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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

드럼 논쟁과 "교황 마르첼리 미사"

by 서음인 2017. 7. 26.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작곡가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1525~1594)의 "교황 마르첼리 미사", 서양음악의 걸작으로 꼽히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입니다. 대학다닐 때 처음 접한 후 너무 좋아서 한동안은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음반을 걸어놓고 다시 침대에 들어가 전곡을 다 듣고 학교에 가기도 했지요. 그런데 혹시 이 고색창연하게 들리는 노래가 당시로서는 새로운 방식이었던 다성음악을 교회에서 금지해야 하느냐의 문제로 시끄러운 논쟁이 벌어졌던 시기에 바로 그 논란의 방식으로 작곡된 노래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고요하고 단순한 단성음악의 형식에 익숙해져 있던 당대 성직자들에게 이 곡처럼 여러 성부가 독자적으로 번갈아가며 노래하는 다성음악곡들은 지나치게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을' 뿐 아니라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다'는 불평까지 들어야 했던 모양입니다. 

요즘 드럼을 쓰네 마네 하는 말이 페북에서 심심찮게 들리던데 뭔가 500년전의 이 논쟁과 비슷해 보이지 않습니까? 500년 후에 우리의 후손들이 드럼을 사용한 찬양을 들으면 혹시 이 노래처럼 고색창연하게 들리지는 않을까요? 그레고리안 성가에서 현대의 CCM 에 이르기까지 2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다채롭고 풍요로운 교회음악의 세계를 특정 시대와 특정 문화, 특정한 신학이라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 묶어 이리저리 재단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몇몇 분들의 행태가 제게는 좀 꼰대스럽고 편협하게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특정 음악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 음악의 형식이 아니라 완성도이며, 함부로 이런저런 잣대를 들이대며 간섭하기보다는 시간의 시험에 맡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R0_pz5j3k84?list=PLiJnN4bTWJ11rwiWOGI607hEhUqbn2x7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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