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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철학

처음읽는 영미 현대철학 (철학아카데미 엮음, 동녘 펴냄), How to Read 비트겐슈타인 (레이 몽크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비트겐슈타인 (존 히튼 지음, 이두글방 펴냄)

by 서음인 2016. 5. 27.

1. 처음 읽는 영미 현대철학은 2013년 철학아카데미에서 진행했던 강의를 바탕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비트겐슈타인에서 프레드릭 제임슨에 이르기까지 20세기를 대표하는 11명의 영미 현대 철학자에 대해 소개한 글을 모은 책이다. 저자들은 강연 당시의 구어체를 살려 30페이지를 넘지 않는 분량으로 각 철학자들의 사상과 그 의의를 간략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마지막에는 좀 더 깊은 연구를 위한 몇 권의 참고문헌을 소개함으로서 독자의 탐구욕을 자극하고 있다. 이 책을 펴든 김에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로 꼽히지만 난해하기로 소문난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을 소개하는 두권의 책도 함께 꺼내들었다. 둘 중에는 비트겐슈타인의 원전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 레이 몽크의 책이 이 철학자의 사상을 좀더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 같다.

 

2.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학자들에 대해 나름대로 간단히 요약해 보기로 한다.

 

(1) 평생 언어와 의미의 문제에 천착하며 초기의 <논리 철학 논고>에 나타나는 지시의미 이론과 그림 이론에서 후기의 <철학적 탐구>가 보여주는 사용의미와 언어놀이 그리고 삶의 세계로의 위대한 전환을 이뤄 낸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Josef Wittgenstein 1889-1951)

 

(2) 세계를 상호의존하는 관계의 그물망 속에 있는 생성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과정철학 혹은 유기체철학이라 불리는 독특하고 거대한 형이상학체계를 구축했고,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신학 체계의 하나인 과정신학의 토대를 제공한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

 

(3)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 자연과학이 직선적으로 발전하는 누적적 지식의 체계가 아닌 ‘패러다임의 전환’ 혹은 ‘과학혁명’이라 불리는 급진적이고 불연속적인 변화를 거치며 발전한다고 주장한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 (Thomas Kuhn 1922-1996)

 

(4)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대한 일관된 관심으로 개인의 자유와 경제적 평등을 강조하며, 한 사회의 최소 수혜 성원들에게까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이익이 보장되는 상태에서만 불평등이 용인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의 주창자 존 롤스 (John Rawls 1921-2002)

 

(5) 행위와 규범을 강조하는 현대 도덕철학에 도덕적 주체로서의 개인을 강조하는 ‘덕윤리(Virtue Ethics)’를 부활시키고, 도덕이란 사회역사적 배경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공동선을 모색하는 가운데 구현될 수 있다는 "공동체주의"를 주장하는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Alasdair MacIntyre1929-    )

 

(6) 사회의 다양한 영역들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들이 존중되는 사회에서만 진정한 다원적 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자본의 횡포로부터 다른 영역들의 독자성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정의로운 전쟁론을 통해 평화의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모색했던 활동가이자 철학자 마이클 왈쩌(Michael Walzer 1935-    )

 

(7) 형이상학적 실재론과 상대주의를 넘어선 내재적 실재론을 주창했고,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과학주의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개략적인 현대철학사'로 불린다는 현대 분석철학의 대가 힐러리 퍼트남 (Hilary Putnam 1926-     )

 

(8) 진리를 다루는 이론과 자유를 확장시키기 위한 실천은 체계적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인간은 자기완성이라는 사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러니스트이자 동시에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정의를 위해 실천하는 자유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 리처드 로티 (Richard Rorty 1931-2007) 

 

(9) 변형생성문법이라는 독창적 이론으로 현대 언어학 분야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은 위대한 언어학자이자, 경제적 착위와 정치사회적 노예화의 저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해 다양한 저서를 통해 꾸준히 미국을 포함한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비판해 온 미국의 양심 노엄 촘스키 (Noam Chomsky 1928-     )

 

(10) 전통적으로 정의론의 가장 중요한 주제였던 '재분배론'을 제치고 최근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소수자 집단의 존엄과 고유한 문화적 가치의 인정을 추구하는 '인정론'이 가지는 심각한 내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정투쟁'의 과제를 특정 집단의 정체성 인정이 아닌 집단의 개별 구성원이 겪는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 해악의 제거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 1947-    )

 

(11) 문학비평은 악압되고 봉쇄된 사회적 모순이 정치적 무의식속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상상적 상징적으로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후기 자본주의’라는 생산양식을 문화 이론에 도입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라고 주장한 마르크스주의 문화 이론가 프레드릭 제임슨 (Fredric Jameson 1934-     )

                                                                                              

3.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지나치게 상대주의적이고 해체적인 그래서 가끔은 대책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프랑스 철학이나 총체적이고 관념적인 거대서사를 추구한 나머지 때때로 현실에서 괴리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독일 철학과는 달리, 관찰에 근거한 구체적 경험과 분석을 토대로 주어진 문제의 해결에 집중하는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영미철학의 독특한 매력을 맛보기에 충분한 책인 것 같다. 특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마따나 매끈한 관념의 세계에서 "실천이라는 거친 대지"로 나아와 정의와 사회윤리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존 롤스나 알레스테어 매킨타이어, 마이클 왈쩌, 리처드 로티, 낸시 프레이저 같은 학자들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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