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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과학

오리진 - 창조, 진화, 지적설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들 (데보라 하스마 외 지음, IVP 펴냄)

by 서음인 2016. 5. 28.

1. 창조-진화 논쟁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논쟁이 창조과학자들이 주장하듯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단순한 대립이 아니며, 과학과 신학-해석학 그리고 과학철학과 관련된 여러 이슈들이 다양하게 얽혀 상당히 복잡하게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따라서 이 주제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논쟁 전체의 얼개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안내서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무신론 기자, 크리스쳔 과학자에게 따지다 (우종학 지음, IVP 펴냄) 가 이 논쟁의 전체적인 지형도를 파악하기 위한 최상의 입문서라면, 이 책 오리진은 조금 더 나아가 중요한 논쟁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특정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들에 대해서도 지면을 할애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2. 성경과 자연이라는 두 종류의 계시를 기록한 저자는 한분 하나님이시기에 원칙적으로 그 둘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성경과 자연 사이에 모순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인간이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인 신학(성경해석) 과 자연을 해석하는 방식인 과학(자연해석) 중 어딘가에서 잘못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영역에서만 그 존재를 드러내시는 틈새의 신(God of the gap) 이 아니며, 현재의 과학이 설명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모두를 주관하며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셨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특정한 창조이론을 믿는 것이 구원에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며,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비방하거나 정죄해서는 안된다.

 

3. 천지창조에 대한 견해는 크게 창세기 1장의 순서대로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다는 일치론적 해석과 그렇지 않다는 비일치론적 해석으로 나뉜다. 이중 일치론적 해석의 대표격인 젊은 지구 창조론혹은 창조과학은 1900년 초반 미국의 근본주의 운동과 함께 대중화된 이론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적절한 과학적 검증과정을 거치치 않았거나 이미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가설들을 근거로 주류 과학을 비판하는 등 과학적 성실성의 부족을 지속적으로 지적받아 왔다. 한편, 다양한 비일치적 해석들은 성경은 과학교과서가 아니기에 창조에 관한 성경구절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우주나 생명의 기원과 관련된 현대과학의 발견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만, 자칫 충분한 연구 없이 과학적 발견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본문을 비유적으로 해석하려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4. 천문학을 포함하여 각기 독립된 다양한 현대과학의 발견에 의하면 우주는 적어도 약 120억 년 전에 빅뱅이라 불리는 대폭발을 통해 창조되었으며 지금도 계속 팽창하면서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또한 현재 우리 우주의 팽창률이나 중력, 물리력, 핵반응률을 포함한 여러 변수들은 생명체가 살기에 가장 적합하도록 정교하게 미세조정(fine-tuned)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우주의 물리력과 원자의 속성들은 관측 가능한 우주 공간에서 모두 동일하며 이것은 하나님이 매번 다른 초자연적 기적을 통해 우주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규칙적인 자연적 과정이라는 아름다운 체계를 통해 창조를 이루셨음을 암시한다.

 

5. 진화론이란 (1) 모든 생물종이 자연선택과 무작위적 돌연변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2) 모든 멸종한 종과 지금까지 생존하는 종들에게 공통조상이 있었고, (3) 수백만 년 동안의 진화 메커니즘을 통해 새로운 종이 탄생해 왔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진화론은 화석, 비교해부학, 생물지리학, 유전학과 같은 상호 독립적인 현대과학의 다양하고 방대한 증거들에 의해 뒷받침되어 있다. 그러나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과 점진적 창조론자들은 과학적 증거가 진화론을 뒷받침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일련의 기적들을 통해 생물종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창조론적 진화론자들은 성경의 가르침은 진화론과 배치되지 않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과학적으로 잘 확립된 모델인 진화론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하나님이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다른 자연적 과정들을 통해 일하시는 것처럼 생물학적 진화과정을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둘은 진화론을 이용해 창조자는 없으며 인간 존재의 목적도 없다고 주장하는 진화주의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반대한다.

 

6. 지적설계 이론은 (1) 우주의 기본 변수나 물리학의 기본 법칙들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도록 미세조정(fine-tuned) 된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과 (2) 생명체는 진화론에 따라 진화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에 근거하여 창조주의 존재를 논증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미세조정된 것처럼 보이는 우주의 존재가 신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아니며,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은 논리적으로도 오류가 있을 뿐 아니라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형이상학적, 혹은 종교적 논증일 뿐 이라고 비판한다. 만약 하나님이 생물학적 복잡성을 통해 만물을 창조하고 유지하시기로 결정하셨다고 가정한다면 진화와 지적설계는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 .

 

7. 인간의 기원 대해서는 (1) 하나님이 기적을 통해 다른 생물들과 완전히 구별되며 공통조상을 가지지 않는 인류를 창조하셨다는 특수 창조 (2) 동물과의 공통조상으로부터 탄생한 생명체를 기적적으로 변화시켜 최초 인류로 창조하셨다는 기적적인 변화 (3) 하나님이 공통조상과 진화의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진화적 창조의 세 이론이 있으며, 화석증거나 동물과의 유전적 유사성, 인류 집단 내의 유전적 다양성 등 여러 과학적 증거들은 인류가 동물과 공통조상을 가지며, 한 쌍의 인류가 아닌 대규모 집단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몇몇 학자들은 유전자 수준에서 입증되는 노화나 세포자살의 존재는 타락 전에도 동물이나 인간의 생물학적 죽음은 하나님이 설계하신 자연적인 과정이었으며, 에덴에 있는 생명나무의 존재는 인간의 불멸이 하나님의 개입을 필요로 하는 잠재적 선물이었음을 암시하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8. 아담과 하와에 대해서는 (1) 약 1만 년 전에 특별한 방법으로 창조된 최초의 인간들이며, 오늘날의 모든 인류는 그 두 사람의 후손이라는 최근 조상설 (2) 하나님이 약 15만 년 전에 점진적인 방법이나 진화를 통해 인간을 창조하신 후 1만 년 전 그들을 대표하는 한 쌍을 택하셨다는 최근 대표설 (3) 하나님이 자연법칙을 통해 현생인류 전 단계의 원시인류를 창조하셨고, 이후 약 15만 년 전에 그중 한 쌍을 기적을 통해 현생인류로 변화시키셨다는 한 쌍의 고대 조상설 (4) 하나님이 약 15만 년 전에 진화를 통해 인류를 창조하셨고 그중 한 집단을 통해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고대 집단 대표설 (5) 하나님이 15만 년 전에 진화를 통해 인류를 창조하셨으며, 타락은 여러 곳에서 다양한 개인과 집단이 하나님을 배신한 것이라는 상징설 등이 있으며, 현재로서는 이들 중 과학해석과 성경해석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이론은 없다.

 

9. 저자들은 아마도 창조에 관한 다양한 신학적 견해들과 과학적 증거들을 고려할 때 공통조상을 인정하는 점진적 창조론이나 창조적 진화론이 현재 상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세계에 대한 경이의 마음으로 그분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저자들의 이 결론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리고 이 책에 나와 있는 다양한 신학적 과학적 주장들이 낯설거나 충격적이라면 '과학주의'나 '인본주의' '자유주의'와 와 같은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리기 전에, 혹시 자신의 무지와 편협함으로 인해 진리의 이름으로 형제를 정죄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번쯤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다음과 같은 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뜻을 알려준다고 하면서 불신자들에게 창조에 대한 비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수치스럽고 위험한 일이다. 무지한 한 개인이 당할 수치가 걱정되어서라기보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성경저자들 또한 그 무지한 사람과 똑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고 오해하여 성경저자들까지 몽매한 사람들로 비판받고 거부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2017년 8월의 단상 요즘 "황우석 사태"나 "창조과학"과 관련된 분들이 과학기술 분야의 요직에 자꾸 거론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창조과학"이 과학의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한참 부족한 유사과학(pseudoscience) 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분들의 "신앙적"신념을 존중해드릴 용의는 있습니다. 그러나 빅뱅이나 진화와 같이 현대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컨센서스에 대해서조차 전혀 수긍할 생각이 없는 "유사과학" 을 신봉하시는 분들이 과학기술과 관련된 공직을 탐하는 것은, 자신의 신앙과 양심을 속이는 부정직한 행위이자 공적으로는 일종의 지적 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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