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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

편지의 이중창 그리고 야곱의 사다리

by 서음인 2016. 6. 1.

진료실이 한가한 오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을 꺼내어
영화 “쇼생크 탈출”에 나왔던 유명한 “편지의 이중창”을 들으며
영화와 음악에 대한 몇 가지 상념에 빠져 보기로 합니다.


주인공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에 나오는
‘편지의 이중창’ 을 들려주었을 때,
쇼생크 교도소의 수많은 죄수들은
마치 석상이라도 된 양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맙니다.


아마도 그들에게 이 아름다운 음악은
囚人의 현실에 길들여져서 삶이 아닌 생존을 강요당하는
그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그 무엇,
바로 꿈과 희망의 이름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음악이 그들에게 일깨운 것이
단순히 꿈 혹은 희망이라는 단어로만 표현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꿈이나 희망의 차원을 넘어
그 꿈이나 희망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그 무엇,
바로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영원과 초월에의 갈망을 보여 준다고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영원과 초월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뜬소문(rumour)으로,
혹은 거짓으로 여기는 세속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절대자(神)나 진리(道)라 불리든,
구원 혹은 Utopia 의 이름을 가지든,
존재의 유한성을 넘어서는 초월과 영원이 실재한다면,


오늘의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에 나오는
붕(鵬)의 초월을 향한 비상의 날갯짓이나,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Rudolf Otto) 가 말한
“거룩한 존재(das Heilige)” 와의 조우,
혹은 신학자 폴 틸리히가 역설했던
존재의 근거에 대한 “궁극적 관심”
과 같은 것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노래 “편지의 이중창”은
현실이라는 감옥 속에서 초월의 세계를 망각한 채
시간의 囚人으로 복역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영원의 세계에서 천사들이 보내는
하나의 초대장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12, 12)


 윌리엄 블레이크 作 "야곱의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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