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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과학

개혁신학 vs 창조과학 - 개혁신학으로 본 창조과학의 신학적 문제 (윤철민 지음, CLC 펴냄)

by 서음인 2016. 5. 27.

1. 지구의 나이를 6천년으로 보는 창조과학, 혹은 젊은 지구 창조론을 지지하는 폴 넬슨과 마크 레이놀즈는 창조와 진화에 관한 세 가지 견해 (폴 넬슨 외 지음, IVP 펴냄) 라는 책에서 자신들의 견해가 2등급 과학과 1등급 성경해석학의 조합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학을 전공한 목회자인 저자에 의하면 창조과학은 성경에 대한 극단적인 문자적 해석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라는 특별한 신학적 입장에서 나온 부산물에 지나지 않으며, 과학이 종교의 시종으로 전락하면서 과학과 종교가 함께 질이 떨어진 2등급 성경해석+2등급 과학의 조합에 불과하다. 또한 이렇게 성경에 대한 문자주의적인 해석과 전천년설에 근거한 예언 해석의 어울리지 않는 만남인 창조과학은 성경에 대한 문법적 역사적 신학적 해석을 강조하는 개혁주의 신학과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저자는 전통적 개혁주의의 입장에서 보자면 젊은 지구 창조론보다는 나이든 지구 창조론이나 지적 설계와 같은 다른 옵션들이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2. 저자에 의하면 창조과학은 특정한 성경본문에 관한 독특한 해석적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그중 어떤 것도 개혁주의적 신앙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1) 저자에 의하면 타락 전에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까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불사했으며, 그들에게는 채식만이 허용되었다는 창조과학의 핵심적 주장 (네페쉬 교리) 은 칼빈, 벌코프, 바빙크, 후크마를 포함한 어떤 개혁신학자의 지지도 얻지 못한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창조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이들 개혁신학자들을 왜곡해서 인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2) 창세기의 족보는 연속적이고 빈틈없는 연대기로 기록되었다는 창조과학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모든 권위 있는 창세기 주석들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처럼 성경의 족보는 신학적 목표에 맞추어 편집된 축약된 족보이며 연대기로 사용하도록 의도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심지어 이러한 사실은 모리스 같은 대표적 젊은 지구 창조론자도 동의하고 있지만 한국에 번역된 그의 유명한 책 창세기 대홍수 (휘트콤/모리스 지음, 성광문화사 펴냄) 에서는 이 주장을 담은 부분이 번역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누락되어 있다고 폭로한다. (3) 한자는 대홍수 이후에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 중국에서 만들어졌으며 창세기의 신앙을 담고 있다고 하는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점복과 같은 고대인의 주술에서 유래한 갑골문자의 역사적 기원을 무시하고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입장에서 암호를 풀듯이 한자를 해석하는 잘못된 문자적 해석의 전형적인 예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3, 한국에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믿는 것은 곧 젊은 지구 창조론을 믿는 것이며, 젊은 지구를 믿지 않으면 모두 자유주의 신학이나 진화론과 타협한 것이라는 마니교적 흑백논리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상태의 창조과학은 그들 스스로가 고백했듯이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과학적 기반이 상당히 허약한 2등급의 과학이론일 뿐이며, 솔직히 말하자면 제대로 된 과학이론이라기 보다는 유사과학 내지는 신학적 도그마에 가까와 보인다. 또한 그들이 1등급이라고 주장한 성경해석 역시 저자에 의하면 개혁주의적 신앙과는 전혀 양립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근본주의적인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나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의 성경해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교단과 그 교인들이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을 대변하는 창조과학의 시작과 발전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저자의 입장인 개혁주의가 창조-진화 논쟁과 관련하여 유일하게 올바른 신학적 기초일 수는 없으며,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주장하는 나이든 지구 창조론 보다 창조적 진화론 창조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선택할 수 있는 더 훌륭한 옵션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에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4. 어쨌든 한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젊은 지구 창조론이 유사과학적인 도그마라는 혐의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과학 이론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1) 자신들의 주장이 근거하고 있는 신학적 입장에 대한 정확한 성찰 및 반성과 (2) 강연장에서보다는 연구실에서 일반 대중보다는 과학자 사회를 상대로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려는 노력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해 보인다. 일반 크리스챤 대중이 젋은 지구 창조론을 주장하는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그 권위를 인정해주는 이유는 그들의 고결한 신앙이나 탁월한 신학적 통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과학 분야의 학위'라는 라이센스 때문이 아닌가?  '과학'의 권위를 빌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단체가 제대로 된 과학적 탐구와 검증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 과학계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유사과학적 도그마를 마치 기존의 이론들과 경쟁하는 정상적인 과학 이론인양 선전하는 것은, 오늘도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이라는 책을 정확히 탐구하기 위해 성실하고 정직하게 분투하는 수많은 과학자들을 심히 욕보이는 일일 뿐 아니라, 지적 사기 내지는 거짓 증거의 혐의에서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행위다.  


5. 만약 창조과학자들이 각자의 전공 분야에서 공신력있는 논문을 통해 동료 과학자들과 소통하며 자신들의 주장인 '젋은 지구'를 입증하려는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한 채, 지금처럼 대중을 상대로 한 선전에만 열을 올리거나 자신들의 리그에서나 통용되는 허접한 논문들을 배설하면서 스스로의 임무를 다했다고 자위한다면, 창조과학은 저명한 복음주의 역사가 마크 놀이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마크 놀 지음, IVP 펴냄) 에서 비판한 바 “복음주의 지성의 재앙” 이라는 오명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추가  최근 보수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고신 교단에 속한 학생선교단체인 SFC에서 창조와 관련해 '개혁주의 정신과 어긋나는' 창조적 진화론을 주장하는 서울대 우종학 교수를 수련회 강사로 섭외했다는 이유로 담당간사를 사퇴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고신 교단은 젊은 지구 창조론의 성경 해석학인 극단적 문자주의를 지지하는가? 그리고 그런 극단적 문자주의는 그들이 그렇게도 물고 빠는 "개혁주의"의 정신에 부합하는가?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란 복음주의에 지성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라고 일갈했던 복음주의 역사학자 마크 놀의 탁월한 통찰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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