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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

진료실에 차린 작은 음악실

by 서음인 2021. 10. 15.

(사진 1-3) 진료실에 꾸민 작은 음악실   이번 주는 클리닉에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일이 많이 생겨 독서든 글쓰기든 집중이 잘 안되네요. 책상 앞에 앉아 딴짓만 하다가 오늘은 안되는 공부 때려 치우고 진료실에 있는 제 CD 음반이나 소개해 볼까 합니다. 저는 젊었을 때부터 클래식 음반을 모아 다람쥐마냥 집에 잔뜩 쌓아 놓았습니다만, 클리닉에는 그 중에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개인적으로도 친근한 곡들 위주로 곡당 음반 하나씩만 가져다 놓았습니다. (사진 1-3) 보통 많이들 하는 대로 교향곡 - 관현악곡 - 협주곡 - 실내악곡 - 독주곡 - 종교음악 - 오페라 및 성악곡 순으로, 그리고 작곡가가 활동했던 시대 순서로 배열해 놓았습니다. 오페라 쪽은 잘 몰라서 좀 취약합니다. 

(사진 4-7)  한 곡당 한 음반   제 생각이나 신앙은 제 또래의 시민들이나 평균적인 그리스도인들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보수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볼 눈’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적어도 제 음악적 취향만큼은 ‘보수 정통’에 가깝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드물게 좀 튀는 선택도 있습니다만 그래 봐야 우물안 개구리 수준이고, 거의 대부분 많은 분들이 보편적으로 ‘명곡’이나 ‘명반’이라고 인정하는 카테고리 안에서 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남의 의견을 무턱대고 추종해서 고른 것들은 아니고, 제가 오랫동안 들어온 음반들 중 좋은 것으로 가져다 놓은 것은 맞습니다. 음악에 관한 한 제 취향이 이렇게 ‘보수 정통’에 고착된 이유는 대단한 이유나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익숙한 소리에서 떠나는 것을 싫어하는 ‘게으름’과 ‘열정 부족’ 때문입니다. 

(사진 8) 외면할 수 없는 탈락자들   진료실 CD 장이 좁아 ‘한 곡당 하나’에 끼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거나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음반들을 진료실 한편에 따로 모아 놨습니다. (사진 8) 포메리움이 연주하는 옛 크리스마스 노래들, 탈리스 스콜라스의 로마 실황공연, 힐리어드 앙상블이 부르는 빅토리아와 팔레스트리나, 피에르 앙타이가 쳄발로로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셰링의 바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헤레베헤의 바하 마태 수난곡, 칼 리히터가 연주한 헨델의 메시아, 칼 뵘의 모차르트 교향곡 40/41번, 마리오 주앙 피레스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길렐스의 캠프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라샬 사중주단의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 리흐테르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번스타인과 발터의 말러 교향곡들,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 구레츠키의 교향곡 ‘슬픔의 노래’ 같은 것들입니다.

(사진 9) 음반생활의 길잡이들    저는 클래식 입문 초창기에 주석을 고를 때처럼 여러 책을 참고해 가장 많은 분들이 ‘명반’으로 추천하는 음반을 위주로 구입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이 책들은 꾸준히 참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구색이 조금 갖춰지고 내공도 조금 쌓인 후로는 선호하는 연주자나 좋아하는 곡들 위주로 음반을 모았습니다. 제가 특별히 많이 모은 음반들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교회음악들인 팔레스트리나의 ‘교황 마르첼리 미사’나 바하의 ‘마태수난곡’, 헨델의 '메시아'와 모차르트의 'C 단조 미사' 같은 것들입니다. 이 놀라운 음악들이 보여주는 숭고하고 풍성하며 아름다운 기독교를, ‘반 이슬람’ ‘반 동성애’ 같은 왜소하고 추악한 괴물로 쪼그라뜨린 일부 허접한 바리새 율법주의자들에 대해 극도의 혐오와 분노를 느낍니다.

 

사진 1. 진료실 안 작은 음악실

 

사진 2. '한 곡당 하나'의 음반들

 

사진 3. 오랫동안 함께하고 있는 마란츠 오디오와 캐슬 스피커

 

사진 4. 음반 1

 

사진 5. 음반 2

 

사진 6. 음반 3

 

사진 7. 음반 4

 

사진 8. 외면할 수 없는 음반들

 

사진 9. 음반선정의 가이드가 되어준 고마운 길잡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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