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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훈련/성경연구단상

사무엘하(김구원, 홍성사) 2:1-32발제

by 서음인 2022. 9. 26.

3. 순종의 왕 (삼하 2:1-11)

 

다윗의 헤브론 이주 1-4a


정치공학적 이유 다윗은 남부 유다 출신인 아히노암*과 갈렙 지파의 수장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과 결혼함으로서 헤브론을 다스릴 정통성을 얻는다. 그리고 시글락을 거점으로 약탈 활동을 했을 때 약탈품의 일부를 유다 장로들에게 보낸 것에서 알 수 있듯(삼상 30:26), 오래전부터 유다 지방에 자신의 정치적 거점을 준비하고 있었다. 따라서 다윗이 사막의 시글락 요새에서 유다 지파의 중심 도시인 헤브론에 정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윗의 왕 됨: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결과 성경 저자는 다윗의 헤브론 이주를 정치적 계산의 결과가 아닌 하나님의 지시와 인도하심에 따른 행동으로 묘사한다. 다윗이 계속 하나님께 묻는 것은 그가 고난에 찬 광야 생활을 통해 매사를 하나님께 물어 움직이는 철저한 순종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음을 보여 준다. 순탄치 않은 다윗의 등극과정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자로 빚어지는 과정이었으며, 그는 고대 근동의 다른 왕과는 전혀 다른 순종하는 왕, 제한된 권력의 왕으로 준비되어 간다. 이러한 다윗의 순종은 그리스도의 ‘순종’의 그림자이다.

헤브론 정착의 구속사적 의미(3b) 헤브론은 아브라함을 포함한 여러 족장들이 살고 묻혔던 중요한 도시였다. 무엇보다 헤브론에는 아브라함 소유의 땅이 있었으며, 이는 헤브론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첫 열매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따라서 헤브론에 정착해 왕이 된 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열방에게 복 주시겠다는 아브라함 언약이 다윗 왕국을 통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참된 아브라함의 후손이자 다윗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다윗에게 기름부은 유다 사람들(4a) 왕에게 기름 붓는 권한이 선지자에게 있었음에도 기름붓는 주체를 유다 사람들이라고 명시한 이유는, 아브넬 장군의 개인적 의지로 왕위에 올랐던 이스보셋의 경우와 달리 다윗의 왕위 등극이 하나님 뿐 아니라 공개적인 백성들의 지지를 통해 탄생한 정치적 사건임을 받았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유다의 왕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당시 유다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만 여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비친족적 관료제를 근간으로 하는 왕정체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규모였으며, 따라서 다윗이 왕이 된 것은 향후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행위였다. 이는 유대인의 메시야로 오셨지만 온 세상의 메시야가 되시는 예수님의 구속의 비밀과 연결될 수 있다?

 

4. 이스보셋 왕국의 성립 (삼하 2:4-11)

 

길르앗 야베스인들과의 언약 2:4-7


길르앗 야베스인들과 충성서약 길르앗 야베스인들은 역사적으로 베냐민 지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왕으로서의 다윗의 첫 번째 행보는 (베냐민 지파였던) 사울 왕정의 강력한 지지 세력이었을 길르앗 아베스인들을 회유하는 것이었다. 다윗은 사울과 언약관계를 전제로 한 상호 의무(헤세드)로 묶여 있던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용사가 되어라”라는 말로 새로운 살 길을 모색하라고 말한다. 그러고 좋은 것(토바)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사울의 죽음과 함께 붕괴된 사울 왕국 대신 유다의 왕인 자신과 보호 조약을 맺기를 제안한다. 이러한 다윗의 호의는 정치적 의도 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실 은혜를 반영한다고도 할 수 있다?

 

마하나임의 이스보셋과 헤브론의 다윗 2:8-11


이스보셋 왕국이 생겨난 이유 사울의 삼촌이지 군대장관이었던 유명한 장군 아브넬은 이전까지 언급된 바 없었던 사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아들 이스보셋을*** 꼭두각시 왕으로 세운다. 그가 직접 왕이 되지 않은 이유는 불안한 왕국의 왕좌를 차지하는 대신 수렴청정을 통해 실리를 챙기기 위함이었다. 철저히 아브넬의 정치적 야심에 의해 탄생되고 유지된 이 왕국은 하나님에 의해 세워지고 백성들의 지지를 통해 세워진 다윗의 왕국과 대조된다.

수도를 마하나임에 이 왕국의 수도가 요단 동편 길르앗의 중심 도시인 마하나임으로 정해진 이유는 ① 요단 서쪽과 유다 지역을 블레셋과 다윗이 통치하고 있었고, ② 요단 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주적들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었으며, ③ 철광산이 있어 블레셋과 유다로 가는 철의 양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④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 다윗의 왕국이 세워진 헤브론이 언약의 연속성을 보여 준다면, “두 진영”이라는 뜻을 가진 마하나임은 그 언약이 어떻게 파기와 분열로 이어질지를 상징한다.

이스보셋 왕국의 지속 다윗(7년 6개월)과 이스보셋(2년)의 통치 시기가 서로 다른 것은 이스보셋이 왕이 되기 전 상당 기간 동안 사울 가문과 아브넬의 군대가 길보아 전투 이후 블레셋에 넘어간 영토의 수복을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로 이스보셋의 왕국이 탄생했음을 보여 준다. 학자들에 따르면 9절의 지명들은 이스라엘 왕국이 이전 영토를 수복해 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성경에는 그 기간 동안 다윗과 블레셋의 관계에 대해 명확한 언급이 없지만, 저자는 블레셋이 다윗을 자신의 봉신 정도로 여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한다. 블레셋이 다윗을 공격하는 것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긴 후였다.

5장. 남북 대립 (삼하 2:12-32)

 

헬갓삿수림 대리전 2:12-17


성경 저자는 기브온을 점령하기 위한 두 왕국 사이의 전투를 넬의 아들 아브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라는 대조적인 두 장군 사이의 관계로 환원시켜 서술한다. **** 기브온의 헬갓핫수림(돌칼의 밭)에서 조우한 두 군대는 아브넬이 먼저 제안한 ‘대표전’을 치르기로 동의하며 이는 결국 스물 네 명의 젊은 병사가 목숨을 잃는 결과로 이어진다. 성경 저자는 헛된 희생을 남긴 이 전투 이야기를 통해 전쟁 중에 벌어지는 인간 소외 현상을 비판하며*****, 앞으로 넬의 아들과 스루야의 아들들 사이에 벌어질 전투에서 승자가 없을 것임을 암시한다. 17절은 이어 벌어진 전면전에서 이날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다윗의 종”에게 패배했다고 서술함으로서 역사적 정통성이 다윗에게로 기울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이 이야기는 누구를 왕으로 섬기느냐에 따라 승리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아사헬의 죽음 2:18-23


젊고 유능한 장군이 베테랑 적장에게 도전하다 안타깝게 전사한다는 고대 사회에 널리 알려진 줄거리를 지닌 이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등장인물들의 전형성을 각인시켜 이후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핵심적 실마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젊고 민첩하며 용맹했지만 비타협성과 명예욕으로 무모하게 앞으로 돌진하던 스루야의 아들 아사헬은, 바로 자신이 믿던 힘과 속도 때문에 심리전과 변칙에 능한 노련한 전략가였던 아브넬의 창에 찔려 죽는다. 이는 스루야의 다른 아들인 요압이 다윗의 뜻을 어기고 아브넬을 암살했던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이 되는 동시에 아브넬의 암살에 다윗이 개입하지 않았음도 암시한다. 또한 이 이야기는 아브넬이 다윗 왕국의 2인자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을 남기기도 한다?

 

휴전과 귀환 2:24-32


요압과 아비새는 아사헬의 복수를 위해 아브넬을 추격했지만, 미리 언덕 정상에서 대기하던 노련한 전략가 아브넬은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휴전을 제안한다. 요압은 이를 수락하지만 동생의 사망으로 이어진 ‘놀이’를 먼저 제안한 아비새에게 전쟁의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한다. 아브넬과 요압이 각각의 왕국을 대표해 벌인 이 전투는 상처와 복수의 씨만 남기고 끝났으며******, 이는 인간 정치의 궁극적 실패를 보여준다. 요압이 아사헬의 시체를 베들레헴에 매장했다는 것은 이 실패를 해결할 분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임을 암시한다?

각주


* 아히노암은 북부 이스라엘에 위치한 이스르엘 사람으로 소개되며 이를 근거로 일부 학자는 아히노암이 사울의 아내인 아히노암과 동일인이라고 주장한다. 다윗이 사울의 아내를 취함으로서 쿠데타를 시도하였고 이에 실패하여 유대 광야로 도망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여호수아 15:55-56을 근거로 이스르엘이 유다 남부 도시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 레위인의 첩 사건으로 이스라엘과 베냐민 지파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에서의 에피소드(삿 21장), 암몬인들에 의해 공격당하던 길르앗 야베스를 사울이 구해준 사건(삼상 11:1-13),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전사한 사울의 훼손된 시체를 뒤찾아와 장사한 일(삼상 31:11-13) 등.

*** 저자는 그가 언급되지 않은 이유가 ① 본처 아히노암의 아들이 아니라 사울의 첩 리스위의 아들일 가능성과 ② 왕위 계승 후보자로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의외의 인물이었음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

**** 동생인 아사헬을 통해 투영되는 요압은 과격하고 폭력적이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절대 타협하지 않는 인물인 반면, 아브넬은 전략과 전술에 능하고, 협상과 정치의 지혜를 가진 인믈로 그려진다.

***** 각 진영의 대표가 12명인 것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며, 이는 이스라엘 왕위 계승을 위한 투쟁인 형제간의 살인행위임을 의식적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이 전쟁에서 아브넬 군대는 360명이 죽었고 요압의 군대는 20명이 죽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요압 군대의 일방적인 승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요압 군의 희생자 중에는 용맹하고 유능한 장수이자 요압의 친동생인 아사헬이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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