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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의사!

티내는사람과 삼잡이 할머니

by 서음인 2020. 11. 12.

감이 노랗게 익으면 시골병원 원장 얼굴도 노래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진 1) 추수다 수매다 해서 시골이 한참 바빠 환자가 뚝 끊기는 계절인 요즘의 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누렇게 뜬 얼굴로 하염없이 환자를 기다리던 제 진료실로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눈에 뭐가 들어간 것 같이 거북해 클리닉을 찾으셨다고 합니다. 눈꺼풀을 뒤집어 검사해 보니 결막에 흔히 생기는 결석이 발견되어(사진 2), 가볍게 제거해 드리고 나니 바로 문제 해결! 감사를 표하면서 진료실 문을 나서던 환자가 굳이 안해도 될 말 한 마디를 덧붙이십니다. “자꾸 껄끄러운 느낌이 들고 티가 들어간 것 같아 마을의 티 내는 사람에게 갔는데도 해결이 안 되서 할 수 없이 원장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에 시원하게 해결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환자에게 저는 티 내는 사람이 치료에 실패하니 혹시나 해서 찾은 두 번째 옵션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티 내는 사람!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입니다. 예전에 시골 마을마다 한 분씩 계셔서 안과 진료(?)를 담당하던 나이 많은 여성들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 제가 처음 시골에서 진료를 시작했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환자들에게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말입니다. 환자들에게 들은 바로는 이분들이 눈을 후후 불거나, 혀로 핥거나, 특별하게는 눈에 깨를 넣는 등의 방법을 통해 귀신같이 눈에 들어간 티를 낸다고합니다. 처음 두 가지 방법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깨를 넣어서 어떻게 티를 낼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입니다. 실제로 티내는 사람들이 넣은 깨가 눈에 들어간 상태로 찾아왔던 환자들이 있었는데(사진 3), 이분들의 말에 따르면 깨는 눈에 들어가도 그다지 심한 이물감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마도 눈에 들어간 깨가 심한 이물감을 유발하지는 않으면서도 눈을 자극해 눈물이 나게 하는 효과를 이용해 눈 안에 들어간 이물을 제거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티 내는 사람과 거의 동일한 역할을 담당하던 분들이 삼잡이입니다. “이라는 것이 눈에 생겨 충혈을 유발하는 익상편이나 검열반 같은 변성질환을 지칭하는 말이니(사진 4), 삼잡이란 눈에 생긴 염증이나 충혈을 잡는사람이라는 뜻이겠습니다. “삼잡이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도 생각나는 환자 한 분이 계십니다. 태어나고 안과에는 처음 오신다는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였는데 진료해보니 백내장도 심하고 염증도 많아 이렇게 눈 상태가 안좋으신데 어떻게 지금까지 안과를 한번도 안오셨어요라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할머니 대답이 지금까지 눈이 불편할 때마다 이웃에 사는 삼잡이 할머니에게 치료받으며 잘 지내셨다고 합니다 .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안과를 찾아올 생각을 하셨냐고 또 물으니, 얼마 전에 그만 그 신통한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내키지 않는 걸음을 했다고 대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지역에서 나름대로 소문난 안과의사라고 자부하던 저는 용한 삼잡이 할머니가 돌아가시도록 그환자에게 단 한번의 간택도 받지 못한 변변치 않은 치료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라도 간택을 받았으니 기뻐해야 했던 걸까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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