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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단상 기고/단상 일반

'동료 시민' 조국과 강남순 교수의 코즈모폴리터니즘

by 서음인 2021. 6. 14.

1. 코즈모폴리터니즘의 가장 기본적 전제는 우리가 ‘나-너’ 또는 ‘우리-그들’의 경계를 넘어 타자를 ‘우주적 시민’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은 그가 권력의 정점에 있든 사회의 주변부에 존재하든 내부자든 타자든 사회 안에 그 누구도 박탈할 수 없는 '세계시민'의 자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강남순 교수가 조국씨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면 그건 조국의 (또는 그로 대표되는 세력의) ‘권력’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멸문지화의 수준으로 처참하게 도륙당한 ‘동료 시민’ 조국에 대한 연민 때문일 것이다. 강남순 교수의 '코즈모폴리터니즘'은 하이에나떼에 둘러쌓인 ‘동료 시민' 조국에 대한 옹호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2. 적어도 이 사건에서 조국씨와 그 가족은 법과 공정을 참칭하는 사악한 정치검사 무리와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된 수구 족벌언론 및 원한감정(ressentiment)에 사로잡혀 피에 굶주린 폭민들에 의해 사람으로서의 성원권을 박탈당하는 수준의 린치를 당했다. 나는 대중의 눈앞에서 그렇게 처참하게 유린당하는 사람을 보며 어떠한 연민의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이 근엄한 목소리로 짖어대는 ‘정의’나 ‘공정’ 따위에 대해 단 한 터럭의 관심조차 줄 생각이 없다. 아렌트의 말마따나 사태의 본질을 파악할 ‘머리’가 없는 자들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이 부재한 자들은 이미 ‘절대악'의 충직한 동조자요 부역자요 담지자다.

 

3. 나는 한 사람의 시민권을 그처럼 끔찍한 방식으로 유린하고도 감히 정의를 참칭하며 민주 공화국의 정신을 위협하는 사악한 세력들과, 실체적 진실에는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않은 채 자신들이 ‘찍은’ 대상을 어떻게든 악마화시키고야 마는 광기어린 폭민들에 대해 극도의 분노와 혐오를 느낀다. 적어도 ‘문명’과 '민주'를 기치로 내건 사회라면 어떠한 경우에도 조국씨 일가가 당한 것처럼 한 사람뿐 아니라 그 집안까지 철저하게 야만적으로 벌거벗겨지는 일이 일어나서도 안되며, 그런 권한을 가지는 집단이 존재해서도 안된다. 지금까지 조국씨가 당해 왔던 일을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정의'와 '공정'을 위해서라면 저 절대악과도 손잡을 수 있다고 여기는 자들이 있다면, 그가 바로 '파시스트'요 '절대악'이다.
 
4. ‘절대적 환대’의 원리에 근거하는 코즈모폴리터니즘은, 그가 누구든 무슨 죄를 지었던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있든 없든, 한 인간을 어떠한 이유나 명분으로도 그렇게 처참하게 벌거벗기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그런 사탄적 행위를 버젓히 자행하거나 그 악행을 당연히 여긴다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 사람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는 신의 자리로 올라서려는 참람한 신성모독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애초에 불가능할 뿐 아니라, 신마저도 최후의 순간까지 조심스레 유보한 채 봉인해두고 있는 있는 그 두려운 심판 말이다. 성서는 그렇게 신에게 속한 궁극적 심판권을 이 세상에서 휘두르려는 사탄적 개인이나 세력을 ‘적그리스도’라 부른다.
 
5. 그렇다면 우리가 이번 사태에서 목격한 것은 검-언-정이라는 세 개의 대가리를 가지고 절대자의 심판석을 강탈한 끔찍한 적그리스도의 얼굴과, 그들에게 짐승의 표를 얻은 후 기꺼이 그 절대악의 사냥개로 부역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악한 유사 파시스트 폭민들의 무리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것은 ‘법치’와 ‘공정’을 참칭하며 천국을 약속하지만 언제나 지옥만을 건설해 왔던 파시즘으로 뚫린 시커먼 아가리다. 마지막 날 모든 인류가 거룩하신 분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그들이 바로 조국씨 일가에게 들이댔던 그 잣대로 자신들의 비루함과 비참함을 마주하며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광경을 내 두눈으로 똑똑히 목도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이 글은 현 시점에서의 내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글이다. 이 글에서 펼친 내 생각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하지만,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향해 표출한 분노와 혐오라는 감정은 내가 인용한 강남순 교수의 ‘코즈모폴리터니즘’이나 내 정체성의 핵심인 기독교의 “이웃 사랑” 정신과 일치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은 아마도 이성이나 믿음을 통해 극복해야 하거나, 개성화 과정을 통해 자아에 통합되어야 할, 내 자아의 어두운 ‘그림자’일 것이다. 내 생각과 감정을 이렇게 솔직하게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내 그림자를 ‘극복’ 혹은 ‘통합’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다. 나중에 이 글을 보면서 내 감정과 인품의 미숙함을 자책하며 부끄러운 마음에 쥐구멍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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