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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저서/믿묻딸 - 서평

주황 님 서평 및 올해의 최고 비소설

by 서음인 2023. 12. 5.

‘조용한 날들을 지키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주황’님 서평을 소개합니다. ‘믿음은 일상에 천국를 일구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제 책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에 대해 깊이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리뷰를 읽을때마다 더 나은 인간 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더 좋은 기독교 더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
초판 1쇄 발행 2023년 3월 24일
5쇄 발행 2023년 9월 20일
지은이 정한욱
펴낸곳 정은문고
펴낸이 이정화
디자인 원선우

모태 개신교 신자였다. 그랬던 내가 점점 교회 다니는 일과를 불편하게 여기게 됐다. 대학생 시절 본가를 떠나있을 때는 한 번도 교회 출입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너는 구원받았다고 믿느냐? 그렇다면 찬송가 89장, 샤론의 꽃 예수를 4절까지 불러라.’라고 훈육하신 할아버지를 대할 때마다 어린 나이부터 할아버지 얼굴에 내 얼굴을 맞대고 찡그리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기도를 20분씩 할 때마다 ‘그러지 말라고요!’라고 외치면 ‘이 사탄아, 저리 물러가라!’라고 날벼락처럼 외치는 소리가 괴로웠다. 나머지 식구들이 ‘좀 조용히 있으면 안 되냐!’, ‘너는 분위기 파악을 못 하냐!’(평생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다.)라는 소리를 말로 하고 눈으로 보여줄 때마다 절망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이 정말 잘못하는 것을 정죄만 하는 분이라면, 언젠간 죄 많은 이 땅을 싹 쓸어버리고 인간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워 심판할 거라면 그런 하나님일 뿐이라면 나는 왜 이리 화 많은 신을 믿는 것인가. 아니, 당장 이스라엘이 미국과 독일의 비호 아래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감옥을 만들어놓고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데 왜 가만히 계시는가. 왜 당장 심판하시지 않는가.

더 어이없는 작태는 교회에서 많이 보았다. 극 내향형 인간인 나에게 늘 교회 전단지 스무 장씩 쥐어주며 전도를 많이 해야 천국 간다던 전도사가 있었다. 우리 집이 경차도 어렵게 몰던 시절의 일이다. 교회 목사 전용 주차장은 미국 영화에서 보던 차고지 그런 것이었다. 거기서 나오는 차는 당시 국내에서 최고급으로 쳐 주는 고급 세단이었다. “할아버지, 저건 누구 차예요?” 할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목사님 거지.” 나는 의아했다. “목사님은 우리가 헌금을 내는 걸로 살지 않아요?” 할아버지가 날 내려다 보셨다. “그래서” 나는 또 분위기 파악을 못 한다. “그런데 어떻게 엄마가 모는 차보다 더 좋은 차를 몰아요?”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목사님은 거룩한 분이니까 그렇다.” 이게 아홉 살 때다. 나는 그 시절에도 교회 목사가 신도의 헌금으로 생활하는데 어떻게 교회 평신도의 평균보다 더 호화롭게 살 수 있는지 의아했다. 2003년, 아버지가 억지로 끌고 가 할 수 없이 예배를 드리던 어느 일요일, 아프가니스탄 무력 침공에 대해 “믿지 않는 나라를 주님이 주님의 나라를 통해 응징하는 것”이라고 설교하는 말을 듣고 참을 수 없어 화장실을 가는 척했다. 나보다 더 책을 읽지 않고 나보다도 국제 관계에 대해 모르는 자들이 나를 가르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개신교인이고 싶었다. 예수를, 내 후일을 심판하는 거대한 신으로서가 아니라 내 인생의 지표로 삼고 싶었다. 한센병자와 과부, 제국의 하수인으로 찍혀 인간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던 세리를 모두 친구 삼으시고 축복하신 그를 따르고 싶었다. 그러나 한국의 교회에서는 내 생각을 펼칠 수 없고 함께 할 친구도 찾을 수 없다. 평생 ‘무교’라고 나의 정체성을 말한다. 차라리 무교라고 밝히고 조용히 예수의 삶을 읽는 편이 마음 편하다. 일요일에 나가서 신도들 점심 식사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 남편이 주차장 요원을 할 일도 없다. 요즘은 멀리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나보다 더 뛰어난 분들의 저작을 읽으며 어린 시절 내내 당했던 ‘개신교라이팅(?)‘을 극복하고 있다. 며칠 전부터 이런 나에게 빛으로 다가온 저자 한 분이 있다. 정한욱이라는 분이다. 교회 평신도로서 안과 의사로 일하신다. 이 분은 책 읽기를 몹시 좋아하셔서 1년에 80권 정도를 블로그에 정리하는 분이다. 올해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라는 책을 내셨다. 독서 평론 전문가 장정일 씨가 ’올해 나온 최고의 책‘으로 상찬을 했다. 예수가 갔던 길에 대해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책을 쓴 것 같다는 반가움에 두 권을 샀다. 한 권은 사랑하는 사촌 동생에게 선물을 바로 했다. 사흘째 이 책에 빠져 있다. 나는 예수의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묻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스승을 한 명 더 찾았고, 디트리히 본 회퍼의 삶을 나눌 수 있는 책속의 친구로도 정한욱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현재 개신교는 의로운 행동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을 믿는 것 자체로도 구원을 얻는다는 ’값싼 은혜‘론을 교인에게 설파하고 있다. 그러나 디트리히 본 회퍼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의 외아들인 예수의 죽음을 통해 사람들을 구원한 신이기에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성도는 평생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희생과 헌신을 하며 살아야 한다. 더이상 이 사회는 종교가 권위를 가지지 못하는 ’성인의 사회‘이기 떄문이다. 신이 지녔던 인간 멸망의 권능을 인간 스스로 지니고 있는 시대, 기독교는 거칠고 여전히 야만스러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디트리히 본 회퍼는 숙고 끝에 답한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는 그로 하여금 와서 죽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라고. 실제로 그는 그를 아끼고 따르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까지 갔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태인을 도륙하던 나치의 제3공화국으로 돌아온다. “미친 운전자가 죽이는 사람을 장례 지내는 것이 기독교인의 할 일이 아니다. 미친 운전자를 끌어내야 한다.”라며 히틀러 암살단에 합류했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속세에만 기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저작 일부를 읽어보면 시편 암송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는 사람이기도 하였다. <<성경의 기도서-시편 개론>>을 읽어보면 시편을 매일 공동체인과 암송하면서 경건의 훈련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가 경계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세상을 등지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다음과 같은 자들은 할 수 없다. 도망치는 개개인의 경건한 영혼, 광신자나 다름없는 공상적 사회 개선가, 완고한 세계 개혁가.(<<시편 개론>> 104쪽)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세상의 한 가운데서, 세상의 밑바닥에서, 진부한 세상, 종속된 세상 안에서 함께 참고 견디’(104쪽)는 사람, 생활에 놀라우리만치 성심을 다하고 세상 안에서 특별한 곳을 확고히 응시하는 자들(같은 쪽)이라고 한다. 정한욱 작가는 책 여기 저기서 디트리히 본 회퍼의 삶을 조명하면서 ’종교적 언사를 자주 입에 담지는 않지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섬김과 희생과 고난이라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하며 책임지는 세속적 사람’을 말한다.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가운데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도(마태복음서) 이와 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인상적인 부분이 많지만 하나만 더 들어보기로 한다. ‘수술의 신’(69쪽-75쪽)이라는 장이다. 이 책은 딸이 교회를 다니고 성서 공부를 하면서 의혹이 생긴 점에 대해 아버지에게 질문하면 이에 대해 아버지 정한욱 작가가 답하는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딸은 ‘하나님을 어디서 만날 수 있는가? 일상적 시공간에서 만나는 일이 가능한가?‘라고 질문한다. 작가가 이에 대답하기 위해 ‘수술의 신’이라고 명명한 존재에 대해 설명한다. 작가는 백내장 수술을 하는 전문의이다. 일상적으로 진행하는 수술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친숙하지 않고 무시무시한 얼굴로 자신에게 겁을 줄 때도 있다고 고백한다. ‘수술의 신’이다. 이 신이 정말 싫어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고 한다. 내 손으로 누군가를 돕는다는 데서 오는 쾌감에 중독되어 우쭐해지면 생기는 교만이 첫 번째다. 금전적 이득이나 자기 만족을 위해 필요하지 않은 행동을 무리하게 하는 욕심도 있다.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이런저런 술기를 시도하며 주변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자기 불신’도 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날카로움을 벼리지 않고 작은 문제를 그냥 넘겨 버리는 ‘적당주의’도 꼽는다. 정한욱 작가는 인간이 완벽하지 않으므로 자신은 이런 주의 사항 중 한 가지 정도는 늘 가지게 된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수술의 신을 ‘알 수 없는 분’, ‘두려운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수술이라는 일상에서 만나는 이런 존재의 두려움을 성스러운 것으로 표현한 선배 신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며 그 신의 실체가 하나님이라고 정리한다. 나는 이 장을 올해 읽었던 책 중, 강력한 실천적 지침을 내게 주는 것으로 꼽는다. 내게는 ‘교육의 신’과 ‘육아의 신’이 있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과 학생들의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쭐함, 내 만족을 위해 학생들과 아이들에게 필요없는 짓을 하는 욕심, 더 멋있게 보이기 위해 이런 저런 잡기를 시도하며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자기 불신, 많은 교사들과 더불어 내가 곧잘 발휘하는 ‘적당주의’를 물리쳐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일상의 배후에서 나를 응시하는 거룩한 존재의 시선을 느끼며 살아가’(75쪽)며 일상의 모든 순간을 감사히 여기기를 기도할 수밖에.

팬데믹을 거치며 교회는 사회가 걱정해야 하는 곳이 되었다. 과학적 방역을 무시하고 지니의 램프같은 하나님을 부르며 정부의 지침을 거슬렀다. 요새같은 교회에서 모여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을 도리어 비난하면서 하나님의 길을 모르는 자들이라고 정부를 비난하는 종교인들도 있었다. 동성애자를 비난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배척하고 난민(자기 땅에서 살 수 없어 탈출한 자들)을 괴물화하고 있다. 일부 종교인들의 인식이 사회의 평균치보다도 공감성이 떨어지는 듯하게 보여 교회에 낙심한 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기독교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담론의 발화에 대해서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계의 문제에 대해서도 충분한 근거를 들어 합리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신성과 세속의 조화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딸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생각해 봤을 것이다. 평신도로서 사회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는 시민으로서 자율적으로 공부하고 심오하게 사색한 아버지의 자상한 의견이 여기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서지 정보를 보니 벌써 5쇄를 찍었다고 한다. 더 많이 찍어서 교계와 사회가 기독교적 이상에 대해 더 숙고하는 계기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https://m.blog.naver.com/sosimout/223280169594

믿음은 일상에 천국을 일구는 일,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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