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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

고난주간에 듣는 바하의 "마태수난곡"

by 서음인 2016. 6. 1.

마태수난곡은 마태복음서를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표현한 음악극으로 지금까지 작곡된 모든 기독교 음악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작곡자인 바하에게 다섯 번째 복음사가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위대한 음악을 듣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일단 전곡을 연주하는 데만 장장 세 시간 이상이 걸리는 대작이기에 전곡을 들을 시간을 낸다는 것 자체가 어렵고, 설령 큰맘 먹고 전곡을 듣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해도 세 시간 내내 온전히 이 음악에 집중하기란 매우 힘겨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일쑤였다. 결국 전곡을 듣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기껏해야 몇몇 좋아하는 곡들만 반복해서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10년 전쯤 일터를 지방으로 옮기게 되어 매주 장거리 왕복여행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길고 무료한 여행에 함께 할 좋은 동반자를 찾던 중, 마침 KTX 로 세 시간 이상 걸리는 여행길과 이 곡의 러닝타임이 거의 엇비슷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후로 이 음악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주일에 한 번씩은 내 여행의 동반자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10개가 넘는 상당히 많은 이 곡의 음반들이 내 손을 거쳐 갔고, 나름대로 선호하는 연주와 그렇지 않은 연주도 생겨났지만, 매니아들은 첫머리만 들어도 눈물을 줄줄 흘린다는 이곡은 나에게는 그냥 경건한 종교음악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지극히 평범한 주말, 여느 때와 같이 집으로 가는 KTX 에 몸을 싣고 습관적으로 CD 플레이어의 단추를 눌렀을 때 흘러나오는 이제는 익숙해진 이 곡의 첫 번째 합창인 "Kommt, Ich Trochter, helft mir klagen"의 서주를 듣는 순간, 마치 번개에 맞은 듯 한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리고 마치 '매니아처럼'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 내리는 것이 아닌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던 그 날의 기차여행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날 내가 경험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종교학자 엘리아데가 그의 책 "거룩" 에서 거룩한 존재의 나타남(聖顯 Hierophany) 이라고 표현했던 그 경험이었을까? 나는 예수님께서 그날 이 곡을 통해 나를 친히 만나주시고 그분의 고난을 가르쳐 주셨다고 생각한다.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그 날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이 위대한 음악과 함께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깊이 묵상해야겠다. (2011,4)


헤레베헤

리히터

아르농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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