로의 체험이거나 참된 신앙이라고 착각하기 쉽다그러나 그들에게서 '진리'와 반드시 동반되기 마련인 '사랑'을 발견하지 못한 평신도들은, 그들이 안다고 여기는 것이 실상은 한때 영적이었던 것의 겉껍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간파한다기독교 신학이 말하는 '진리'란 바로 하나님의 사랑하나님의 낮아지심하나님이 찾으실 뭇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아직까지 신학적 변성기에 있는 젊은이들이 단지 신학을 전공한다는 이유만으로 공동체 앞에 가르치는 자로 나서서는 안된다

 

‘논에 근거한 회의   평범한 신자들은 믿음을 떠받치기 위하여 학문적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믿음에 이해 가능성이나 합리성 같은 인간의 판단 기준을 들이댐으로서 오직 성경이 약화되고 성경을 연구하는 데 세상 지혜를 주된 판단 기준으로 우선시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 있다그러나 ‘영원한 운명'과 관련된 '조건 없는 믿음은 학문 연구의 변화무쌍한 결과에 의존하거나 좌우되지 않으며성경 비평은 성경의 증언이 가진 통일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여러 증인들이 들려주는 다양한 음성의 조화와 그 내용의 충만함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았다그럼에도 복음서 본문을 믿음에 대한 증언이 아닌 전기나 역사 기록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 근본 의도를 오해하는 것이며신학의 학문성은 믿음에 의지하지 않는’ 연구 영역을 신학 연구 속에 포함시키려는 방식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신학은 자신을 깊이 성찰한 증언의 형태로 이해할 때에만 완전한 의미의 객관성을 가지게 되며신학에 들이는 모든 수고는 그 자체로 믿음 행위에 포함된다.

 


교의학은 무엇이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교의학은 체계를 세우려는 학문 분아로 계시 전체를 다루며계시의 세부 내용들을 전체 계시 속에서 각각 어울리는 위치에 배정하려 하기에 전적으로 반 분파주의적이다그리고 살아 있는 교의학은 종교개혁 시대와 정통 시대의 텍스트를 반복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언제나 시대가 던지는 질문을 통해 생산적인 자극을 얻는다건축물에 비유할 수 있는 교의학의 체계는 그 구조가 설득력이 있어야 하고건설 과정에서의 논리를 드러내 보이며고상한 심미적 자극을 받을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어떠한 훌륭하고 감명 깊고 신학사상이라 할지라도 그대로 믿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교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자신이 '2인칭'으로 생각하기보다 '3인칭'으로 생각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지는 않는지말씀을 내게 주어진 말씀으로 읽지 못하고 단지 힘써 주해해야 할 대상으로만 읽게 되지는 않는지 항상 경계해야 한다신학은 신성한 신학이 될 수도 마귀의 신학이 될 수도 있으며신학 사상의 복과 화는 신학을 하는 사람의 마음즉 그가 영의 사람인지 그의 신학이 '2인칭'에 정위해 있는지 그것이 기도에서 시작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신학 작업이 이뤄지는 것과 동시에아직 완전한 형상을 갖추지 못한 신학이 지속적으로 자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는 활기찬 성경공부 및 공동체와의 교제가 꾸준히 이어지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다. 교의학 강의실은 그리스도인 학생들의 교회 공동체가 있는 곳이다. 



개인적 단상

 

1. 정식으로 신학을 전공한 적이 없는 나는 이 책이 상정한 1차 독자가 아니며따라서 내용에 대해서도 왈가왈부할 처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지금까지 37년의 세월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고 철든 후로는 신학과 관련된 책들을 꾸준히 읽어 온 셀프 아마추어 신학도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가진 신학함의 자세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제기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2. 저자는 교의학 강의실은 그리스도인 학생들의 교회 공동체가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신학이 신학교의 강단에만 머물러서는 안되며 반드시 교회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틸리케 신학의 교회 중심성을 잘 보여주는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한가? 틸리케가 신학 작업을 수행했던 20세기 초중반의 독일과 달리기독교가 문화의 심층에 깔려있지도 않고 교회가 모든 사람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계 맺고 있지도 않은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교의학 강의실이 신학교나 교회 공동체라는 영역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기독교가 외래 종교이자 소수종교인 우리의 현실에서,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수행되는 신학 어떻게 기독교와 어떠한 접점도 가지지 않은 세상을 향해 효과적으로 증언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가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의 언어로 구성된 진리를 일방적으로 선포하거나악하고 타락한 세상과 철저히 분리되어 구별된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이면 충분한가오히려 과학시대이자 포스트모던 시대인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우리 신학의 강의실은 과학의 자리타종교의 자리무신론의 자리까지 넓어져야 하는 것 아닐까?

 

3. 틸리케는 어떤 신학이 하나님의 신학인지 마귀의 신학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신학을 하는 손과 마음에 달려 있으며성경 본문을 전기나 역사 기록으로 간주하는 것과 같이 믿음에 의지하지 않는’ 연구를 통해서는 신학의 객관성과 학문성이 담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한 마디로 믿음’ 없는 신학은 참 신학이 아니라는 뜻이겠다그런데과연 그럴까오히려 우리는 교회사가 야로슬라브 펠리칸을 따라 오늘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전 교파 및 비신앙의 눈으로’ 성서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인류는 성서의 일시적인 소유자이자 종신 세입자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그리고 만일 하나님이 단지 '기독교의 수호신'이 아니고 '온 세상의 주'시라면, "모든 진리는 결국 하나님의 진리로 수렴된다고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그렇다면 기독교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의 과제는 그가 서 있는 자리가 강단이든 교회든 세상이든신앙의 자리든 종교성의 자리든 비신앙의 자리든지적인 용기와 엄밀성을 가지고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최선을 다해 탐구하는 것 아닐까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신학인지 마귀의 신학인지 결정하는 일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손과 마음에 맡겨 드려야 하는 것 아닐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